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문화에서 해양문화로의 결정적인 전환을 이룬 두 해전, 레판토해전(1571)과 칼레해전(1588) 21세기 초인 지금 해양문화의 미국과 대륙문화의 중국은 서로 매우 치열한 패권 다툼을 하는 중입니다. 이 투쟁 이전에 대륙문화에서 해양문화로 그 패권이 이동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두 번의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레판토해전’과‘칼레해전’입니다. 첫째인 ‘레판토해전’은 1570년 7월 오스만 셀림 2세가 베네치아 속령인 키프로스 섬을 침공하자, 해양국가들로 구성된 신성동맹 함대와 대륙국가인 오스만 터키가 해상에서 벌인 전투입니다. 오스만이 참패한 결과, 해양세력은 오스만의 침략 위험으로부터 이탈리아 도시들을 보호할 수 있었고, 육상에 이어 해상에서의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려고 서진하는 대륙세력인 오스만 제국의 팽창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인 ‘칼레해전’은 스페인이 영국을 로마교 국가로 되돌리고, 스페인의 상선에 대한 노략질을 막기 위해 대규모 함대(아르마다)를 편성해 영국해협에서 벌인 전쟁입니다. 이 해전에서 패한 스페인은 점차 패권을 잃게 되었고, 반면에 승리한 영국은 새로운 해양강국으로 발전할 매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 두 해전을 자세히 비교
세계최초의 해양탐사선 챌린저호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해상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운명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바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 세계 해양 패권과 무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함께 기술력과 정보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해양 탐사를 최초로 시작한 나라가 영국입니다. 17세기 이후, 항해술의 발달로 바다에 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68년에는 톰슨과 런던대학 교수인 카펜터가 해저300m 보다 깊은 바다의 해양 생물채집과 해저 생태계 연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로 해양 생물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연구 성과의 기초위에 챌린저호의 탐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탐사로 해양학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해양탐사선이 HMS 챌린저호입니다. A. 해양 연구의 기초 1) 영국인 최초 프랜시스 드레이크경(Sir Francis Draco, 1540~1596)의 세계일주 해적, 군인, 탐험가로서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
남해안 문화·역사 기행 단상 ① 국립 부산 과학관 ② UN기념공원 ③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박물관 ④ 조선통신사역사관 ⑤ 국립해양박물관 ⑥ 자갈치시장 ⑦ 국제시장 ⑧ 차이나타운, 텍사스거리 ⑨ 을숙도 생태공원 5박 6일 남해안 여행! 저는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2009년 네팔에서 온 후, 2017년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지만 한국 역사는 잘 몰랐어요. 이번 여행에서 이순신 장군이 우리나라를 지켰던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역사와 관련된 영화를 봐도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역사박물관, 옛날에 전쟁 했던 장소를 직접 가서 보고, 제 옆에서 5박6일 동안 같이 간 사람들이 계속 설명을 해주어 남해군 이순신 순국공원 안에 있는 이순신 영상관에서 노량해전 영상을 보며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님들이 우리나라를 살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더 노력을 해서 더 강한 나라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좋았습니다. 군포시 금정동 김혜영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오잉? 뭔 이런 촌스럽고 이상한 공룡이름이 다 있나? 전남 보
‘낙태’와 ‘총기규제’에 대한 찬반논쟁의 장(場)에서 엿보이는 미국문화의 민낯과 동정적으로 그려보는 그 미래상 2022년 법적 투쟁의 장이 되어 버린 미국 현실을 동양의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까? 1973년 낙태허용판결(1973.1.22)이래 50여년 만인 올해 2022년에 뒤집은 미시시피주 낙태금지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합헌판결(2022.6.24),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문제인 총기규제법 승인(2022.6.25)으로, 현재 미국은 치열한 논쟁의 장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쟁점은 낙태의 경우, ‘생명권 보호가 먼저냐 개인의 자유권(신체의 자유, 자기 결정권 자유 등)이 먼저냐’이며, 총기규제의 경우 ‘자기방어권 보장의 자유를 제한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특별히 전자인 낙태금지법에 대한 합헌판결의 후폭풍은 얼마나 강력한 지 미국이 두 쪽이 날 지경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두 논쟁 자체보다, 이런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제이자 바탕인, 이번 논쟁에서 드러난 ‘미국 문화의 민낯’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한국동란 때에 3만 여명의 병사를 희생한 미국을 ‘동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려주어야 할 미래상’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환
[문화기행수필] ‘여수 밤바다 ’ 유감 이순신 놀이, 소녀상 놀이 올해 추석 여수 밤거리와 바다의 풍경에서 솟아오르는 환상적 보름달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며 우리를 애태우며 감질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밤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중국산 프로펠러 장난감은 두둥실 뜬 달이 있는 하늘과 우주를 향하고픈 마음을 상징이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감동의 대미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순신과 관계된 ‘이순신 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순신 동상’과 ‘승전한 대첩’ 이름들과 ‘거북선’, 그리고 둘째는 저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옆에 놓인 빈 의자에 같이 앉아보라고 초청하는 듯한 ‘소녀상’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놀랍게도 같은 대상인 왜군,왜놈,일본인이 우리를 끝장내려고 의도적으로 가한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동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선조는 400여 년 전의 ‘먼 과거’에는 방어에 성공했으나, 110~80여 년 전의 ‘가까운 과거’에서 실패했다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기는 합니다. 여수시가 의도적으로 이런, 연관되지만 상반되는 과거들을 배열해서 생각하게 만든 점은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점에서 아쉽고 안타까울 뿐 아니라, 좀 더
[세계속의 한국인] 나만의 대만 살이! (2) 직장생활에서 개인사업을 꿈꾸다 22년 전,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던 한국 회사에서 대만 신주(新竹)지사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타이완에서 시작하기 전에는 주로 배낭여행이 전부였답니다. 대만에서도 IT산업과 전자산업의 메카인 신주(新竹)는 대만의 경제 부흥의 1번지였지요. 타이완 모든 지역에 지진이 나더라도 신주(新竹)만큼은 나면 안 된다는 곳일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기술이 전부였거든요. 간혹 한 두 업체 정도 Made in Korea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찾아봐야 했어요. 왜냐면, 제가 거주한 신주(新竹)는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수원 또는 화성이었거든요. 생산지였지만 소비지가 아니였던 만큼, 타이페이(수도)로 나오지 않으면 거의 없었지요. “Who are you?”, “Which company?” 5년간의 대만지사 근무를 마치고, 한국 본사로 복귀하지 않고 운 좋게 TFT-LCD 회사의 대만지사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반도체 장비와 LCD 장비 회사에 7~8년간 근무를 하면서 서서히 개인사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요. 글로벌 전자산업의 중심 중 하나
우주시대에 꼭 필요한 세계(단일)정부하에서 낙태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그리고 우주로 평화롭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세계(단일)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정부 하에 공정하며 누구나 만족시킬 수 있는 치밀한 세계법, 우주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 이것을 연습할 수 있는, 비록 범위는 좁지만 좋은, 역사적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미국의 법입니다. 미국은 각각의 독립된 나라에 해당하는 50개 주정부(state)가 모여 하나의 연방정부(United States)를 이루며, 여기에 개별 주가 만들고 운영하는 주법과 함께 거시적 연방적 사안을 처리하는 연방법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위법인 주법과 상위법인 연방법의 관계를, 최근에 문제가 되는 낙태라는 사례를 통해 살펴보며, 앞으로 세계(단일)정부에서 필요한 개별국가법과 세계법, 우주법의 상관관계를 미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미국의 낙태법 올해 미 대륙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바로 ‘낙태’입니다. 먼저 미국에는 연방법이 주법에 우선한다는, 가장 근본이 되는 헌법 6조의‘연방법률 우위의 원칙’(Su
과거 우주선의 실패에서 배우고 만들어 갈 우주시대의 새로운 조직, 정치, 사회 체제 및 문화 부산 금련산청소년수련원 천체투영관에서 망원경으로 직접 찍은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독일과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유럽은 나라를 복구하는데 바빠 우주 개발에 나설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소련 역시 독일과의 전쟁으로 황폐화 되어, 미국과 경쟁 구도에 있었고, 당시 미국은 이미 공군력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가장 먼저 미국이 우주 시대를 열 것이란 예상을 산산조각 냈기 때문입니다. 이에 강한 위기를 느낀 미국은 1961년 5월 25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우리는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낸다.”는 선언으로 소련과의 우주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주로 나가는 것은 처음부터 순수 과학적 목적이 아니라 공산주의 소련과 민주자본주의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이념 체제 속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되었습니다. 우주 경쟁을 목적으로 세워진 NASA는(미항공우주국)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고, 케네디
우주시대 어떤 우주개발 정책을 수립해야 할까요? 각국 정부, 기업, 지구(단일)정부 수립 A. 잘못 끼워진 첫 단추 - 우주개발 제1단계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를 성공하면서, 서방세계 국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충격은 자유민주주의의 대적인 공산주의의 소련이 가진 과학기술이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는 열등감과 그 소련이 핵미사일을 쏘면 막을 수 없다는 핵전쟁의 공포였습니다. 이전까지 미국은 핵무기를 대형폭격기를 이용한 항공으로 폭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압도적 공군력을 가졌기 때문에 핵전력도 당연히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으나, 위성발사의 성공은 위성발사기술과 동일한 원리로 쏘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을 소련이 선점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미국은 1958년 7월 29일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를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소련과 우주개발 경쟁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1961년 4월 12일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 유인우주선인 토스토크 1호를
우주농업,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주농업이 왜 필요한가요? 영화 ‘마션’에서 식물학자인 주인공이 화성 탐사에서 홀로 남겨진 가운데 식량이 없어 우주선 안에서 감자를 심고 기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공상과학영화이지만, 머지않아 미래의 우리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우주에서 혹은 우주선 안에서 농작물 재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우주선에 가져가거나, 혹은 지구에서 식량을 운송하여 공급받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주농업이 중요한 이유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동물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소보다 훨씬 풍부한 거의 모든 영양소[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미네랄), 파이토케미컬(식물영양소)]를 식물인 농작물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식물이 광합성 과정을 통해 사람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는 제거해주는 대신 산소를 공급해주고, 밀폐된 우주선 속에서 단조롭고 외로운 우주생활 가운데 녹색식물을 기르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주농업은 자연 흉내내기 농작물을 재배하려면 햇빛, 온도, 공기, 물, 흙 등 여러가지 기후조건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우주에는 지구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