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사소한 것들로 글쓰기

에세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사소한 것들로 글쓰기

 

한 알 씨앗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뻗고 꽃이 피듯, ‘귀뚜라미’란 제목에서 시작해 세상의 가을을 향해 번져 나가는 글이라야지, 허턱 ‘가을’이라고 대담하게 제목을 붙였다가 ‘귀뚜라미’로 쫄아 드는 글은 소담스럽지 못한 법이다. (이태준, 《문장강화》)

 

 

 

처음 에세이를 쓰자 하면 마음이 무척 거창해진다. 인생의 사유를 담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 지금껏 살아오며 깨달은 수많은 통찰들을 어떻게든 글에 담아내고 싶다. 인생의 굴곡으로만 따지자면 그 어떤 「인간극장」 출연자보다 못할 것 없고, 통찰로 보자면 이어령 선생 못지않게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싶은 게 우리네 모두의 인생이다. 그것을 글에 담겠다는 포부가 거창하다. 하지만 정작 한두 꼭지를 쓰고 나면 내 진중한 사유는 이미 밑천이 다 떨어져 버리고 더 이상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 많던 내 인생의 스토리와 통찰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에세이 클럽 과제 중 ‘사소한 것으로 글쓰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과제라고 여긴다. 아주 사소한 것, 가능한 한 더욱더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하는 글을 쓰기. 여기서 ‘사소한’이란 물리적인 사소함이 아닌 일상적인 사소함이다. 물리적으로 큰 물건, 장소, 대상이라 할지라도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사소함. 그것이 글을 시작하기에 좋은 지점이다.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그토록 사소하다고 느꼈던 존재’, ‘사소한 줄 알았던 대상’, ‘사소한 순간’으로 어떻게 좋은 에세이를 쓰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에세이 클럽에서는 ‘주방 가위, 간장 종지, 몽당연필, 운동화, 양말’부터 시작해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들, 예를 들어 ‘아침 등교를 준비하는 몇 분의 시간, 매일같이 하는 사소한 대화,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감의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제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관찰’하는 연습을 위해서다.

지나치기 쉬운, 매일같이 지나치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과정은 바로 ‘관찰’에서 시작한다. 한두 번의 관찰을 통해 글감을 붙잡기 시작하면 그 뒤로는 일상의 사소함들을 쉬이 넘겨 버리지 않게 된다.

 

둘째는 글쓰기에서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거창한 주제를 거창하게 쓰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의 글에 모든 에피소드와 모든 소재를 총출동시켜 내가 가진 밑천을 다 써 버리는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만든다. 또한 아주 작은 것을 가지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다가 인생으로 확대되는 사유의 재미도 느껴 보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물건이나 사소한 감정과 오해들, 찰나의 말 한마디. 크고 거창한 사건이나 이념, 물건 등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은 많지 않다.

 

임수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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