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사랑을 꽃피웠습니다! 첫 만남의 그날 따스했던 가을 햇살과 향긋했던 바람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첫 순간을 추억할 때마다 영화 속 한 장면같이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개구진 미소와 조잘거림이 떠오르며 아릿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1999년 추석을 얼마 앞둔 가을이었습니다. 그 날 그 장면에 등장하는 서너 살 무렵의 꼬맹이들은 이제 서른을 앞두고 있고, 그곳에서 지낼 마지막 겨울을 앞두고 있던 큰 형과 누나들은 어느 덧 마흔을 훌쩍 넘겨 장년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하며 같이 늙어가고 있는 2023년 1월이 되었습니다. 그 날 짧은 첫 만남 이후, 저는 그냥 아무런 맥락도 의심도 없이 한 순간 인생 최대의 결정을 내려버린 채 신원리 산53번지 이 곳에서 알록달록한 사연과 아픔을 지닌 아이들을 품고 있습니다. 바로 그날 만났던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하겠다 싶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아버님의 친구였던 신망원을 운영하는 분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어 지금까지 엄마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밝았지만 해결되지 못한 여러 난제들을 품고 넘어온 탓에 그 어느 해보다 막막하고 의기소침한 ‘나’를 극복하기 위해 두 돌을 앞둔
"휴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여름날 엄마에게 여름휴가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휴가라는 단어가 애초에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괜히 물어보았다. 휴가 같은 소리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같은 반 친구 주연이가 강릉으로 여름휴가를 간다면서 나에게 “경혜, 너는 어디 가?” 라고 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글쎄…” 라며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과연 우리가 여름휴가라는 걸 간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나이로 약간의 눈치는 있었던지라 천진난만하게 계속 묻지는 못했다. 그래서 차근차근 말했던 건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나니 약간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더 조르지는 못했다. 놀러 갈 형편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때 아빠는 농부이면서 목수였다. 농부가 쉴 때는 목수로 일했고, 목수 일이 없을 때는 농사를 지었다. 시간의 빈틈없이 사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농부의 아내이자 목수의 아내였으니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애들 데리고 놀러 갈 틈이 있을 리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