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연구자와 현대사 연구자가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고대사 연구자현대사 연구자가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여러분은 한국사의 어느 시대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시대에 대한 관심이 서로 다르면 전체 한국사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면, 한국의 전 역사를 바라볼 때 어느 시기에 주목할까요? 반대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현대사에 관심이 많다면 한국의 전 역사를 바라볼 때 어느 시기를 주목할까요?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오늘의 민주공화국 체제의 시작과 연원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1919년 3.1 혁명에 주목할 것입니다. 3.1 혁명의 영향으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되었으니까요.

 

3.1 혁명 이후 40여일 만에 ‘제국’이 아닌 ‘민국’이 건립될 수 있었던 여건은 이미 1917년 ‘대동단결선언’에서 보여주는 공화제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대동단결선언’에서는 1910년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황제권이 소멸된 것이고 민권이 새로 생긴 날이라고 본 것입니다. 현대사의 관점에서는 대동단결선언 ⤏ 3.1혁명 ⤏ 대한민국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강조할 겁니다. 그럼 현대사의 관점에서 대한제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제국’은 민주공화제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므로 역사적 평가가 좋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 ‘제국’이지 ‘제국’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고 무엇보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제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어떤 역사적 사건에 가장 충격을 받았을까요? 고대-중세-근대는 모두 왕조국가였습니다. 각각의 왕조국가는 독립국이었지만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중국적 세계질서 속의 독립이었습니다. 중국은 황제국이었고 한국은 중국과 대비될 때 제후국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황제국을 자처했지만 한시적이었습니다. 이때도 대외적으로 황제국을 선포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황제, 밖에서 왕인 내제외왕(內帝外王)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왕조국가는 적어도 고조선 멸망 이후 2천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2천년의 왕조국가를 끝내고 민주공화국을 건설한 건 우리 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 등장 이전에 2천 년 만에 새로 등장한 국가체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국’ 즉 대한제국의 등장입니다. 민주공화국의 입장에서는 대한제국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고대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대한제국의 등장은 우리 역사상 한 번도 시행해 보지 못한 ‘제국’의 표방이었습니다. 물론 대한제국의 탄생이 우리의 순수한 힘으로 이루진 것은 아닙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졌기 때문에 중국 황제국 – 조선 제후국이란 틀이 깨진 외부적 요인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속의 조선이란 범주를 벗어나 세계 제국과 나란히 대등한 제국을 얻게 된 것은 지금까지의 우리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뒤바뀐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사 연구자는 3.1혁명이 ‘민주공화제’의 기폭제였다고 하는데 대한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을 때 ‘대한’은 ‘대한제국’이었을까요? ‘대한민국’이었을까요?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33인을 포함한 지식인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일제의 식민지인 우리나라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독립의 의지를 천명할 필요는 있었겠지요. 만세를 불렀던 수많은 일반 사람들은 정말 독립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떼 지어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면 ‘정말 독립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그럼 그들이 생각한 ‘대한독립’은 대한제국의 독립이었을 겁니다. 만약 3.1혁명이 성공했더라면 당연히 민주공화제가 대한제국으로 부활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때의 대한제국은 황제국과 공화제가 결합된 입헌군주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3.1혁명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대한을 계승한 민주공화제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운 것입니다.

 

3.1혁명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3.1혁명이 뜻을 이뤘다면 대한제국의 입헌군주제로의 부활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이어진 것입니다. 곧 3.1혁명은 민주공화제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입헌군주제의 측면에서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의 등장은 민주공화제의 등장만큼 한국사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왕조[제후국]에서 민주공화제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한 것이 대한제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제국이 국가와 국가 간의 대등한 독립을 이뤄냈다면 그 독립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개개인의 자주적 독립의 외침이었던 3.1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자주적 외침은 민국공화제인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이어져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조경철 역사학자

《거꾸로 읽는 한국사》 저자,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사상사학회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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