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판소리, 유학 3년!
딸, 명실상부한 어린이 유망주 소리꾼
돌이켜보면, 유학 생활을 시작 한지 반 년 정도 되었을 무렵에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지면(현 인터넷판 더 컬처)에 근황 글을 남겼었는데, 딸아이의 목포 판소리 유학 생활이 어느덧 3년이 넘었다. 귀엽고 똘망똘망했던 꼬마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얼굴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가 비친다. 그 사이 아이는 훌륭하신 할머니 명창 선생님 아래에서 열심히 소리를 연마해 국내 최고 권위의 전주대사습 판소리 초등부 대회 장원을 두 번이나 차지하고, KBS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아 명실상부한 어린이 유망주 소리꾼이 되었다. 그간 KBS 아침마당, 광주 MBC 프로그램 등 매스컴과 방송들에도 여러 번 소개가 되었고, 작년부터는 이런 저런 좋은 자리와 행사들에 초청되어 소리 잘하는 어린이 소리꾼으로 소개되고, 판소리를 들려드리며 관객분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판소리 대회나 공연 등에 가면 딸아이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분들도 늘고, 그 중에는 싸인을 해 달라 하시는 분들도 있다. 지금도 이런저런 공연들과 방송 촬영 등이 계속 진행 중이다.
정작, 아빠의 고민
아빠인 나의 업무는 딸내미의 연습 도우미와 음향 감독에서 로드 매니저, 일정 관리, 사진, 영상 촬영 및 편집 등등 업무들이 추가되어 꽤 많은 시간들이 딸아이를 지원하는데 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 입장에선 꽤나 급작스런 변화라 가끔 숨을 돌리며 생각해보면 ‘이게 다 뭔가?’ 싶기도 하다. 판소리를 배우는 자녀를 가진 다른 학부모 분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행복할 것만 같은 상황일 수 있지만, 삶은 모든 인간들에게 언제나 감당할 만큼의 고민과 고뇌를 남겨두기 마련. 이 와중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과 질문들이 계속 고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재능이 입증된 판소리 영재 아이가 이 재능의 길을 잘 걸어가기 위해 부모로서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과 요새 중복되어 듣곤 하는 “트롯이나 다른 음악 오디션은 나가지 않나요?”의 질문에 대한 대답들. 또 일자리가 충분치 않아 고민이 많은 주변 청년 국악인들의 고민들을 듣다 보면 생각하게 되는 국악 장르의 넓고도 좁은 시장–국악(國樂, 나라의 음악)이라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대중들은 잘 모르고 있는 희소한 분야가 주는 불안감. 이런 환경 속에서 재능을 꽃피우고 있는 이 아이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지원하며 교육시켜야 하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들이다.
판소리 미래, 희망의 단초를 발견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 영재들을 길러낸 부모님들의 책들을 읽다가 그 중 피겨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김연아를 길러낸 어머니의 책을 꽤 깊게 공감하며 읽었다. 체급이 없이 잘하는 우승자 한 명을 가리는 치열한 두 분야의 특성이 비슷하다. 그나마 피겨는 전 세계적인 스포츠이고 올림픽 스포츠이기에 그래도 시장이 꽤 형성되어 있는 편이고 남자, 여자, 남녀 혼성 등의 경기들로 구분되지만 판소리 분야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지정되어 있는, 말 그대로 ‘유산’인 오래된 장르에다 대회에선 남녀가 장르 구분 없이 하나의 장르로 함께 경쟁한다. 김연아의 어머니가 고민했던 것처럼 아이의 장래에 관한,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고민과 질문들이 오가고 있을 때, 희망의 단초를 발견한 것은 소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힘이었다. 서울 및 남도의 주요 판소리 대회에 가보면 늘 새로운 학생들이 나타나고 지난번에 봤던 아이는 이번에 또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판소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혹은 국악을 베이스로 한 스타들의 멋진 모습에 반해 소리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학생들이 일정 수 이상씩 항상 존재하고 있다. 크게 유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저 출산의 여파로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전체 학생 숫자에 비례해 보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힘이 어디서 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 장르가 가지고 있는 매력 그 자체에 있다. 폭포 수련, 똥 삭힌 물, 득음 등 판소리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런 클리셰들이 없어도 판소리의 음악과 멜로디는 음악적으로 그 자체로 유려하고 아름답다.
보성소리 ‘심청가’ VS 파가니니의 악명 높은 ‘24개 카프리스’
아이가 지금 배우고 있는 보성소리 심청가의 첫 1시간을 이끌어 가는 대목, 심청의 탄생과 어머니 곽씨 부인의 죽음 전후로 등장하는 대목들은 파가니니의 악명 높은 ‘24개의 카프리스’를 떠오르게 한다. 곡은 있는데 웬만한 창자들이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고저 음역대가 번갈아 진행이 되고 음역대 자체도 높거니와 슬픔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곡을 소화하기에 기술과 감정, 공력이 필요한 대목들이 쉼 없이 최소 20분간 이어진다. 완성하지 못할 곡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완성, 혹은 판막음(해당 곡을 완벽하게 불러 앨범을 완성했다는 표현)할 소리꾼들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소리꾼들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이런 심청가를 비롯해 몸 하나로 전쟁씬을 표현하는 어려운 적벽가, 연기 없이 제대로 맛을 살리기 어려운 흥보가, 수궁가 등 중간중간 눈대목이라 불리는 멋진 아리아들이 공연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하나같이 유려한 멜로디와 기술들, 또 그 안에 인간사의 깊은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갖춘 곡들이다. 음악적 아름다움과 서사를 충분히 갖춘, 소리 그 자체로 즐기기에도 충분히 좋은 곡들임을, 판소리에 대한 공부를 해 나갈수록 더욱 감탄하며, 또 박수치며 느끼게 된다.


판소리 진입장벽, 넘을 수 있는 두 곡!!
그러나 이런 소리의 세계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진입장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창자 한 명과 북 하나로 만들어지는 이 독특하고도 재밌는 음악의 세계를 어떻게 자라나는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이 잘 넘게 할 수 있을지, 이를 돕는 일들을 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론들, 설명들 보다 듣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두 곡을 추천해 주고 싶다. 안숙선 명창 춘향가의 ‘쑥대머리’와 박초월 명창이 부른 ‘강상풍월’이라는 단가다. 안숙선 명창의 쑥대머리는 판소리 기술, 성음의 총집합, 교본과 같은 소리이고, 박초월 명창의 강상풍월은 짙은 한국적 소울이 배어있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큰 박수를 받으며 감탄을 자아낼 우리의 유산,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보유한 소리이다.
자, 이제 이 글을 덮고 유튜브를 켜고 저 두 곡을 한 번 들어보실래요?
글, 사진 임대균(시인, 예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