직장 상사의 끝판왕
“울 이사님”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고 엔데믹이 되었지만, 일상의 많은 것들은 여전히 변해있습니다. 물가 상승과 개인과 나라의 부채 상승, 코로나 이후 구조조정으로 빈 책상만 남은 사무실 등…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 12월 이후부터 회사의 매출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와 핸드폰 액세서리를 오프라인 매장에 납품하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회사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납품하던 오프라인 매장 50곳이 폐점하였고, 코로나 이후 매장 방문 손님이 줄어 매출은 급락을 하였지요. 온라인 판매 매출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전체 운영자금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오프라인 매장, 본사, 지점 직원 포함 전체 직원의 70%를 줄이는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회사의 사정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자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사님마저 자진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님의 퇴사 소식에 회사 내부뿐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여 하루 종일 함께 시간과 공간을 사용했던 동료들이 떠나고, 빈 책상이 남은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고, 함께 고생했던 일들이 생각나면 금세 우울해지기도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항상 옆에서 많이 배우고, 직원들의 입장을 제일 먼저 대변해 주었던 좋은 직장 상사를 잃게 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직장 상사들을 경험해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마지막 퇴사하신 이사님이십니다. 30대 초반에 시작한 사업이 성공해 건물도 올려보고 승승장구도 해보고 또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마지막에는 동업자가 회사 돈을 들고 해외로 도망치는 바람에 회사를 정리하며 우리 회사로 오신 분이셨지요.
여러 사업의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클 뿐 아니라, 몇 마디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빨리 파악하시니 주변 거래처 사장님들도 이사님의 의견을 묻기 위해 전화도 자주 하셨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힘든 일을 할 때 다른 직원들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이거 하자~”라고 본인이 가장 먼저 움직이고 함께 행동하니 특히 창고 쪽 직원들이 이사님과 함께 일하면 일이 항상 빨리 끝난다며 감탄을 하고는 했습니다. 연차 사용도 미리 말만 하면 긴 연휴가 낀 날에도 눈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셔서 직원들 또한 즐겁고 감사한 마음에 더 열심히 일을 했지요.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존경을 받은 이유는 부하 직원이라도 어떤 일을 위임할 때는 확실하게 그 일에 필요한 권한까지도 담당 직원에게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일 진행도 빨리 될 뿐 아니라 담당 직원은 훨씬 더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어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CS에서 종종 이런 일들이 발생했는데, 중요한 판단과 결정이 필요한 일은 당연히 보고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담당 직원이 스스로 권한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면 훨씬 빨리 처리가 되고 고객들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참 편리했습니다. 하루는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직원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답을 하시더군요. 당장에는 돈을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인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일로 직원들이 스트레스 받는대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더 힘들고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요. 직원들이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회사로서도 이익이라고 말이죠. 상사가 나를 믿고, 일을 맡긴다는 것은 책임감과 함께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설사 일 처리 하는 과정 중에 실수를 하더라도, 잘못 처리한 일만 딱 한 번 지적하고, 두 번 다시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으니 한 번 지적받은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잘 기억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않는 상사였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공부’였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너희들은 훨씬 더 큰 것을 위해 일할 수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라”라고 말이죠.
회사에서 고용감축을 결정하고 마지막 출근 날 이사님은 특별히 여직원들을 회의실에 불러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셨습니다. “아이 낳고 키우는 데만 집중하지 마라, 그것은 부모로서 애쓰고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하게 된다. 남편, 자식들 말고 너희들을 위해 투자해라, 너희들이 잘 되어야 가정도 잘 된다. 책도 열심히 읽고 하고 싶은 것 하나 딱 정해서 실력을 키워라. 그래야 나중에 남편, 자식들과도 대화가 된다.”라고 말이지요. 남자 직원들은 어떻게든 자기 일을 찾아가겠지만, 결혼한 여직원들은 퇴사 후 가정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서 너무 안타깝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마지막까지도 실제적인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이사님을 보내며 그분의 앞날도 응원하게 됩니다. 오래 쉬어본 적 없이 항상 새로운 일들을 만들고 개척하셨던 이사님의 미래를 저도 응원하며, 저 또한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실력을 기르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 감사했습니다~
고경명 편집디자이너
joyfuloil@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6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