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국악의 메카, ‘목포의 위엄’
판소리하는 딸아이가 그간 제법 자라나 여기저기 자리에 불려 다니게 되면서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왜 목포에 오게 되었어요?”, “아~ 예, 판소리사를 공부하다 보니 목포가 20세기 판소리사에서 어마어마한 곳이더라고요...” 하고 시작되는 긴 이야기. 현대 판소리사에서의 목포의 위엄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민족 국악의 메카인 목포 판소리 역사의 주요 인물들, ‘목포의 위엄’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장월중선’에 의해 설립된 ‘목포국악원’
20세기 목포 국악의 산실은 ‘목포국악원’에서 출발합니다. 목포국악원은 임방울의 라이벌이었던 장판개의 조카 ‘장월중선’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국악원의 초대 원장은 김창훈, 강사는 장월중선이 맡았죠. 목포 국악원의 초대 강사 장월중선(장순애, 1925~1998)은 전통 예인 집안 출신이었는데 판소리, 가야금, 가야금병창, 거문고, 아쟁, 전통무 등에 두루 뛰어난 타고난 예인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국악 스타였던 임방울의 협률사 및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의 창극 단체와 여성국극협회, 임춘앵이 만든 여성 국극단체 등에서 배우로 출연하였고 그곳에서 여러 작품들을 작곡하고 안무를 맡았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포국악원, ‘목포시립국악원’으로 재창단되다
1950년대 목포 최초의 국악강습소는 안향련의 아버지 안기선이 세웠는데, 장월중선은 1952년 산정동의 한 노인당에서 목포의 두 번째 사설 국악강습소를 열었고, 1955년에는 위 강습소를 기반으로 공식적인 목포 국악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 목포국악원을 통해 배출된 그의 제자로는 안향련을 비롯하여 신영희, 오비연, 안애란(안부덕), 이지오(이은진), 박계향, 박소연, 백인영 등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장월중선은 이들에게 판소리, 무용, 가야금, 아쟁, 연극, 농악 등을 가르쳤으며 제자들과 함께 명절 때마다 목포양조장이나 옥천양조장 주변에서 농악을 하기도 했습니다. 목포국악원은 창극 ‘춘향전’ 등을 평화극장 무대에 올리기도 하였고, 4~5년 후, 산정동 공간을 옮겨 유달산 아래 유달국악원으로 새로 개칭해 공간을 운영하였으며 이 사설 국악원은 이후 1976년 7월 2일 ‘목포시립국악원’으로 변경, 재창단되었습니다.
판소리의 메카, 목포의 주요 국악인들
목포에서 태어났거나 이를 거쳐 간 주요 국악인으로는 장월중선을 비롯하여 화순 출신의 소리꾼 안기선(1904~?), 목포 출신의 박계향(1940~2024), 보성 출신의 조상현(1939~ 목포고 졸업, 목포국악원 판소리 강사), 진도 출신의 신영희(1942~, 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안기선의 딸이며 송정리에서 태어나 1960~70년대의 최고 국악 스타였던 안향련(1944~1981), 박봉술(목포국악원 강사), 한농선(1934~2002, 국가문형유산 흥보가 보유자), 강남종(고법), 화순 출신으로 아쟁산조 유파를 창시한 김일구(1940~, 현 국가무형문화재 적벽가 보유자), 장월중선의 딸이며 목포 출신인 정순임(1942~, 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유영애(전북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박방금(전남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 명창에 목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판소리를 처음 수학하였고, 윤진철(현 국가무형유산 적벽가 보유자)과 국악인 오정해(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박애리, 조주선이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소리를 배우고 수학했던 곳이 목포입니다. 장월중선의 또 다른 제자인 국가무형유산 적벽가 보유자인 김일구를 비롯, 흥보가 보유자인 이난초 명창 역시 목포에서 김흥남 명창에게 소리를 닦으며 수학하였습니다.
21세기 국악, 트로트 스타 배출로 이어져
목포의 국악, 특히 소리의 역사는 현대로 이어져 전라남도 무형유산 판소리 보유자 5인 중 3인(안부덕-춘향가, 박방금-수궁가, 김순자-흥보가)이 현재 목포에 전수소를 운영 중이며 위 전수소에서 TV조선 미스트롯1의 우승자 송가인(박방금 제자), 미스트롯2의 우승자 양지은(김순자 제자), JTBC 풍류대장 2위 김준수(국립창극단 수석, 박방금 제자), 3위 서진실(안부덕 제자) 등 전국적 국악, 트로트 스타들이 배출되었습니다. 2024년 4분기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큰 화제가 되었던 tvN 드라마 ‘정년이’의 주인공 윤정년이 천재성을 타고 태어났다는 설정으로 그려졌던 고향이 바로 ‘목포’였던 것은, 작가의 치밀한 위의 역사적 고증들이 그 배경이 되었습니다. 정년이의 서이레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전문적으로 소리를 배우지 않아도 소리 문화가 널리 퍼져있어 정년이가 자연스럽게 소리를 습득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그래서 전라도, 목포 출신을 설정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민족 국악의 산실, 목포! 현재도 진행형
인구 21만 지방 소도시의 작은 땅에서 전주, 광주 등의 어느 큰 도시들보다 더 커다란 국악의 역사들이 만들어져 왔고, 이 역사는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목포 산정동에서 전수소를 열어 판소리를 가르치는 박방금 명창(전남 무형문화유산 수궁가 보유자)의 문하에는 현재 울산, 창원 등지에서 초등, 중학생들이 매 주말 700~800km 이동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소리를 배우러 목포를 오가고 있습니다. 2023년 국내 가장 큰 메이저 대회인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대회와 KBS 전국어린이판소리왕중왕 대회를 모두 1위로 휩쓴 임사랑양(목포 백련초 6학년)은 3년 전 서울에서 목포로 판소리 유학을 와 박방금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지 1년 반 만에 위와 같은 극적인 성장과 성취를 이뤄내었죠.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물은 땅의 기운이 조화를 이룬 터에서 태어난다는 의미이죠. 각 지역에서 한 명도 보유하기 힘든 국가문화유산 판소리 보유자 9명 중 5명이 위와 같이 목포에서 태어났거나 수학하였고, 한민족의 국악의 산실로 거듭나고 있는, 진행형의 역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오늘날의 목포입니다.
글 정리 임대균(시인, 문화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