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끼치며 삽시다!
요즘 우리는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예의 바른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부담을 줄까 봐 조심하고, 불편을 만들까 싶어 말을 아끼며 서로의 삶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연스러운 안부 인사조차 부담스럽고, 옆집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도 ‘누가 사는지’보다 ‘조용히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은 분명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이웃, 관계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 두기는 한편으로 우리의 안전을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뉴스에서 듣는 각종 사건‧사고는 더 늘어나는 것 같은데 정작 우리의 일상에서는 누가 위험에 처했는지도 누가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웃끼리 서로를 모른다는 사실은 범죄자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공동체라는 마지막 방어막을 약하게 만듭니다. 예전에는 이웃의 눈길만으로도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시와 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역할을 대부분 공권력이 대신합니다. 하지만 공권력은 항상 옆집 벽 너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글의 제목을 '폐 끼치며 삽시다!'로 정했습니다.
물론 '폐를 끼치자'는 말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일부러 피해를 주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너무 완벽한 고립 속에 살지 말자는 제안입니다. 누군가에게 조금 의지하고 누군가의 삶에 조금 관여하고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주는 관계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자는 마음에서 입니다. 인간은 서로 얽히고 부딪히며 성장하는 존재인데 우리는 ‘피해 주기 싫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관계를 스스로 차단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쁘고 각박한 시대라 해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결코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침마다 마주치는 이웃에게 가볍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는 일,
아파트 게시판의 도움 요청 글에 한 번쯤 눈길을 주는 일,
층간소음이 들린다고 곧바로 불만을 터뜨리기보다 먼저 “괜찮으세요?”라고 안부를 묻는 일,
누군가의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면 잠깐 들어주고,
새로 이사 온 집이라면 “필요한 거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 하세요”라는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사실은 공동체의 숨을 되돌리는 길입니다.
‘폐를 끼치다’는 말은 한편으로 ‘관계를 맺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려면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나도 누군가의 폐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불편함을 주고받을 때 그 사이에는 인간적인 온기가 생기고
그 온기가 모이면 사회는 더 안전하고 더 따뜻하며 더 믿을 만한 곳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너무 혼자서 잘 살려고 애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하려 하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척하며 문제를 겪어도 민폐를 끼칠까 봐 끝까지 혼자 견디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살아서도 안 됩니다.
서로의 작은 폐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공동체의 시작이자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다움의 회복입니다.
부디 이번 달만큼은, 그리고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조금은 서로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 폐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관심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위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작은 폐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마침내 우리 주위를 다시 사람 냄새 나는 곳으로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손미정(예술의전당 예술교육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