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역사 이야기] 스승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능가할 것인가? 전 세계가 서양식문명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양식 대학이 설립되고, 서양식 주택이나 투표와 같은 일상적,사회적 삶의 방식을 그대로 수입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서양을 단지 겉으로만 받아들이다가 2차대전에서 된통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있습니다. 또 현재의 중공은 거기에 더해 아예 서양쓰레기인 공산주의(혹은 개인의 책임이 증발된 사회주의)라는 정치체제까지 받아들여서, 중국의 오래된 전제주의적 전통을 병합시켜, 괴물 같은 정치체제를 만들어 14억의 인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정신 나간 짓을 전 세계에 벌일 것이며, 바로 옆에 사는 우리는 어떤 피해를 볼까요? 또 우리 북쪽에는 거의 천년동안 정치적 전통이라고는 폭력적 전제군주제에다 공산주의까지 경험하고도, 스스로는 늘 서양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정체성 자체가 혼란스러운 러시아가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뿌띤 같은 자가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지만, 70% 이상의 국민 지지를 얻는다고 하니, 이 나라의 장래가 심히 염려됩니다. 그러면 이 세 무시무시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양과
피아노협주곡(Op.7)을 통해 클라라 슈만, 새롭게 이해하기 지난 9월 27일 저녁, 광장 한 편을 빨간 홍시로 불 밝힌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라는 주제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 음악가 각각이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을 모아놓았다는 것이었어요. 세 명 모두 당대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었던 만큼, 각각의 음악적 특징을 비교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주가 작곡된 연도순을 따라 클라라(1834), 슈만(1841), 브람스(1858)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제목은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순서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클라라가 슈만의 아내였기 때문에 슈만 뒤에 둔 것일 수도 있지만, 슈만과 브람스라는 음악계의 두 큰 거장 사이에서 클라라는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클라라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클라라와 두 음악가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Op. 7)의 특징 악장의 구분없이 이어지는 피아노 협주곡: 클라라가 단순한 피아노곡이 아닌 오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