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작가의 K-Classic(국악) 톺아 듣기]
안숙선 명창의 Last Dance; 2024 국립극장 ‘송년 판소리’ 후기
북쪽 한파가 내린 맑고 높고 추운 날이었다. 국립극장 산기슭 구석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파를 피해 웅숭그린 몸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몇 개월 전 민속극장 풍류의 제자발표회에서 뵈었을 땐 건강이 좋아진 모습을 보이셔서 전설의 ‘쑥대머리’를 직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전성기 시절 안숙선 명창의 춘향가 앨범의 쑥대머리 대목을 서울을 향하는 차 안에서 즐겁게 또 잔뜩 들어둔 터였다.
매년 구하기 힘든 국립극장 송년 판소리 좌석표라 하루에 두세 번씩 극장 사이트에 들어가 빈자리가 혹시 없나, 더 좋은 자리가 없을까 하고 2층 끝자리에서 자리를 바꾸기 시작해 공연 이틀 전 기적적으로 1층 두 번째 줄 가운데 자리가 하나 비워져, 환호를 지르며 서둘러 자리를 확보한 참이었다. 혹시 엔딩쯤에 한 두 컷이라도 귀한 선생님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카메라를 챙겼다.
‘왜 홀로그램을... 선생님 몸이 많이 아프신가?’
공연이 시작되고 컴컴해진 장내, 엷은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홀로그램 속 주황색 한복을 입으신 선생님께서 쑥대머리를 부르신다. 고요해지는 장내. 무거운 분위기가 흐른다. ‘왜 홀로그램을... 선생님 몸이 많이 아프신가?’ 선생님의 소리가 끝나고 사회를 본 유은선 감독의 말이, 이번 공연이 지난 15년간 진행된 안숙선 명창의 마지막을 고하는 송년 판소리라는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후 기라성 같은 선생님의 훌륭한 제자 분들이 나서 무대를 꾸리셨지만, 무거운 분위기가 잘 가시지 않는다. 이곳에 온 선생님의 오랜 팬분들이 다들 나처럼, 염려하고 있는 것 같다. 추임새와 환호가 예전만 못하다.
“선생님 소리하시겠어요?”
쉬이 가시지 않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공연 2부가 시작되고, 마지막 동백타령과 진도 아리랑 합창에 이름을 올리신 선생님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무대 중간에 잘 만들어진 선생님의 일대기를 소개한 영상이 등장한다. 영상을 보던 관객들이 하나, 둘씩 눈물을 닦는다. 이별의 예감, 걸어오신 길, 이루신 업적들이 판소리 300년 역사 속에서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들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연습벌레로 누구도 쉬이 근접하지 못할 경지의 소리들을 완성하셨고, 가야금병창에서 판소리까지 두 번이나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되셨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영화 ‘서편제’ 송화의 마지막 소리가 바로 안숙선 명창의 목소리이고, 드라마 ‘여인천하’의 그 메인 테마곡 역시 안명창의 소리이다. 국립극장에서만 34회의 판소리 완창을 하셨고, 수많은 외부 음악팀들과의 콜라보 무대를 비롯한 국악 크로스오버 앨범들과 창극들. 숱한 외국 초청 공연들로 판소리 후배들의 세계화의 길을 활짝 열어주신 거인. 스승 김소희 명창을 이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판소리의 상징이셨던 분. 음악적으로는 역대 최고의 판소리 테크니션으로 스승 김소희 명창이 닦아둔 우아한 성음과 소리의 들판 위에, 기예를 넘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화려한 시김새의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냈다. 시대의 변화에 점차 빛을 잃어가던 판소리를 고전 클래식 애호가들의 향유 대상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한류와 더불어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 평양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판소리가 위대한 한민족의 음악임을 천명하셨던 예인. 그뿐인가, 200여 편의 창극에 출연하며 그가 만들어온 숱한 작창과 창극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40년이 넘게 국내 창극 역사를 주도하고 또 이끌어 오셨다.
말 그대로 인생의 모든 시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혼신을 다해 무대를 만들며 이에 모든 에너지들을 다 소진해 버린 듯한 그 거인이, 1979년부터 45년간 몸담으며 숱한 이야기와 역사를 써 내려오신 이곳 국립극장에서의 마지막 무대에 오르신 것이다. 거인이 직접 무대 위에 나타나자 순식간에 박수와 환호로 무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의 큰 환호 속에 감사패를 받으며, 감정에 북받친 거인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신다. 무대 위의 감사패를 주는 이나 받는 이, 그 제자들 모두가, 이를 바라보는 관객석 모두가 울음바다다. 중년인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안 선생님은 이곳에서 춘향이였고 토끼셨다. 예감하고 있었던, 언젠가 올 거라 생각했던 시간이 눈앞에 이렇게 와 있고 나는, 또 이곳에 온 안숙선 명창의 오랜 팬들은 하릴없이 이 야속한 시간 앞에 놓여져 있다.
“선생님 소리하시겠어요?”
사회자가 청하며, 김청만 명고를 청한다. 합을 맞춘 지 50년이 넘은 두 명인이 마지막 합을 맞출 준비를 한다.
어화세상 벗님네들 백년 영화가 그 얼만고
북망산 묻힌 벗님 영화 마다고 묻혔든가
인생의 희노애락 일장춘몽이 그 아닌가
서산어 해는 지고 남산어 산새들은
집을 찾어 날아드니 황혼일시 분명하고
부귀영화가 그 얼만고 이 산 저 산 들어가서
칡뿌리로 요기허고 반짐나무를 걸머졌구나
우중충충 내려오니 왕후장상이 부럽잖고
세상 풍진이 남이로구나 이렁성 저렁성 지내어 보세
단가 벗님가가 선생님의 마지막 무대로 울려 퍼진다.
제자들과 동백타령 마지막 때창
이어진 제자들과의 동백타령. ‘가세 가세 동백꽃을 따러 가세~’ 제자들과 선생님의 합창. 수백 번은 들은 동백타령이 이리 슬픈 줄 처음 알았다. 노래 중간 무대 가운데 서 있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원형 대열을 이루고 절을 한다. 그 모습에 서 있던 선생님이 맞절을 하신다.(아... 2023년의 송년 판소리 사철가 때창의 전설, 이 기록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단가 ‘사철가’를 부르시다 ‘내 청춘도~’의 가사를 잊으신 안명창의 단가가 멈추자, 객석에서 사철가를 때창으로 함께 부르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었다. 국악 공연사에서 이런 건 그 누구도 보지 못했을 거다.) 객석에서 나는 눈물, 콧물을 닦으며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 아름다운 장면과 추앙하는 위대한 예인의 마지막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어, 카메라를 앞 줄 틈으로 밀어 넣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오열한다. 제자들도 감정이 북받쳐 동백타령의 밝고 솟구치는 선율들이, 하릴없이 모두 슬픔으로 젖어 든다.
한 그루 높이 솟은 단단한 이파리의 동백나무가 자라 저 원형을 이룬 아름다운 동백꽃들을 피워내 이 합창을 만들었구나... 들리는 이 합창은 모두 저 나무가 평생을 걸쳐 가르치고 만든 꽃들의 한 뿌리에서 난 소리로구나...
마지막 노래인 진도 아리랑이 끝나고, 일어서서 크게 박수를 친다. 평생을 다해 진력한, 그간의 수고와 감사에 대한, 위대한 예인께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미천한 응원이었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34번의 완창 무대와 45년간 판소리와 창극의 발전에 온 힘을 다 쏟으며 그 전설을 만들어 오신 안숙선 명창의 마지막 무대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다.
“영원한 춘향이 이렇게 떠나갔네...”
작년, 송년 판소리 그 전설의 무대를 함께 직관하며 울던 딸아이는 객석에서 올해도 이미 눈이 퉁퉁 부어 울고 있다. 판소리를 하고 있는 아이는 “영원한 춘향이 이렇게 떠나갔네...” 하며 울고, 아버지는 흠모하는 이 위대한 예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해 지난 세월이 야속해 울었다. 공연이 끝난 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아이와 선생님 가시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추운 바깥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그렇게 차에 앉아 극장을 떠나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오니, 황망하고 애석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공연이 끝나고 집을 향하는 길, 이 생각이 날 때마다 또 울컥울컥 눈물이 나왔다. 아이에게는 “아빠 당분간 계속 이럴 수 있어, 이해해줘.” 하며 운다. 집에 와서도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사진을 편집하며, 카메라를 응시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또 울컥울컥, 지금 글을 정리하면서도 중년의 아빠가 된 아저씨 하나가 주책맞게 또 울고 있다.
판소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예인들 중 한 분이자 스승 김소희 명창을 이어 30년간 한국 판소리의 상징이었던 안숙선 명창은 그렇게 판소리 르네상스 시대를 마감하며 국립극장 무대를 내려오셨다. 그러나 자연인 안숙선 선생님은 그 작은 어깨에 평생 올려져 있던 무거웠던 짐들을 내려놓으시고, 이제 편안히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응원하고 기도한다.
글/사진: 임대균(시인, 예술 평론)
keaton7@gmail.com
* 안숙선 주요 이력
1949년 전라북도 남원군(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598번지 출생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1981~ 86년 동남아 12개국 및 캐나다, 남미, 유럽 7개국, 미 7주 순회공연
1986년 남원 춘향제 전국명창경연대회 대통령상
1987년 KBS 국악대상 수상
1988년 유럽 7개국 <춘향가) 완창 순회공연
1990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초청공연
1993년 핀란드 국제 쿠오모 음악페스티벌 초청공연,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수상
1996년 네덜란드 홀랜드 페스티벌 초청공연, 판소리 <춘향가> 완창공연(국립극장)
1997년 중요무형문화제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기예능 보유자 인정
1998년 프랑스 문화부 예술문화훈장 수장(受章), 프랑스 아비뇽축제 ‘한국의 날' 초청공연, 윤이상통일 음악회 평양공연
1999년 제48회 서울시문화상 수상, 옥관문화훈장 수장, 뉴욕 <춘향가) 완창공연
유럽 3개국 순회공연(독일, 프랑스, 이태리)
2001년 일본 동경음악제 초청공연
2002년 한·베트남 수교 기념 베트남 초청공연, 파리가을축제 초청 <춘향가> 완창 공연
2003년 ~ 201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성악전공 교수
뉴욕 링컨 센터 썸머 페스티벌 초청 <춘향가: 완창공연>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초청 (춘향가) 완창공연
2004년 ~2009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 창작창극 <제비> 공연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취임 축하 판소리 <시편 23편>
2008년 동리대상 수상
2011년 한-호 수교 50주년 시드니 한국문화원 개원 공연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개막작 <수궁가> 도창
2012년 여수엑스포 개막공연,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2013년 만해대상 문예대상 수상, 방일영국악대상 수상
2015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대통령 취임식 '아리랑 판타지' 공연
한·영 수교 130주년 및 정전 60주년 기념 K-뮤직 페스티벌(런던)
이스탄불-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막연주회(이스탄불 아야소피아 박물관)
유네스코 등재 기념 <아리랑 대공연>(KBS홀) 출연
문광부 주관 한•유럽 수교 50주년 및 벨기에 한국문화원 개원 기념공연 <Spirit of Korea, Song of Korea, ARIRANG) 공연(벨기에 보자르센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회식 공연(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L.A. 카운티미술관 Korean Day 공연(L.A. 카운티미술관)
2015년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수상, 파리가을축제 초청 <수궁가> 입체창 공연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협연
2017년 국립창극단 <트로이 여인들〉 작창 및 출연
2018년 평창올림픽음악제 <평창 흥보가> 협연
2022년 9월 6일 <김소희 바디 (만정제) 춘향가>로 판소리 <춘향가> 무형 문화재 보유자 인정. 동시에 가야금산조 및 병창 무형문화재 보유자는 해제됨.
1983 ~ 국립극장 판소리 5바탕 완창 총 34회 및 전 세계 수십 여 회의 최다 완창 기록 보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