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세모’팀 어리버리 줌마들의 좌충우돌 ‘라이딩’ 6월부터 아줌마 4명이 뭉쳤습니다. 60대 중반으로 꾸준한 훈련에 이젠 깔딱 고개도 거침없이 오르는 ‘현선효즙’ 대표 왕 언니, 타고난 운동신경에 평창에서 부추 농사를 짓고 있는 50대 후반 ‘만평 팜’ 언니, 만평 팜 언니와 동갑으로 초보 라이더임에도 악바리 체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혜화동 한옥게스트의 주인장 ‘혜화동 마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3년 전, 동해안 300km 라이딩을 하루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조심스레 재활은 하고 있었으나, 라이딩은 10에 1도 생각하지 않았던 50대 중반의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장인 저! 입니다. 라이딩 사전 훈련 6월초부터 본격적인 라이딩 훈련에 들어가 1주일에 2번 정도는 다 같이 자전거를 탔습니다. 목표는 7월 9~10일, 1박2일로 대성리에서 춘천까지의 라이딩 완주! 하지만 제일 싱싱해야 할 막내인 제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언덕도 겨우 넘고, 항상 뒤에 쳐질 뿐 아니라, 속도도 10km 언저리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더구나 기어조절과 자전거에서 타고 내리는 것도 능숙하지 못하니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같이하는 라이딩에 혼자만 주저앉아 있을 수
엄마, 병아리를 키우면 안 될까요? 유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손에 노랑 병아리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우리도 어릴 적에 학교 앞에서 노랑 병아리를 보곤 했는데, 아직도 그런 일이 있나 싶어 의아해 하면서 “병아리는 왜 데리고 왔어?”라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앞에서 샀던 병아리를 키워 닭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작은 두 손으로 병아리를 조심스레 싸안고 온 유진이를 보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아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느껴지는 무심한 말투와 목소리 톤이 좀 높아진 소리에 유진이가 더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은 작은 병아리라고 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생명이라고 여겨져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레 병아리를 살피면서 생사부터 확인을 해야 했다. “병아리가 살아 있기는 살아 있어?” “네, 살아 있어요. 삐약 삐약 소리를 내기도 해요.”라면서 병아리를 데리고 온 사연을 들려주었다. 친구인 지수가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샀다고 했다. 한 마리만 사려고 했는데, 한 마리 값으로 두 마리를 주었다고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 30여 년 전에 일본 동경에서 1년 반을 지낸 적이 있다. 그때도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내 외모가 일본 본토 사람처럼 보였던 것인지 의심하지 않고 묻길래 당황을 했다. “저는 일본 사람이 아니어서 길을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며 뒤로 물러서곤 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일본 사람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일본 사람인데 한국말을 잘해요?”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의 한국말 발음이 서툰 것인지? 진짜로 외모가 일본 사람처럼 생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런저런 연유로 일본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하는 이유가 많았다. 일본에서 잠시 살았던 인연으로 일본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가워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더 친절을 베풀고 싶어지기도 한다. 작년 외교부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2022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 공모전에 응모를 했는데 상을 받게 되었다. 공모전 소식을 듣고, 떠오르는 일본 친구들이 많았다. 서울 종로에서 10여 년간 한옥게스트하우스인 유진하우스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해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일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