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같은 고추(농사) 9월의 따가운 햇살에 붉은 고추를 말립니다. 한번 건조기에 들어갔다 나온 홍고추를 방수포 덮개인 가빠에 쭉 널어 놓습니다. 매콤한 냄새와 달콤한 냄새가 코끝에 와 닿습니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따가운 햇빛, 맑은 공기, 풀밭에 널려진 홍고추는 나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손으로 휘저어 줍니다. 마른 것은 골라내고 아직 두툼한 것은 더 뒤적여 줍니다. 옛적 고추를 말리던 농가 어르신들의 풍경이 내 머리에 스치며 내가 그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좋습니다. 절로 미소가 납니다. 풍성해진 것 같습니다. 마음이~ 하우스 옆 노지 100평에 고추는 5월 중순이 되어서야 평창 하우스에 본격적으로 심게 되었습니다. 아들 녀석이 병원에 한 달 반가량 입원하느라 돌봐주다 보니 어쩌다 뒤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고추 모종을 사고 로타리를 치고 비닐을 깔고 한 주 한 주를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심는 것이 맞나 물어보며 고추농사에 처음 도전해 보았습니다. 고추농사는 손이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떡잎도 떼어주고, 얼마만큼 자라면 줄도 매어 줍니다. 1차 2차 3차 … 비바람이 칠 때면 쓰러질까 조바심으로 줄 한 번 더 매어 줍니다. 올해
[나선명의 만평팜 스토리 1] 평창에서 다시 시작된 귀농일기 9년 전, 전남 무안에서 양파농사를 야심차게 지어 본 것이 엊그제처럼 기억납니다. 좌충우돌하며 농사초보가 시작했다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 3~4년간 손을 놓고 있었죠. 다른 일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농사에 대한 미련,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지 충주와 서산 등 농장에서 일을 하며 농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차에 일손을 돕기 위해 평창을 방문하게 되었고 작년 지인을 통해 평창에서 제2의 귀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고랭지 부추 재배 작목반이 막 형성되고 있었기에 마을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 함께 배워가며, 공판장에 납품 하면 유통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 부추재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종을 공동으로 키워 옮겨 심을 때도 함께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자라는 부추를 볼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조리며 자세히 보고, 오래보려고 노력하니 예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부추 모종을 막 심어 놓자 갑작스런 꽃샘추위가 와서 어린 모종에 살얼음이 오면 어찌해야하나 발을 동동거리며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죠. 다행히 부추는
[상상농부 이야기 14] 잠잠한 호수 같은 시골 공간과 시간 속에 돌 던지기 2023년 4월. 버섯 농부 5년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40대 중반까지의 이전 삶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농업 영역에 뛰어든 시간들이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지요. ‘송화고’ 버섯이라는 작물만큼은 가장 잘 키울 줄 아는 농부가, 단순히 농사만 잘 짓는 것이 아닌 최고의 품질과 영양가 풍성한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 잘 전달해 주는 농부사장이 되기 위해, 그리고 땅만 바라보는 것에 익숙한 농부들의 시각을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지역 농부들 모임을 위해, 시골의 어린 촌놈들과 함께 공부하고, 운동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뛰어 오다보니 시간이 살처럼 지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들을 위해 농부로서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싶어 글을 써 보았습니다. 최고 농산물은 책임이 어우러진 합작품 한 작물에 있어서 최고의 농부가 되는 것은 농부 혼자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송화고 버섯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요. 배지가 입상이 된 후에 온도, 습도, 환기, 때에 맞는 솎는 작
[상상농부 이야기 12] 음식의 감초는 ‘양송이버섯’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먹어본 버섯을 꼽아 본다면 아마도 양송이버섯을 들 수 있습니다. 고기와 곁들여 먹는 녀석으로 선택하거나, 스프를 좋아하는 분들은 고명으로 넣을 버섯으로 아주 다양한 곳에서 양송이버섯은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사실 이 양송이버섯은 다른 버섯들과 달리 외모가 너무 귀엽고 예뻐서 일단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에 몇 발자국 앞서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양송이버섯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손길을 기다리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 상상농부 이야기에서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양송이버섯’이 어떻게 재배되는지, 어떤 양송이버섯이 싱싱한지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나무가 아닌 퇴비 출신이에요 대부분의 버섯은 원목 나무나 톱밥을 재료로 만든 배지를 통해 재배합니다. 하지만 양송이는 독특하게도 푹푹 썩히고 썩혀서 만든 ‘퇴비’ 배지 출신이랍니다. ‘퇴비’라는 말 속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철저한 살균과정이 없다면 건강한 버섯을 재배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기에 나무를 이용한 버섯 배지와 달리 다소 복잡하고 더 정교한 과정 등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양송이 배지는
사람이 되어 ‘미니밤호박’과 함께 떠난 2023년 첫 봄, 여름 여행 미국 뉴욕에서 7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친환경농사 경력이 20년 넘은 지인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정말 농사를 지을 겁니까?”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사람이 되야만 합니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농사에 대한 고상한 철학이나 가치, 꿈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사람이 되세요.” 1년이 넘게 지난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몸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지인의 15만평 농장에서 땀 흘렸던 시간은 말 그대로 사람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농사 지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사람, 농업경영을 할 수 있는 사람, 외국인 인부들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 작물들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해뜨기 전에 밭둑에 서 있고, 다음 날 다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 미생물, 벌레, 토양, 물, 햇빛, 바람, 대자연의 섭리 속에 한 점 같은 존재임을 아는 사람. 그렇게 땅을 이해하고 하늘에 기대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들을 지나 2023년 봄에는 드디어 홀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염려와 걱정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