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4]
노루귀(Hepatica asiatica)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나고 비가 내린다는 우수까지 지나면 긴 겨울도 서서히 물러갈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도 지나면 깊은 산속의 계곡에도 봄이 찾아들고 차가운 계곡물도 졸졸졸 흐르기 시작하는 봄이 다가옵니다. 이 시기는 찬 기운이 계곡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작은 야생화들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부지런히 산을 찾은 이들을 반겨줍니다.
이렇게 산속의 나무나 풀들은 푸른 새싹을 올리지 않았지만, 계곡의 시냇물이 흘러 습기 있는 산속에서는 노루귀가 꽃을 피우고, 이제 막 흘러가기 시작하는 계곡물 속에 비춘 태양을 즐기며 작은 꽃을 흔들거리며 피어납니다.
노루귀는 이른 봄의 꽃으로 잎이 나오기 전에 꽃부터 피는 야생화입니다. 산속 낙엽 덤불 사이에서 꽃만 올린 모습은 가녀린 느낌이 들지만, 얼마나 영리하고 영특한지 흐린 날이거나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리며 닫아 버립니다. 그 이유는 추운 밤 날씨에 암술과 수술이 동해 피해를 입어 번식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잎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야생화이지만 그들 역시 우리처럼 생존을 위한 생각과 몸짓을 쉬지 않고 하는 것은 신기할 따름입니다.
꽃잎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여 수정이 이루어지고 꽃이 질 무렵이면 낙엽 사이로 작은 잎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 새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흡사 쫑긋 세워진 귀여운 노루의 귀처럼 생긴 새순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옛 어른들이 이름을 ‘노루귀’라고 불러 주었다고 하는데 노루귀의 새순이 올라오는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가를 찾을 때 마다 작은 들풀에 대한 이해와 관찰을 했던 옛 어른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노루귀의 꽃말은 ‘인내’라고 하네요. 추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기 위해 꽃을 올린 노루귀의 인내심을 보면서,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 우리도 빠른 시간 안에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태극화훼농원 한현석대표
행자부/농림부 신지식인
tkhanhhs@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9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