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그 해전에서 그 전술과 그 진법을 다양하게 사용했나? 이순신 장군은 3대 해전(한산도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에서 각기 다른, 그 상황에 딱 맞는 전술과 진법으로 백전백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순신은 해전의 전술과 진법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심각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해전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을 이길 수 있도록 최선으로 배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전에서도 마찬가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육전의 경우 진법이 안 통할 때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면 됩니다. 이에 반해 해전은 도망칠 수가 없고 그 자리에서 너희 죽고 우리 살든, 우리 죽고 너희 살든 어느 한 쪽은 다 죽어야 합니다. 이순신은 수많은 고뇌 속에서 철저히 준비하였습니다. 땅의 지형 뿐 아니라 바다의 지형, 바람, 조류, 그리고 바람과 조류의 세기 및 시간, 병기의 차이를 비롯하여 먼 바다와 섬과의 거리, 적과의 거리, 화포의 거리를 계산하는 산학, 그리고 적과 나의 심리를 알고 각기 다른 해전의 상황에 딱 맞게 그것들을 통제하고 이용하였습니다. 첫째, 각 해전에서 공간을 최적으로 이용한 전법, 시간을 최선으로 이용한 전술을 썼습니다. 한
탁월한 리더십의 이순신이 당대 동아시아 질서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 보다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명량>의 뒤를 이어, <한산>의 인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힘든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관객 인원이 8월 말 700만을 넘었다고 하니, 두 작품의 주인공인‘이순신’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선망하고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를 이용해 방문한 남해안 일대는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이순신 장군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곳곳마다 경쟁적으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와 컨텐츠, 문화 상품을 만들어 놓았기에 이순신 공화국처럼 여겨졌습니다. 이렇게 인기 있는 이순신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 물어봐도 존경하는 인물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냄비근성과 자기만족만을 자극하는 단순한 ‘국뽕’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내부가 아닌, 임진왜란과 관련된 두 국가 일본, 중국의 평가와 세계 속 대표적인 두 해양국가의 눈에 비친 이순신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난 뒤 우리 자신의 평가가 정당했는지를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질서라는 좀 더 큰 차원에서 이
세계최초의 해양탐사선 챌린저호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해상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바다를 운명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바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 세계 해양 패권과 무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힘과 함께 기술력과 정보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해양 탐사를 최초로 시작한 나라가 영국입니다. 17세기 이후, 항해술의 발달로 바다에 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68년에는 톰슨과 런던대학 교수인 카펜터가 해저300m 보다 깊은 바다의 해양 생물채집과 해저 생태계 연구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후로 해양 생물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러한 연구 성과의 기초위에 챌린저호의 탐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 탐사로 해양학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해양탐사선이 HMS 챌린저호입니다. A. 해양 연구의 기초 1) 영국인 최초 프랜시스 드레이크경(Sir Francis Draco, 1540~1596)의 세계일주 해적, 군인, 탐험가로서 영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일주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포르투갈 출신의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