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찬란한 순간들 (모네, 르느와르, 반 고흐 그리고 세잔느) 여행지에서 미술관은 베이스캠프다. 비바람을 피하고 혹서, 혹한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길을 잃었더라도 미술관만 있으면 그곳이 곧 목적지로 변한다.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되어 미술관 곳곳을 탐험할 수 있다. 볼로뉴 숲의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이 그랬고, 네덜란드 풍차마을의 잔스 뮤지엄이 그랬다. 좋은 그림 하나만 있으면 지루할 새가 없다. 논리가 필요 없이 오감으로 그림에 빠지는 일이 그림을 보는 기쁨이다. 노원아트센터에서 인상파 화가의 특별 전시가 있단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찾았다. 뜻밖에 현수막이 보인다. 전쟁을 일삼는 이스라엘과 협업하는 전시에 대한 반대 현수막이었다. 알고 보니 이번 전시는 이스라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이 우리나라로 나들이를 온 탓에 걸린 플레카드였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음을 새삼 느끼면서 그림을 찬찬히 보았다. 증기선, 공장 굴뚝, 증기 기관차가 이번에는 또렷이 보였다. 세느강에서 짐을 나르는 인부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나무다리를 걷고 그 뒤에는 굳건하게 증기를 내뿜는 공장이 보였다. 근대를 알리는 모습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가지가
호랑가시나무 (Ilex cornuta) 추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냉기가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면 온몸이 떨립니다. 혹여나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 옷깃을 여밉니다. 산과 들의 식물들은 모두 겨울잠에 들어간 것 같지만 남부지방에는 늘 푸른 나무가 추운 겨울인데도 반짝이는 잎을 뽐내고 있습니다. 겨울을 즐기는 푸른 나무는 ‘호랑가시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따스한 봄날 자잘한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고, 추운 겨울에는 구슬처럼 생긴 붉은 열매로 눈길을 잡는 품종입니다. 호랑가시나무를 모르는 분들도 마음을 가다듬고 이 나무를 바라보면 어딘가 낯이 익는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릴 때 식물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잎을 그렸는데 그것이 이 호랑가시나무 잎이었고 거기에 더하여 붉은 열매까지 그렸으니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호랑가시나무를 이용해 둥근모양을 만들어 문에 걸어 두는 장식품으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문이나 벽을 호랑가시나무로 장식을 하고 연말과 연시를 즐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호랑가시나무는 동양에서 액운을 막는 나무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새해에는 액운은 막히고 좋
12월의 아로마테라피 동방박사가 선택한 향, 미르(Myrrh)와 유향(Frankincense) 12월은 한 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달입니다. 동시에 크리스마스를 품은 시간이죠. 이 계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겹쳐집니다. 별을 따라 이동한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바친 세 가지 선물, 황금·유향·미르. 그중에서도 향을 지닌 두 선물, 유향과 미르는 단순한 향료가 아니라 생명과 치유, 신성과 인간을 잇는 상징이었습니다. 왜 동방박사는 유향과 미르를 선택했을까 동방박사들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천문학자이자 약초학자,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선물을 고를 때 기준은 분명했을 것입니다. 유향(Frankincense)은 신에게 바치는 향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히브리 전통에서 유향은 신전의 공기를 정화하고 인간의 기도를 하늘로 올리는 매개체였던 것이죠. 또 유향은 신성을 의미했습니다. 미르(Myrrh)는 탄생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약이었죠. 산모의 회복, 상처 치유, 방부와 진통에 사용되었고, 훗날 장례 의식에도 쓰였습니다. 미르는 인간의 몸을 의미했고 오늘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미이라’라고 부른 것도
또 다른 12월 3일, 동덕회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새로 기억하는 날이 생겼습니다.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죠. 비상계엄은 위헌으로 판명되어 대통령은 파면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재판은 1년이 지난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2월 3일은 역사의 비극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이지만 국민의 힘으로 막아냈기 때문에 국민주권 승리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다룰 이야기는 250년 전 영조 때인 1775년 12월 3일(음력)의 일입니다. 영조는 세손인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홍인한 등이 이를 저지하려 했습니다. 세손의 입장에서는 대리청정이 문제가 아니라 장차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서명선이 나서서 홍인한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세손은 대리청정 이후 왕위에 올랐고 이후 ‘동덕회’란 모임을 만들어 이날을 잊지 않고 기념했습니다. 동덕회 회원들은 노론, 소론 등으로 특별히 당색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현재 용산의 리움미술관에는 동덕회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인 김종수에게 보낸 정조가 짓고 쓴 어제시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경에게 일찍이 이 자리서 취하길 윤허했는
남도 소리의 전설, 강송대 명창 지난 11월 13일 강송대 명창의 국악 입문 80년 인생을 기념하는 ‘강송대의 진도 풍류’ 공연이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1941년 심청가의 ‘추월만정’ 소리를 잘했다고 알려진 이화중선 명창의 수제자인 진도 이근녀 여사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소리를 해 온 세월이 어느새 80여 년이 된 것이다. 역사상 한 명창의 80주년의 소리 인생을 기념하는 공연은 처음이기에 가서 이를 꼭 기록해 둬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고 진도까지 차를 몰았다. 5세, 국악에 입문 강송대 명창은 전라남도 무형유산 남도잡가 보유자로 5세에 국악에 입문하여 목포에서 활동하던 오촌 고모인 강숙자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춘향가’ 등을 배웠다. 녹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어렵게 가르쳐 놓은 것을 잊지 말라고 매를 맞아가며 호되게 소리를 배웠던 시절로 명창은 당시를 회상했다. 타고난 목으로 당대 최고 여류 명창이었던 이화중선의 제자였지만 집안의 만류로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어머니 이근녀 여사의 바램에 따라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을 드러낸 강명창은 타고난 스타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광주, 여수, 목포, 군산 등 남도 지역의 큰
애기낙엽버섯 (Marasmius siccus) 아침저녁은 제법 시원한 느낌이 들고는 있지만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이즈음이면 부지런한 분들이 숲속을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그분들이 산으로 향하는 것은 맛있는 먹거리인 버섯을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먹을 수 있고 구분이 가능한 버섯이라고는 송이버섯뿐이지만, 사실 송이버섯을 산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그분들과 함께 산속을 헤매지는 않지만 산속을 찾아 거닐다 보면 다양한 버섯들이 얼굴을 내미는 시기이기는 합니다. 덩치가 큰 버섯들도 눈에 들어오지만 도통 이름도 알 수 없고 버섯을 만지는 것도 겁이 납니다. 이맘때면 뉴스에 독버섯을 먹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니 만지는 것까지도 겁을 먹게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허리를 숙이고 숲속 나무 밑을 살피다 보면 예쁜 모습으로 자라는 작은 버섯들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 작은 버섯 중에서 애기낙엽버섯은 귀엽고 예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눈 맞춤하기 좋은 버섯입니다. 낙엽 사이에서 갓을 올리고 무리 지어 피어난 모습은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개구쟁이 스머프의 마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몸을 낮추고 바라보면 숲속 나무
‘이민 300만 시대’ 상호 통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할 때 한국 사회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 신화에 갇혀 있을 수 없는 ‘이민 300만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혼이민자 중심의 ‘다문화가족’ 정책을 넘어, 이제는 ‘국가 성장 전략으로서의 이민 정책과 전면적인 사회통합 패러다임’을 논해야 할 때이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산재해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현재의 이슈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본다. 1. 시급한 현안: '단기 체류자'를 위한 사회통합 정책의 부재 현재 한국의 다문화 및 사회통합 정책은 주로 결혼이민자와 국적 취득 희망자 등 ‘정주형 이주민’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실제 국내 체류 외국인의 대다수는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 체류 기한이 정해져 있는 ‘단기 체류자’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며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교육을 포함한 사회통합 프로그램(KIIP) 접근성이 제한적이거나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의 경우 아예 배제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단기적인 인력 수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
우산 속 한가위 몽키호테 홀연히 세찬 빗줄기 아침 내내 어둡게 돌아온 빠알간 추석 쳐진 마음 부풀게 보름달 보이지 않아 가슴 가득 아쉽게 그 너머 별빛 하나가 소망되어 힘차게
고대사 연구자와 현대사 연구자가 한국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여러분은 한국사의 어느 시대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시대에 대한 관심이 서로 다르면 전체 한국사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에 관심이 많다면, 한국의 전 역사를 바라볼 때 어느 시기에 주목할까요? 반대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현대사에 관심이 많다면 한국의 전 역사를 바라볼 때 어느 시기를 주목할까요?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오늘의 민주공화국 체제의 시작과 연원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1919년 3.1 혁명에 주목할 것입니다. 3.1 혁명의 영향으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되었으니까요. 3.1 혁명 이후 40여일 만에 ‘제국’이 아닌 ‘민국’이 건립될 수 있었던 여건은 이미 1917년 ‘대동단결선언’에서 보여주는 공화제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대동단결선언’에서는 1910년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황제권이 소멸된 것이고 민권이 새로 생긴 날이라고 본 것입니다. 현대사의 관점에서는 대동단결선언 ⤏ 3.1혁명 ⤏ 대한민국임시정부 ⤏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