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vs '아빠의 길'

[파파스토리]

 

'나의 길' vs '아빠의 길'

 

어느덧 세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아빠로서 나’와 원래 ‘나’와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그렇게 제가 원하는 것과 아빠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선택의 귀로에서 겪었던 아쉬운 경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을 스피치 대회를 소중한 첫째 딸아이의 소풍을 위해서 포기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저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토스트 마스터즈’라는 영어모임을 가는데 그 토스트 마스터즈는 전 세계적인 모임이라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스피치 컨테스트를 합니다. 특히 하반기 컨테스트는 4가지 컨셉 중 하나를 주제로 정하여 대회를 하는데 올해는 ‘유머러스 스피치’라는 컨셉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원래 말하는 것과 사람들 웃기는 것을 좋아하고, 또한 내 유머가 영어로도 통할지 테스트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한국말만큼 애드립이 되지 않아 안타깝게 탈락했고, 한국어 유머러스 스피치에서 제가 속한 클럽의 대표로 선정되어 그 다음 대회인 ‘Area 스피치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쑥쓰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중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였습니다. 대학교 때에는 사람들을 웃기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학창 시절, 내 앞에 어떤 사람이 앉더라도 그 사람이 30분 안에 지칠 정도로 배꼽을 쥐며 웃게 만들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내가 어디 있더라도 상대방을 웃기는 것에 커다란 만족감을 누렸습니다. 심지어 소개팅을 나가서도 이 사람이 나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질까보다 내가 얼마나 그녀를 웃기느냐에 중점을 둘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졸업 후 군대에서 장교로 보낸 40개월과, 이후 취직하여 10년 가까이 보낸 보수적인 금융기관의 일터 속에서 유머감각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음을 느끼던 차에 이번 스피치 컨테스트는 나름 제 속에 있는 유머감각을 다시 일깨워 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2015년 9월 19일 드디어 유머러스 스피치 컨테스트 Area 대회! 결과는? 두두둥 1등! 야호! 이제 그 다음 대회인 ‘Division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최상위 대회인 ‘National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 대회에서 1~3위 안에 들면 그래도 수천, 수만 명의 국내 토스트 마스터즈 회원들 가운데 제가 적어도 한국말로는 가장 웃긴 사람 중에 하나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점점 학창시절의 자부심, 자신감을 다시 찾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다가올 제 인생의 2막의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고요.

 

그런데 아뿔싸!

Division 대회가 있는 날, 큰 딸의 유치원 등산대회랑 겹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아기를 출산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라 갈 수도 없고 아빠인 제가 유치원 행사에 반드시 함께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두 개를 모두 참석하려고 사방팔방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두 행사 장소의 거리를 고려해 볼 때 하루에 두 개의 스케줄을 모두 소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4개의 컨셉이 돌아가며 열리는 하반기 스피치 컨테스트 특성 상, 다음번 유머러스 스피치가 열리는 4년 후엔 저는 40이란 나이에 접어 들 것이고, 금융기관에 재직하며 나이와 반비례하는 유머감각을 그때까지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이번 컨테스트는 매우 욕심이 났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는 앞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최소한 24번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을 맞이할텐데 이번 등산대회에 굳이 참석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큰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못 갈 것 같다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때 큰 딸의 얼굴에 비쳐진 깊은 실망감, 서운함, 안타까움... 오히려 싫다고 울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 내는 것보다 더 가슴에 깊게 박히더군요. 중·고등학교의 소풍은 별것 아닐지 몰라도 이제 6살인 딸아이의 첫 번째 소풍은 지금로서는 얼마나 커다란 경험일까를 생각해보니 저만을 위해서 소풍을 못 가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외로 딸아이는 현 상황에 수긍을 하고 유치원 선생님께 못 간다고 이야기까지 했지만 저의 갈등은 계속 되었지요. 평일날도 여느 아빠와 같이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딸아이에게 시간도 못 내는데 어떻게 할까? 이 스피치 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National 대회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못 나갈 확률이 더 클텐데, 이런 도전에 나 하나 즐기고 자부심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저는 스피치대회를 포기하고 딸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등산대회에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을 들은 딸아이는 무척 좋아했지요.

 

등산대회는 즐거웠습니다. 큰딸과 아빠인 저, 모두에게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죠. 그리고 물론 제 결정에 후회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등산대회를 다녀오고 Division 대회의 결과를 들은 순간! 솔직히 마음이 크게 동요 되더군요. Area대회에서 제 다음으로 2등을 했던 사람이 Division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게 아니겠습니까? 맙소사... 이런 일이! Division 대회가 이렇게 해 볼만 했을 줄이야, 이 정도면 내가 나가도 National 대회까지 나갈 수 있었을텐데...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 죽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말 안타깝고 아쉽고... 그 감정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 이렇게 내 자신이 아빠가 되어가는구나 랄까요?^^ 그렇게 올해 저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유머러스 스피치대회는 끝나고 저는 4년 뒤에 다시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그 때까지 저의 유머감각이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경기도 군포시 이인희

41700000@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7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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