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선택!틈새 쪼개 70개국 여행한, 정금선 여행가 ‘내 딸이 선생님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몸이 너무 약해 야단 한 번 들어본 적 없이 성장한 어린 시절. 부모님은 공부보다는 건강하게만 자라 줄 것을 바라셨죠. 뭐가 되겠다는 특별한 꿈은 없었으나 아픈 사람을 보면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장애인을 보면 그 장애인의 손, 발, 눈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용 발표회에 가면 무용가,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를 보면 연주가, 미술 전람회를 가면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고 그나마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것 중 하나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있는 듯 없는 듯 혼자 앉아 끝까지 해낸다는 것이었죠. 서울로 올라와 대학 생활을 하면서 꿈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건강의 문제로 4학년 때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부모님 곁에서 교생실습을 하며 ‘선생님이 되자’고 저의 꿈을 굳혔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제가 선생님이 된다면 섬지방까지 따라오셔서 밥도 해주고 옷도 다려주신다 하셨죠. ‘내 딸이 선생님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최고의 믿
“ 당신, 전공이 무엇이오? ” 가끔 40년 교직 후 정년퇴직했다고 말하면 무슨 과목 선생이냐 묻는다. “당신 전공이 무엇이오?” 하고 묻거나 “무슨 과목 가르쳤나요?” 라고 물으면 즉답하기가 망설여진다. 국어, 영어, 수학도 아닌 그렇다고 음악, 미술도 아닌 터라 말하기가 무척 애매하다. “무슨 과목 선생처럼 보이냐?”고 되물으면 그 답 또한 다양하다. 세 과목을 가르쳤으니… 학생들에게 가정과목과 컴퓨터수업을 15년씩 30년을 하던 중 내 의지와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2008년부터 퇴직 전까지 나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직업과 진로’라는 과목을 10년 가르쳤으니 즉답하기 어려울 수밖에. 내가 직업과 진로라는 과목을 가르치게 된 사연의 시작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이건 내 의지와 달리 위에서 하라고 하니 평교사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직업과 진로수업을 시작했다. 당시 교내에는 진로 상담교사(부장급)를 하겠다고 진로 연수를 받은 교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더러 진로 수업을 하라니 당황할 수밖에… 진로라는 과목은 출제나 시험이 없이 ‘수우미양가’의 평가가 아닌 ‘이수 & 미이수’의 선택만 있는 과목이다. 관리자의 최후통첩은 30년 경력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