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린내풀 (Tripora divaricata) 무더위에 지친 날의 연속이지만 절기가 바뀌고 한밤중은 조금 시원한 맛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렇게 무더위의 힘이 살짝 빠질 무렵이 되면 산야에는 예쁜 보라색의 꽃이 피어납니다. 예전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발품을 팔고 돌아다녀야 겨우 볼 수 있는 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생 분포는 전국적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다면 아마도 예쁜 꽃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누린내풀은 꽃술이 둥글게 휘어진 것이 미용실에서 고데기를 이용하여 멋부린듯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색상도 누구나 좋아할 보라색입니다. 이 멋진 모습에 현혹되어 줄기를 자르거나 꽃을 만지면 심한 누린내를 풍겨 꽃에서 멀리 떨어지고 가까이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누린내풀을 관상용으로 기르는 경우가 없습니다. 누린내풀은 어쩐 일로 이런 냄새를 풍기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보면 볼수록 그 모습은 아름답고 예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누린내풀의 꽃말은 ‘내 이름을 기억하세요’라고 합니다. 아마도 누린내풀 실물을 만난 경우 누구나 한 번쯤은 꽃을 들여다보려고 줄기를 잡고 코끝으로 당기게 될 것이고 강력
‘문제행동은 구조의 신호’ ‘문제행동은 구조의 신호’라는 《공부 상처》(저자 김현수) 선생님 말씀을 현장에서는 종종 잊는다. 마음이 가지 않고, 문제행동 때문에 상처받는 탓에 방어하기 바쁘니 여유가 없어서다. 그날은 모처럼 선생님 말씀을 되새겨보자고 다짐하고 일과를 시작했다. 교실에서 외톨이로 떨어져 있어 이미 공지된 수행평가 날짜를 본인만 모르는 여학생이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 원서를 책상 위에 펴놓고는 졸기 일쑤인 아이였다. 선생님들과 계속 다투고 끝내는 언짢게 돌아가서 교무실에서는 위험 학생으로 점찍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는 4교시 수업 전 찾아와 보건실에 가서 누워있겠다고 확인을 받으러 왔다. 알겠다고 하고 수업을 들어가면서 후문을 보니 닌자처럼 담을 넘는다. 5교시는 부담임 임장지도(현장수업)라 수업에 들어가니 허겁지겁 아이가 자리에 앉으면서 휴우 부채질을 한다. 마치 안 들키고 무사히 들어온 것에 자축하듯이. 복도로 불러 담 넘은 이유를 묻고 그동안 관찰했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런저런 당부를 했다.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부터 생리통이 심하다는 이야기까지 그저 변명을 일관하는 말뿐이었다. 초반에는 노력하다가도 조금만 시들
막바지 무더위를 달래는 향기 – 네롤리 이야기 여름의 끝자락, 지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는 향이 있습니다. 바로 네롤리(Neroli) 에센셜오일이죠. 네롤리는 오렌지나무의 순백의 꽃에서 증류해 얻는 귀한 아로마 오일입니다. 하나의 오렌지나무에서 얻어지는 에센셜오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잎과 가지에서 추출하는 패티그레인(Petitgrain), 껍질에서 얻는 상큼한 오렌지 스윗(Orange Sweet), 그리고 꽃에서 피어나는 우아한 향의 네롤리(Neroli). 각각의 오일은 서로 다른 향과 효능을 지니며, 특히 네롤리는 고급스러운 플로럴 시트러스 향으로 ‘귀족의 향기’라 불린답니다. 왕비가 사랑한 향, 네롤리 네롤리라는 이름은 17세기 네롤리 공화국의 왕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왕비는 오렌지꽃 향을 사랑해 장갑, 목욕물, 의복 곳곳에 이 향을 스며들게 했다고 합니다. 그 부드럽고 매혹적인 향은 왕비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그녀가 이 향을 꾸준히 즐겨 회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심지어 그녀가 70세에 이르렀을 때, 50대의 폴란드 국왕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는 신화 같은 일화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네롤리의 향이 얼마나
함께 살아갈 용기, 함께 쓰는 미래 우리는 지금 인구절벽이라는 이름의 낯선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의 전면을 장악하면서, 이전까지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다문화’는 더 이상 변두리 담론이 아니다. 농어촌의 초등학교 교실부터 도시 산업단지의 저녁 거리까지, ‘한국 사회’라는 풍경 속에서 다문화는 이미 현실이자 일상이다. 그러나 현실로서의 다문화가 익숙해지는 만큼, 그 이면에서 자라나는 문화적 긴장과 충돌의 가능성은 점점 더 날카롭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불편한 질문 -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최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이민자 자녀가 자라서 한국 사회에 적대감을 갖게 되면 어쩌나”라는 우려가 들려온다. 이는 무슬림 2세들이 유럽에서 종종 겪은 정체성 충돌이나 사회부적응 사례를 연상케 하며, 한국도 그러한 사회 갈등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품고 있다. 특히 이주배경 청소년, 그중에서도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국어와 문화 적응의 이중 장벽 앞에서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비율은 일반 청소년보다 두 배 이상이며, 상당수가 비정규 노동시장에 조기 진입해 ‘사회적 이방인’으로 머무른다. 그렇다면, 이러
광복절,, 미군정의 시작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속인가? 멸망과 건국으로 본 한국사의 흐름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다. 그럼 우리나라는 1945년 이후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나라를 되찾았으니 당연히 나라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기를 미군정시기라고 부른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의 역사는 첫 국가 고조선부터 지금의 대한민국까지 꾸준히 이어왔다. 5천년의 긴 역사를 멸망과 건국으로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본다. 고조선의 건국(기원전 2333) 고조선의 멸망(기원전 108)과 고구려의 건국(기원전 107) 고구려의 멸망(668)과 발해의 건국(684) 발해의 멸망(925)과 고려의 건국(918) 고려의 멸망(1392)과 조선의 건국(1392) 조선의 멸망(1897)과 대한제국의 건국(1897) 대한제국의 멸망(1919)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1919~1945~1948)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멸망연대와 건국연대가 다른 것이 몇 개 있다. 먼저 하나의 질문을 하고자 한다. 고대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나라를 세운 나라는 어떤 나라일
참나리 (Lilium lancifolium)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더운 것도 어느 정도이지 연일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전화기에는 재난 문자가 도착하며 자극적인 삐익~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현재 온도가 어느 정도 인지, 다른 지역은 얼마나 더운지 확인하려고 기상청을 방문해 봅니다. 대부분의 도시가 35~37도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한낮에는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볼일이 있어서 뜨거운 태양과 사우나 같은 더위를 참아가며 길을 나서 봅니다. 길을 나서보면 요즘 눈에 띄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키는 커서 어느 집은 담장 넘어 꽃을 피운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더위를 피해 바닷가를 찾을 때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강가나 계곡 주변을 찾아가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야생화입니다. 참나리라고 부릅니다. 이름에 ‘참’이란 단어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나리류 중에서 이 품종이 진짜 나리라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리 중에 진짜, 가짜는 없겠지만 아마도 탐스럽고 흔한 것이 옛 어른들에게는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나리의 꽃말은 다양하여 1.순결 2.깨끗한 마음 3.변치
목포 판소리, 유학 3년! 딸, 명실상부한 어린이 유망주 소리꾼 돌이켜보면, 유학 생활을 시작 한지 반 년 정도 되었을 무렵에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지면(현 인터넷판 더 컬처)에 근황 글을 남겼었는데, 딸아이의 목포 판소리 유학 생활이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귀엽고 똘망똘망했던 꼬마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얼굴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가 비친다. 그 사이 아이는 훌륭하신 할머니 명창 선생님 아래에서 열심히 소리를 연마해 국내 최고 권위의 전주대사습 판소리 초등부 대회 장원을 두 번이나 차지하고, KBS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아 명실상부한 어린이 유망주 소리꾼이 되었다. 그간 KBS 아침마당, 광주 MBC 프로그램 등 매스컴과 방송들에도 여러 번 소개가 되었고, 작년부터는 이런 저런 좋은 자리와 행사들에 초청되어 소리 잘하는 어린이 소리꾼으로 소개되고, 판소리를 들려드리며 관객분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판소리 대회나 공연 등에 가면 딸아이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분들도 늘고, 그 중에는 싸인을 해 달라 하시는 분들도 있다. 지금도 이런저런 공연들과 방송 촬영 등이 계속 진행 중이다. 정작, 아빠의 고민 아빠인 나의 업무는
무채색의 나라 한국! 이제 그만! 얼마 전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2층 커피숍에서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창밖을 통해 무심히 도로 위의 지나가는 차를 보고 있었는데 점차 차들의 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완전 무채색 행렬이었지요. 혹시 다른 색깔이 있을까 싶어도 흰색, 회색, 검정색, 쥐색 등 완전 무채색이었습니다. ‘와~ 정말, 우리나라 차 색깔이 이렇다는 말은 들었지만, 참으로 이 정도인가?’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이 차를 이리 무채색만 사는 이유에 대해 더 정확히 알아봐야겠다는 것과 전 국민 차의 무채색화는 참으로 심각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국인, 획일적인 무채색차 사랑! 그 이유? 첫째는 심리적 요인으로 무채색차를 타면 일단 남의 눈에 띄지가 않고, 심지어 교통 규범을 지키지 않아도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군중 속에 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무난함에 안정감을 느끼고, 색깔이 확 띠는 차로 남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틔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반면 가진 것을 과시하고 싶으니 대신 큰 차를 산다고 합니다. 황상민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무채색도 검정과 흰색, 은색, 회색의 심리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