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모네, 르느와르, 반 고흐 그리고 세잔느) 여행지에서 미술관은 베이스캠프다. 비바람을 피하고 혹서, 혹한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길을 잃었더라도 미술관만 있으면 그곳이 곧 목적지로 변한다.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되어 미술관 곳곳을 탐험할 수 있다. 볼로뉴 숲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이 그랬고, 네덜란드 풍차마을의 잔스 뮤지엄이 그랬다. 좋은 그림 하나만 있으면 지루할 새가 없다. 논리가 필요 없이 오감으로 그림에 빠지는 일이 그림을 보는 기쁨이다. 노원아트센터에서 인상파 화가의 특별 전시가 있단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찾았다. 뜻밖에 현수막이 보인다. 전쟁을 일삼는 이스라엘과 협업하는 전시에 대한 반대 현수막이었다. 알고 보니 이번 전시는 이스라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이 우리나라로 나들이를 온 탓에 걸린 플레카드였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새삼 느끼면서 그림을 찬찬히 보았다. 증기선, 공장 굴뚝, 증기 기관차가 이번에는 또렷이 보였다. 세느강에서 짐을 나르는 인부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나무다리를 걷고 그 뒤에는 굳건하게 증기를 내뿜는 공장이 보였다. 근대를 알리는 모습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가지가
남도 소리의 전설, 강송대 명창 지난 11월 13일 강송대 명창의 국악 입문 80년 인생을 기념하는 ‘강송대의 진도 풍류’ 공연이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1941년 심청가의 ‘추월만정’ 소리를 잘했다고 알려진 이화중선 명창의 수제자인 진도 이근녀 여사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소리를 해 온 세월이 어느새 80여 년이 된 것이다. 역사상 한 명창의 80주년의 소리 인생을 기념하는 공연은 처음이기에 가서 이를 꼭 기록해 둬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고 진도까지 차를 몰았다. 5세, 국악에 입문 강송대 명창은 전라남도 무형유산 남도잡가 보유자로 5세에 국악에 입문하여 목포에서 활동하던 오촌 고모인 강숙자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춘향가’ 등을 배웠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어렵게 가르쳐 놓은 것을 잊지 말라고 매를 맞아가며 호되게 소리를 배웠던 시절로 명창은 당시를 회상했다. 타고난 목으로 당대 최고 여류 명창이었던 이화중선의 제자였지만 집안의 만류로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어머니 이근녀 여사의 바램에 따라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을 드러낸 강명창은 타고난 스타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광주, 여수, 목포, 군산 등 남도 지역의 큰
우산 속 한가위 몽키호테 홀연히 세찬 빗줄기 아침 내내 어둡게 돌아온 빠알간 추석 쳐진 마음 부풀게 보름달 보이지 않아 가슴 가득 아쉽게 그 너머 별빛 하나가 소망되어 힘차게
박제된 만정 김소희의 ‘심청가’ 따님(박윤초)이 보시기에 어머니(김소희) 목소리의 정점은 언제셨나요? “저는 50~60대로 봐요. 고음과 저음을 힘 안 들이고 낼 수 있으셨고 꺾을 데는 분명히 꺾고 떨 데는 떨어서 소리를 낼 줄 아셨어요. 아무리 어려운 기교도 힘없이 발휘하는데 그 무렵 어머니가 ‘심청가’를 완판 녹음하셨죠.”(중앙일보 인터뷰 중) “이 대목이 좋으면, 이 스토리가 좋으면 따서 당신 것으로 삼으셨어요. 각각의 특징을 소화해서 자기화한 것이죠. 어느 ‘소리제’만을 따르면 어느 대목에선 따라 부르기 어렵지만 만정의 목소리는 둘 다 가능했어요. 그래서 만정의 제자(성창순)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어요. ‘만정제’를 하면 동편제, 서편제는 싱거워 못 한다고…” - 양원석 고문 판소리의 자존심, 국창이라 불렸던 김소희 명창 88 서울올림픽의 폐막식을 기억하는 이들은 ‘떠나가는 배’의 소리를 맡았던 작고 단아한 만정 김소희 명창을 기억할 것이다. 판소리의 자존심, 국창이라 불렸던 김소희 명창이 타계하신지 올해로 30년.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가 가르친 안숙선, 신영희 명창 등 후학들의 소리 속에, 또 오래된 옛 자료들 속에서 그 분의 흔적을, 그
목포 판소리, 유학 3년! 딸, 명실상부한 어린이 유망주 소리꾼 돌이켜보면, 유학 생활을 시작 한지 반 년 정도 되었을 무렵에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지면(현 인터넷판 더 컬처)에 근황 글을 남겼었는데, 딸아이의 목포 판소리 유학 생활이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귀엽고 똘망똘망했던 꼬마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얼굴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가 비친다. 그 사이 아이는 훌륭하신 할머니 명창 선생님 아래에서 열심히 소리를 연마해 국내 최고 권위의 전주대사습 판소리 초등부 대회 장원을 두 번이나 차지하고, KBS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아 명실상부한 어린이 유망주 소리꾼이 되었다. 그간 KBS 아침마당, 광주 MBC 프로그램 등 매스컴과 방송들에도 여러 번 소개가 되었고, 작년부터는 이런 저런 좋은 자리와 행사들에 초청되어 소리 잘하는 어린이 소리꾼으로 소개되고, 판소리를 들려드리며 관객분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판소리 대회나 공연 등에 가면 딸아이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분들도 늘고, 그 중에는 싸인을 해 달라 하시는 분들도 있다. 지금도 이런저런 공연들과 방송 촬영 등이 계속 진행 중이다. 정작, 아빠의 고민 아빠인 나의 업무는
능소화 황의수 담장 위에 붉은 숨결 하나 온몸 불사른다 지나가는 바람에도 눈길이 머문다 한철 피었다 지는 꽃 그리움만 남는다
봄의 고백 황의수 초록이 춤추는 길목 바람에 피어난 노래 민들레 한 송이 봄의 고백을 전하네 햇살 머금은 그대 눈빛 내 마음도 살며시 피어난다 꽃잎 닿은 손끝 따라 너에게 번져간다 봄은 조용히 우리 사이에 머물렀다
봄 하나님 김정임 봄 하나님은 바쁘시다 추운 땅 밑에 불 지피시고 연인들이 선 자리마다 꽃망울 터뜨리시고 사람들의 눈이 닿는 먼 산머리마다 가지런히 이발도 하신다 아이들을 위해 하늘에 솜사탕도 만들어 놓고
한민족 국악의 메카, ‘목포의 위엄’ 판소리하는 딸아이가 그간 제법 자라나 여기저기 자리에 불려 다니게 되면서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왜 목포에 오게 되었어요?”, “아~ 예, 판소리사를 공부하다 보니 목포가 20세기 판소리사에서 어마어마한 곳이더라고요...” 하고 시작되는 긴 이야기. 현대 판소리사에서의 목포의 위엄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민족 국악의 메카인 목포 판소리 역사의 주요 인물들, ‘목포의 위엄’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장월중선’에 의해 설립된 ‘목포국악원’ 20세기 목포 국악의 산실은 ‘목포국악원’에서 출발합니다. 목포국악원은 임방울의 라이벌이었던 장판개의 조카 ‘장월중선’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국악원의 초대 원장은 김창훈, 강사는 장월중선이 맡았죠. 목포 국악원의 초대 강사 장월중선(장순애, 1925~1998)은 전통 예인 집안 출신이었는데 판소리, 가야금, 가야금병창, 거문고, 아쟁, 전통무 등에 두루 뛰어난 타고난 예인이었습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국악 스타였던 임방울의 협률사 및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의 창극 단체와 여성국극협회, 임춘앵이 만든 여성 국극단체 등에서 배우로 출연하였고 그곳에서 여러 작품들을 작
[임작가의 K-Classic(국악) 톺아 듣기] 안숙선 명창의 Last Dance; 2024 국립극장 ‘송년 판소리’ 후기 북쪽 한파가 내린 맑고 높고 추운 날이었다. 국립극장 산기슭 구석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파를 피해 웅숭그린 몸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몇 개월 전 민속극장 풍류의 제자발표회에서 뵈었을 땐 건강이 좋아진 모습을 보이셔서 전설의 ‘쑥대머리’를 직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전성기 시절 안숙선 명창의 춘향가 앨범의 쑥대머리 대목을 서울을 향하는 차 안에서 즐겁게 또 잔뜩 들어둔 터였다. 매년 구하기 힘든 국립극장 송년 판소리 좌석표라 하루에 두세 번씩 극장 사이트에 들어가 빈자리가 혹시 없나, 더 좋은 자리가 없을까 하고 2층 끝자리에서 자리를 바꾸기 시작해 공연 이틀 전 기적적으로 1층 두 번째 줄 가운데 자리가 하나 비워져, 환호를 지르며 서둘러 자리를 확보한 참이었다. 혹시 엔딩쯤에 한 두 컷이라도 귀한 선생님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카메라를 챙겼다. ‘왜 홀로그램을... 선생님 몸이 많이 아프신가?’ 공연이 시작되고 컴컴해진 장내, 엷은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홀로그램 속 주황색 한복을 입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