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갈 용기, 함께 쓰는 미래

함께 살아갈 용기, 함께 쓰는 미래

 

우리는 지금 인구절벽이라는 이름의 낯선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의 전면을 장악하면서, 이전까지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다문화’는 더 이상 변두리 담론이 아니다. 농어촌의 초등학교 교실부터 도시 산업단지의 저녁 거리까지, ‘한국 사회’라는 풍경 속에서 다문화는 이미 현실이자 일상이다. 그러나 현실로서의 다문화가 익숙해지는 만큼, 그 이면에서 자라나는 문화적 긴장과 충돌의 가능성은 점점 더 날카롭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불편한 질문 -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최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이민자 자녀가 자라서 한국 사회에 적대감을 갖게 되면 어쩌나”라는 우려가 들려온다. 이는 무슬림 2세들이 유럽에서 종종 겪은 정체성 충돌이나 사회부적응 사례를 연상케 하며, 한국도 그러한 사회 갈등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품고 있다. 특히 이주배경 청소년, 그중에서도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국어와 문화 적응의 이중 장벽 앞에서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비율은 일반 청소년보다 두 배 이상이며, 상당수가 비정규 노동시장에 조기 진입해 ‘사회적 이방인’으로 머무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긴장과 충돌 가능성은 이주자나 다문화 배경 청소년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 사회의 준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인가? 대부분의 연구와 현장 경험은 후자에 손을 들어준다. 문제는 이주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느냐이다.

 

문화는 충돌한다. 그러나 이해는 그보다 강하다.

문화적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언어, 가치, 가족관, 시간 개념, 교육에 대한 기대, 심지어는 인사법까지 우리와 다른 문화는 때때로 불편함을 야기한다. 하지만 갈등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갈등을 마주하는 자세에 있다. 사회통합 선진국들의 경험이 보여주듯, 충돌은 대화와 조정의 계기로 삼을 때 오히려 사회적 성숙을 이끈다. 한국은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이주자와 그 자녀들을 ‘동화’시키는 데만 집중한다면, 결국 그들은 ‘나 아닌 누군가가 되어라’는 요구에 짓눌려 정체성을 잃거나, 반대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와 ‘거리 두기’를 택하게 될 것이다. 대신, ‘통합’을 향해 가는 사회는 다르다. 이주민이 자기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통합의 본질이다.

 

포용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정이 아닌 정책과 구조의 언어로 포용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다문화 정책은 여성가족부의 가족지원 중심 프로그램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부, 법무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모든 행정부처가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학교에서는 이주배경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언어교육과 정서 지원을 체계화해야 하며, 지역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만나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과 ‘공통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축제보다는 평범한 하루의 나눔이 더 많은 이해를 만든다. 특히 언론과 정치권은 다문화 이슈를 ‘불쾌한 소수의 문제’로 다루지 말고, 우리 모두의 공동 미래 과제로 다루어 인식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시민의 몫 - 불안을 넘는 상상력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관용’보다는 적극적인 ‘이해의지’다. 관용은 ‘참는 것’에 머무르지만, 이해는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옆집에 이주민 가족이 산다는 사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사회, 아이가 이주배경의 친구와 노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많은 사회, 그리고 누구든 ‘여기서 살아가는 시민’으로 존중받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의 내일이다. 어떤 사회든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갈등을 성장의 기회로 전환시키고 다름을 창조적 다양성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는 힘은 이해와 제도, 그리고 상호 노력을 향한 상상력에서 나온다. 그 갈등을 함께 살아갈 용기로 마주하고, 함께 써 내려갈 미래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사회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사회’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실천이다.

 

군포이주와 다문화센터

김강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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