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만정 김소희의 ‘심청가’
따님(박윤초)이 보시기에 어머니(김소희) 목소리의 정점은 언제셨나요?
“저는 50~60대로 봐요. 고음과 저음을 힘 안 들이고 낼 수 있으셨고 꺾을 데는 분명히 꺾고 떨 데는 떨어서 소리를 낼 줄 아셨어요. 아무리 어려운 기교도 힘없이 발휘하는데 그 무렵 어머니가 ‘심청가’를 완판 녹음하셨죠.”(중앙일보 인터뷰 중)
“이 대목이 좋으면, 이 스토리가 좋으면 따서 당신 것으로 삼으셨어요. 각각의 특징을 소화해서 자기화한 것이죠. 어느 ‘소리제’만을 따르면 어느 대목에선 따라 부르기 어렵지만 만정의 목소리는 둘 다 가능했어요. 그래서 만정의 제자(성창순)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이가 있어요. ‘만정제’를 하면 동편제, 서편제는 싱거워 못 한다고…” - 양원석 고문
판소리의 자존심, 국창이라 불렸던 김소희 명창
88 서울올림픽의 폐막식을 기억하는 이들은 ‘떠나가는 배’의 소리를 맡았던 작고 단아한 만정 김소희 명창을 기억할 것이다. 판소리의 자존심, 국창이라 불렸던 김소희 명창이 타계하신지 올해로 30년.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가 가르친 안숙선, 신영희 명창 등 후학들의 소리 속에, 또 오래된 옛 자료들 속에서 그 분의 흔적을, 그 유려한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판소리 최고 명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만정 선생님의 ‘심청가’ 판본을 부르는 사람을 기실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보성소리 4대 천왕(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정권진)들의 영향으로 강산제 심청가가 거의 대세로 굳어져 가고 동초제, 박동실제 심청가 소리를 하시는 분들은 많이 계시지만, 김소희 명창의 전성기 시절이 담긴 만정제 심청가의 이 유려한 소리는 소리판에서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다.
최고 명창의 이 귀한 소리가 왜 사라져 버렸을까?
이 귀한 소리가 사라져 궁금해 자료들을 찾아 읽다가 최동현 선생의 ‘만정제 판소리의 전승 현황과 과제’ 논문 속 금쪽같이 귀한 명창 제자분들의 전승 스토리 인터뷰들을 쭉 읽으며 그 원인의 단초를 발견해 낸다. 전승이 활발히 될 무렵 김소희 명창의 만정제는 춘향가만 문화재로 지정되고 정권진, 성우향, 조상현 등의 보성소리 심청가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니 심청가는 자연스레 보성소리 쪽으로 기울어 부르는 창자들이 많아졌다. 반면 만정제 심청가는 그 많은 만정 선생의 제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아 불리지 않으니 전승이 잘 되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판소리 문화재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이유
만정 김소희 선생의 최고 전성기에 녹음이 된 저 기막힌 앨범의 심청가 소리들이 이젠 부르는 이가 하나 없이 그대로 묻혀 버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판소리 제는 당대의 대명창들이 개척해 나가 그 명창들의 호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만정제, 미산제 등) 제 하나에 소리 하나를 엮어 문화재로 보호하니 나머지 소리들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판소리 문화재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현행 문화재 제도는 특정 명창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해 권위를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승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유파나 지역적 변이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결과를 낳기 쉽다. 판소리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변주들과 다채로운 해석들을 제도적 잣대가 오히려 좁혀버리는 셈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세습적·폐쇄적 구조를 가져와 보유자의 제자나 특정 인맥에 기회가 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반인이나 신진 소리꾼은 제도권에 진입하기 어렵고 판소리의 문턱이 높아져 대중과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판소리는 여전히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로 남아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보존’ 위주의 행정 태도도 문제다. 판소리는 원래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끊임없이 변주된 예술이었다. 그러나 현 제도는 ‘원형 보존’에 매달리며 창작이나 융합 시도를 곁가지로 취급한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실험들과 신진 소리꾼들의 작업들이 이 제도 안에서 정당하게 평가받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여러 학자들은 특정 단체, 지역 사회 공동체 중심 전승 구조로 보존 주체를 확장시키거나 공개 교육 체제 등의 대안을 내놓으며, 이 단점들을 상쇄시키고자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다.

소리꾼으로 불리는 가인(歌人)들의 의무
200여 년 이상 수 많은 명창들의 새로운 더늠(판소리 명창이 독창적으로 소리와 사설 및 발림을 짜서 연행한 소리)들 속에서 연마되고 덧붙여지고 다듬어진 지금의 판소리들은 클래식 장르로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수련을 하던 시대의 창자들이 해석해 놓은 그 신기에 가까운 기술과 소리들이 늘어난 학업으로, 먹고 사는 문제 등으로 수련이 충분치 않은 시대의 창자들에 의해 제대로 연주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안타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소리와 새로운 창자들은 여전히 아직 가닿지 못한, 완성되지 못한 자신만의 더 아름다운 소리와 완벽한 소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소리꾼으로 불리는 가인(歌人)들의 의무이다.

만정 김소희 선생의 위대함은 그 학구열에 있었다. 무용, 정가, 서예, 가야금 산조 등 다방면의 예술 장르에 조예가 깊었고 50세가 넘어서까지 다양한 소리들을 찾아다니며 후배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렇게 배우고 단련한 40여 년의 학습을 통해 만정제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분파를 만들어 내셨다. 그러나 만정 선생의 타계 30년 만에 우리는 무관심 속에 귀한 소리를 하나 잃었다. 바로 눈앞에서 멸종된 마지막 동물을 생기 없는 박제로 보는 것처럼, 앨범 속의 소리가 더 유려하게 느껴질수록 더 깊이 애석한 마음, 소중한 것들은 소중하게 지켜가자고, 몇 줄 기록해 둔다.
글, 사진 임대균(시인, 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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