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조선 여자 도공 백파선(百婆仙)을 이어 21세기 현대판 백파선을 꿈꾸는 ‘이혜경’ 대표를 만나다 여군 장교의 꿈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저는 고2 때까지 여군 장교가 되는 꿈을 가졌어요. 국군의 날 행사 때 군인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육군사관학교의 문은 84학번이자 여자인 제게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죠. 제가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이 길로 가면 당시만 해도 어려웠던 해외로 나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죠. 주위에서는 여자가 무슨 정치외교냐, 게다가 서울까지 보내 공부를 시키느냐는 등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요즘 세상에 남자,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냐며 본인이 하면 된다고 저를 기꺼이 서울로 유학 보내셨죠.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세 딸의 열심당 젊은 엄마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 들어가 1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논문 학기에 외교안보연구원, 지금의 국립외교원 계약직 연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일본어 공부도 하고 국제교류재단을 통해 일본에 방문
봉고차 타고 ‘찾아가는 옷 수선’하는 그 날까지, 술람미 홈패션 고고씽! 한복 기술자로의 입문 저는 충남 홍성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결혼하고 평범한 주부로 지내는 어느 날, 큰 언니가 한복 기술을 배워 보라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큰언니와 오빠가 광장시장에서 한복 기술자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광장시장은 한복거리로 호황이었어요. 골목골목 작은 판자촌으로 이루어져 2층엔 포목점들이 즐비했고, 3, 4층에는 한복 만드는 기술자들이 성냥갑처럼 작은 공간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저는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에 안산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하며 한복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3개월을 배우고 한복 일감을 받아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일이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광장시장에 한복 가게를 임대해 11여 년 정도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전문으로 일을 했습니다. 한참 결혼 성수기 때면 잠을 못 자고 의자에 앉아 졸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니까요.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번개같이 지나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한복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옷 수선 전문가로 다시 시작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한복 시장은 하락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