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4 통합의 시대,
‘조선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도 통합되었는가
문턱은 낮아졌으나, 마음의 벽은 여전하다
26년 2월 12일부로 재외동포법 시행령이 개정되며 조선족 동포들에게 적용되던 비자 체계가 F-4(재외동포)로 통합되었다. 그동안 ‘방문취업(H-2)’이라는 이름 아래 단순 노무 인력으로 분류되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받던 수많은 동포가 이제는 당당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30년 전, 가방 하나 들고 고국을 찾았던 동포들의 눈물을 현장에서 지켜본 전문가로서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동시에 묵직한 질문이 고개를 든다. 법적 제도는 '통합'되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도 과연 그만큼 통합되었는가.

100년의 유랑, 독립운동의 후예가 마주한 현실
우리는 흔히 잊고 산다. 조선족 동포들은 19세기 말 기근을 피해, 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기지를 찾아 국경을 넘었던 우리 민족의 후예다. 냉전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중국 공민’으로 살아야 했던 세월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1992년 수교 이후 그들이 돌아왔을 때, 고국은 그들을 ‘핏줄’로 반기기보다 ‘저렴한 노동력’으로 먼저 계산했다. 법과 제도는 그들을 늘 경계선 밖으로 밀어냈고, 우리는 그들을 ‘동포’라 부르면서도 머릿속엔 '외국인 노동자'라는 카테고리에 가둬두었다.
우리 경제의 실핏줄, 그러나 미디어가 만든 ‘범죄의 낙인’
이미 조선족 동포들은 우리 경제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필수적인 존재다. 건설 현장, 식당, 중소 제조업, 그리고 고령화 사회의 돌봄 서비스 현장까지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지역 경제의 공동화를 막고 상권을 유지하는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편협하다. 자극적인 미디어가 생산해 낸 ‘범죄 집단’이라는 프레임은 성실한 대다수 동포의 삶을 가리고 혐오의 근거가 되었다. 법적으로는 ‘재외동포’라는 예우를 갖추게 되었음에도,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차별적인 농담과 경계의 눈초리가 그들을 괴롭힌다.
세대 교체와 정체성: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
현장에서 만나는 ‘조선족 3, 4세’들은 부모 세대와는 또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이들을 포용할 새로운 담론이 부족한 실정이다. 중국에서 태어나 한족학교를 다니며 성장한 이들은 역사의식과 교육의 부재로 일말의 주저함없이 중국인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이들은 한국 사회의 배타성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으로, 한국에서는 이방인으로 취급받는다”는 그들의 고백은 우리 사회의 포용력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준다. 비자 통합으로 제도적 수혜는 얻었을지언정, 심리적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통합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과제: 법의 통합을 넘어 ‘심리적 통합’으로
이번 F-4 비자 통합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간소화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동포들을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인력’이 아닌, ‘함께 미래를 설계할 동반자’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혈연적 동포주의를 넘어선 ‘시민적 동포주의’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단순히 피가 섞였다는 사실보다, 같은 공동체 내에서 책임을 다하고 함께 미래를 그려가는 ‘동료 시민’으로서의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지역 사회 내 ‘상호문화적 접점’을 늘려야 한다. 우리 주민들이 대림동이나 안산의 풍경을 ‘낯선 타지’가 아닌 ‘우리 동네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동네 주민들부터 그들을 ‘낯선 이’가 아닌, 함께 세금을 내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 의식이 요구된다.
맺으며: ‘우리’의 범위를 넓힐 때
30년 전 현장에서 만난 동포들의 거친 손마디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장을 밑바닥에서 지탱해 온 훈장과도 같다. 이제 법은 그들에게 ‘자유’를 허락했다. 이제는 우리가 ‘존중’을 건넬 차례다. 제도의 통합이 마음의 통합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행복한 동네’는 완성된다. ‘조선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혐오가 아닌 환대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군포이주와 다문화센터
김강남 사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