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때론 삶이 지치게 할찌라도
이번 설은 주말과 월요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무려 6일을 쉬게 되었다. 자식들이 언제올 지 궁금했지만, 언제오냐고 내가 먼저 전화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다 컸으니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야지, 나도 자식들에게 연연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를 해보고 싶지만, 올 때 되면 오겠지 하고 꾹~ 참는다.
설 전날이 되자 결혼을 하지 않은 막내딸이 가장 먼저 집에 왔다. 오랜만에 만나니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서 딸이 오자마자 한 시간 가량 대화를 했다. 주로 내가 말을 하고, 딸은 중간중간 맞장구 치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딸이 시골에 사는 동네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 누구는 90세 잔치를 했고, 누구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을 했고, 누구는 내년이면 101세라고 하니, 이제 정말 100세 시대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며 딸이 놀랜다. 오래 사는 것보다 나는 아프지나 않고 살면 좋겠다는 진심이 툭 튀어나왔다.
설 당일이 되니 인천에 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가 왔다. 며느리는 시집을 올 때는 볼이 통통하고, 앳된 얼굴이었는데 늦게 낳은 손자가 ADHD 진단을 받으면서 아이를 돌보느라 맘 고생을 많이 해 얼굴이 반쪽이 되고, 항상 기운이 없어 만날 때마다 안쓰럽다. 그간 혼자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손자가 ADHD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유달리 아이가 산만하고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로만 여겼었다. 사람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참견을 하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만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마디로 지나칠 정도로 사교적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학교에 진학을 하고서 점차 문제가 드러났다. 수업시간에 너무 산만하고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장난을 치려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을 아들 내외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어 했지만, 조기에 치료하면 더 빨리 치료가 된다는 말에 검사를 받고 ADHD 판정을 받았다. 아이는 약을 먹으며 상당한 호전을 보였는데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피부 간지러움증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엄마, 너무 간지러워.” 하면서 자꾸 몸을 긁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조금만 참으라고 달래는 며느리와 손자를 보니 마음이 저릿하다. 건강검진 결과가 고위험군으로 좋지 않게 나와 올해부터 금연을 시작한 아들, ADHD약 부작용으로 힘들어 하는 손자, 아픈 친정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며느리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아들아, 며느리야.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할 일은 이 세상에 없단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워서 그런가? 자책하지 말거라.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고 다행히 더 큰 부작용이 없고, 치료를 일찍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하자. 힘든 상황이지만 부부끼리 마음이 맞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것, 아이가 치료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잘 따라주는 것 등 감사한 일에 마음을 집중해서 현실을 살아가자.
충북 음성군 이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