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착시현상에 빠뜨려 현실에서 점점 더 고립시키는 공감형AI

정서적 착시현상에 빠뜨려 현실에서 점점 더 고립시키는 공감형AI

 

2013년, AI와 사랑에 빠진 남자주인공을 그린 영화 Her(그녀)가 개봉했을 때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될꺼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25년, ‘남편보다 AI가 낫다’ 라는 신문기사 타이틀을 보게 될 줄이야...

 

챗GPT를 비롯해 워봇(Woebot), 와이사(Wysa), 유퍼(Youper) 등 ‘감성형, 대화형’ 인공지능(AI)이 확산되면서 이를 통해 위로받고 외로움을 달래는 이용자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고민을 인공지능에게 털어놓으면 ‘그 모든 감정을 혼자 안고 있었다니, 지금까지 참느라 고생했어요’, ‘정말 힘들었겠구나’, ‘네 잘못이 아니야, 너 자신을 미워하지마’ 등의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AI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마치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처럼 반응함으로 특히 2030 세대나 1인 가구 사이에서 F(공감)형 AI로 불리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주부 최모씨는 “남편에게 육아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싶어도 늘 부부싸움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라 대화 자체가 쉽지 않았는데, AI와는 다툴 일이 없으니 무슨 말이든 하게 되더라”라며 남편보다 AI가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준다는 반응입니다.

 

공감형 AI가 감정 표현이 서툰 청소년이나 낯선 환경에서 마음을 열기 힘들어하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특히 더 편한 상대로 다가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춘기 청소년은 물론 장애인과 독거노인 등 정서적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도 새로운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AI의 이런 대답이 정말로 상대방을 공감하고, 그 어려움을 나눌 진짜 관계를 맺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요? AI가 ‘관계’는 제공할 수 있어도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유대감’은 가져다줄 수 없다며 AI가 감정을 표현하고 함께 공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사람과도 연결돼 있지 않은 ‘정서적 착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우려섞인 목소리에 우리는 더 집중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허상의 대화상대라도 찾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외로워서 살 수 없도록, 다른 인격적 대상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AI가 공감하는 듯이 건네는 말들에 내 감정과 기분이 이해받았다고 착각하며, 그 AI와 관계가 맺어진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할 때 진짜 인격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는 앞으로 더 어려워지게 되는건 아닐까요? 권교수가 말한 정서적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공감형 AI가 새로운 소통이 창구가 될 수 있다는 반응에, 그 사람들은 앞으로 자기 자신에게 전적으로 맞춰주는 AI가 아닌 서로 맞춰가야 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방법은 점점 더 잃어버리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더욱 걱정이 앞섭니다.

 

스마트폰으로 카톡과 메시지 등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10~20대 청년들은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거나, 대면하여 눈을 보며 대화하는데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기분에 맞는 좋은 말만 해주고, 자신에게 전적으로 맞춰주는 공감형AI와 관계를 맺는다고 착각하는 정도가 심해질수록 실제로 사람들과 부딪히고 대화하며 진짜 관계를 맺어가는 일에는 더욱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화를 하며 서로 관계를 맺어갈 때에도 어느 한쪽의 요구사항에만 맞춰진 관계를 맺는건 진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닐뿐더러 설령 처음에 나에게 맞춰진 관계가 맺어진다고 생각했을지라도 그런 일방적인 관계는 결코 깊어질 수도, 오래갈 수도 없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우리 주변에서 잊혀진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형제자매 없이 외동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사회의 1인 가구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을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처음엔 다투기도 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그런 과정이 힘들어서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욱 아무와도 관계맺을 수 없는 혼자만의 동굴속에 영원히 갇혀버릴지도 모릅니다.

 

더 Culture 이강

river7_lee@naver.com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