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소리의 전설, 강송대 명창

남도 소리의 전설, 강송대 명창

 

지난 11월 13일 강송대 명창의 국악 입문 80년 인생을 기념하는 ‘강송대의 진도 풍류’ 공연이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1941년 심청가의 ‘추월만정’ 소리를 잘했다고 알려진 이화중선 명창의 수제자인 진도 이근녀 여사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소리를 해 온 세월이 어느새 80여 년이 된 것이다. 역사상 한 명창의 80주년의 소리 인생을 기념하는 공연은 처음이기에 가서 이를 꼭 기록해 둬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고 진도까지 차를 몰았다.

 

5세, 국악에 입문

강송대 명창은 전라남도 무형유산 남도잡가 보유자로 5세에 국악에 입문하여 목포에서 활동하던 오촌 고모인 강숙자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춘향가’ 등을 배웠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어렵게 가르쳐 놓은 것을 잊지 말라고 매를 맞아가며 호되게 소리를 배웠던 시절로 명창은 당시를 회상했다. 타고난 목으로 당대 최고 여류 명창이었던 이화중선의 제자였지만 집안의 만류로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어머니 이근녀 여사의 바램에 따라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을 드러낸 강명창은 타고난 스타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광주, 여수, 목포, 군산 등 남도 지역의 큰 무대들에 서며 어머니로부터 배운 이화중선의 소리들과 진도 민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남도 소리의 정수

노래의 섬 진도 사람 강송대 명창의 소리는 그 자체로 남도소리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필자의 아이가 소리를 배우고 있어 한 달 정도 강송대 명창으로부터 육자배기 다섯 수와 여러 남도민요를 배웠던 터라 짧지만 비교적 가까이서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남도민요의 핵심인 진도아리랑과 육자배기 수업 때 선생의 주문은 주로 시김새를 줄이고 ‘힘을 빼라’는 것이었다. 젊은 명창들이 넘쳐나는 힘과 화려한 시김새들로 장식해 놓은 소리가 아닌 투박함, 그 안에서 우러나오는 슴슴하지만 진한 곰탕과 같은 남도소리의 맛. 필자는 강송대 명창의 어머니 이근녀 여사가 90세에 진도의 한옥집 툇마루에서 불러 녹음한 진도아리랑(2003년 “남도정서의 정수박이, 그 보배로운 3대의 소리 ‘진도아리랑’ 음반”에 수록)을 들으며 강송대 명창이 지향하는 남도민요의 본래 소리, 그 소리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강송대 명창의 구음, 절정을 이루다

그러나 강송대 명창의 육자배기는 무척 화려하다. 타고난 목이 아니면 그 시김새를 다 받아낼 수 없고 전문 고수들도 그 노래에 박자를 맞출 때 때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틀리지 않을 수 없어 진도 노래와 명창의 소리를 오래 들은 진도의 김오현 명인 정도만 그 박을 제대로 맞출 수 있다고 한다.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진도아리랑과 최고의 기술적 난이도를 선보이는 육자배기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강송대 명창의 소리는 구음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재즈의 스캣과 같이 형태가 없이 반주에 맞춰 즉흥적인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강송대 명창의 구음은 특유의 강렬함을 지니고 있다. 고음 영역에서 허스키하게 퍼져나가는 명창 특유의 음색과 진성,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김새 운율을 만드는 소리들은 장구, 징, 북 등의 전통 악기들과 어우러져, 민족 고유의 한의 정서를 드러내는 서정성 짙은 악기 소리들로 합주된다.

 

 

80주년, 제자들과 함께한 무대

이 날 공연에는 민속학자 이윤선 박사의 사회와 더불어 평소 듣기 쉽지 않은 명창의 단가와 구음을 들을 수 있었다. 80주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시간과 사건이 가지는 아우라만으로도 감동이 있는 무대였다. 특히 방수미, 양혜인, 노부희, 조수황 등 또 다른 명창이 된 강송대 명창의 제자들과 함께 꾸린 무대는 그 민요와 소리들 자체로 벅찬 감동을 주었다.

 

 

100여 년 전 이화중선 명창과 지금의 소릿길을 잇다!

‘미안한데 이제 소리를 지르면 복압이 차올라서, 힘들어서 안되겄어. 내가 살아야겄어’ 85세 전설의 명창과 국악 신동 딸아이의 인연은 육자배기 다섯 수와 민요 성주풀이, 진도아리랑, 남원산성의 가르침들로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버렸지만 기실 그간 몇 수라도 강송대 명창으로부터 이 남도 민요들을 직접 배운 것만으로도 필자와 필자의 가족들은 이미 충분한 영광을 누렸다. 다만 100여 년 전 이화중선 명창과 지금의 소릿길을 이어주시는 살아있는 민요의 전설 강송대 명창의 만수무강과 행복을 빌 뿐이다.

 

 

글/사진 임대균 (시인, 예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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