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기억을 깨우는 향기 – 나폴레옹과 4711 Eau de Cologne, 그리고 로즈마리 이야기

여름, 기억을 깨우는 향기

– 나폴레옹과 4711 Eau de Cologne, 그리고 로즈마리 이야기

 

한여름의 땀과 습기 속에서도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 향수는 단순한 뷰티 아이템 그 이상이 된다. 향은 감정을 움직이고, 기억을 떠오르게 하며, 때로는 사람의 기운마저 바꾸는 힘이 있다. 여름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 시원하고 맑은 향 중 하나가 바로 Eau de Cologne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오데코롱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4711이다.

 

 

4711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 숫자는 독일 쾰른(Cologne)에 실제로 존재했던 한 건물의 주소였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오데코롱이 후에 브랜드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향수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도 향수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쾰른을 점령한 그는, 군사 작전 외에도 그 도시의 향수공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가 찾은 공장이 바로 4711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는 향수를 제조하는 수많은 작은 공방들이 있었고, 나폴레옹은 급히 향수를 구하려다 4711번지에 위치한 한 제조소에 들르게 되었다. 후세에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쾰른에는 보다 전통적이고 유명한 향수 공방도 존재했으나, 그는 우연히 이곳을 찾았고 이후 4711은 ‘나폴레옹의 향수’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4711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한 향수(Perfume)가 아니다. 4711은 Eau de Cologne, 즉 오데코롱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고 상쾌한 허브와 시트러스 계열이 주를 이루는 가벼운 향수다. 여름철이나 기분 전환용으로 쓰기 좋으며, 피부보다 공기 중에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4711의 핵심 성분은 바로 로즈마리(Rosemary)였다. 향긋한 풀 향이 감도는 이 허브는 단순한 향긋함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 로즈마리는 rosmarinic acid라는 활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성분은 두뇌를 명료하게 하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능으로 유명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학자들이 로즈마리 향을 맡으며 글을 쓰거나 암기를 하던 습관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향의 세계에서 로즈마리는 단순한 허브가 아니다. 수렴 작용(astringent effect)이 뛰어나 피부에 닿았을 때 모공을 조여주고 피지 분비를 조절하는 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스킨케어나 아로마테라피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나폴레옹이 즐겨 사용한 향수가 로즈마리를 기반으로 한 오데코롱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하루에 수십 번 향수를 뿌렸다고 하며, 병 속에 담긴 향을 전장에서까지 들고 다녔다. 피로와 스트레스,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전장에서 로즈마리의 향은 그의 집중력과 판단력에 숨겨진 조력자였을지도 모른다. 오늘날도 로즈마리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 장시간 집중이 필요한 작업자들, 그리고 정신적으로 리프레시가 필요한 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로마다. 특히 아로마 오일이나 롤온 타입으로 휴대하며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두피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한여름, 무겁고 진한 향 대신 가볍고 깔끔한 향으로 일상의 균형을 찾고 싶다면 4711 오데코롱처럼 로즈마리 기반의 시트러스 향을 선택해보는 건 어떨까. 향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된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나폴레옹의 흔적을 따라 향기로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아로마515, 아로마테라피스트 김봉실

@aroma515.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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