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 등록 2024.09.22 10: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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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집의 변화를 떠올려 본다. 과거에는 다세대 주택에서 살다가 25평 아파트로 이사했고 현재는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는 북 카페를 지으려고 고심 중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미래는 가변적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이리저리 궁리 중이다. 5년 전 북 카페 부지를 살 때만 해도 친구 남편이 나의 추진력을 높이 사면서 이런 말을 했단다. “어떻게 억대가 넘는 땅을 사면서 마치 마트에 가서 두부 한 모 사듯 앞뒤 재지 않고 사지?” 믿을 만한 분이 소개한 땅도 아니고, 오다가다 들른 부동산에서 덜컥 땅을 산 나의 행동은 주변에서 보기에 무모해 보일 정도였다. 광릉수목원과 고모리 호수 근처인데다 이곡초등학교도 가깝고 농협, 마트도 가까이 있어서 의정부에 사는 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우선 땅부터 사 놔야 변덕이 죽 끓듯 조석변개하는 나 자신을 눌러 앉힐 수 있겠단 생각도 한몫했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사놓은 땅임에도 북 카페를 짓고자 하는 첫 삽은 쉬이 떠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의 주기를 학령기, 가주기, 임서기, 유랑기로 나눈다면 나는 지금 임서기를 준비 중이다. 유랑이 뼛속에 박힌 성정을 지니고서 섣불리 임서기를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숲에 들어가 살고자 대출해서 집을 짓는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아직 학생인 둘째를 생각하면 더욱더 주저된다. 틈만 나면 배낭을 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을 낙으로 삼으면서 북 카페에 묶인 삶이라니 그 역시 흔쾌한 일이 아니다. 

 둘째의 졸업과 나의 명퇴 시점을 고려해야 한다. 대출 없이 북 카페를 짓는 일이 그동안 주력할 일이다. 햇볕이 잘 드는 소박한 집을 짓고 일주일에 사나흘만 문을 열고 나머지는 어디든 훌쩍 떠나도 되는 일정으로 시공간을 구성한다면 그나마 무리가 없어 보인다. 더불어 책을 보는 안목을 넓히는 일이다. 독립책방은 태생적으로 대형책방과 경쟁할 수 없다. 손님이 찾는 책은 없을지라도 뜻밖에 좋은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면 내가 먼저 만져보고 맛보았던 책을 들여놔야 한다. 연구년 때 만났던 선생님이《삶》(신시아 라일런트)을 강독하다가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어느 공간을 사랑하세요?”
 “저는 책이 있는 곳이면 어떤 곳이라도 좋아요. 여행을 떠날 때도 비행기 안, 차 안 어디라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약속 장소로 떠나는 순간에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생각에 설레요. 동네 책방, 작은 도서관, 공공도서관, 손 뻗으면 책이 닿는 침대도 좋고요.”

 김훈과 정지아의 책을 반납하고, 노은주, 임형남, 정희진의 책을 대출했다. 오늘은 EBS 건축 탐구를 탐독 중이다. 시간은 덧없고 무엇도 변치 않는 것은 없다. 그러나 내 몸이 거주하는 나의 공간은 생생한 현실이다. 삼십 년 동안 사건 사고를 거치면서 지금 이 집에 살고 있고, 또 앞으로 내가 의탁할 집을 상상하고 있다. 그것은 지난 삶이 맞잡고 있기에 가능한 미래다. 서두르지 말자. 둘째도 졸업하고, 나도 퇴직 준비를 한 뒤, 부지런히 돈을 모아 작지만 오롯이 내 몫인 집을 짓자. 


나의 집을.

 

                                                                                                              경기도 의정부 박희정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6호>에 실려 있습니다.

상상 기자 01sangs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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