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어릴 때는 유달리 잔병치례가 많던 나 때문에 어머니는 꽤나 애간장을 태우셨다. 천방지축 버릇없는 나를 보다 못한 오빠들이 계집애가 이렇게 버릇이 없어서 어떻게 할 거냐고 꾸짖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그냥 놔둬라, 소가 되던 말이 되던 열 살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기만 해도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주문을 외우셨는데 이렇게 여든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에게는 기쁨을 드린 셈이다. 세 오빠에 이어 막내로 태어난 나를 고명딸이라고 남들은 다 부러워했지만 다 빚 좋은 개살구였다. 오빠들의 서슬에 눌려 기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잔뜩 움츠리고 살았다. 아버지는 여자가 똑똑하면 오히려 시집살이가 어려울 것이니 바느질하고 살림하는 거나 배우라고 하시면서 더 이상 상급학교 진학하는 것을 막으셨다. 불타는 향학열은 고스란히 접어야 했다. 내 여섯 살 때부터 줄줄이 맞이한 올케들은 가족이면서 때로는 남보다 더 서먹서먹할 때가 많았다. 은근하게 흘리는 눈총이 억울하고 서러워 울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몸이 편치 않으신 어머니가 혹시 마음이라도 다치실까봐 내색도 못 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눈치만 키웠다. 이왕이면 맏이로 낳을 것이지 부모님은 나를 왜 막내로 낳으셨을까 부질
[스마트팜 그린몬스터즈 스토리] 네 명의 괴물 청년이 뭉쳤다. ‘그린몬스터즈’ 기계·전자분야의 LG연구원 출신 서원상 대표, KOPIA 해외 농업연구원 출신 전요한 공동대표, 토목 건축분야의 양요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품 디자이너인 윤소현. 이렇게 농업 배경이 전혀 없는 20~30대 청년 네 명이 뭉쳤습니다. 노지에 농사를 짓는 일반 농업이라면 기존 농업인이나 영농후계자들과 비교했을 때에 특별히 뛰어나기 힘들겠지만 대신 신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마트팜은 공학적인 것들이 밀집되어 있는 시설이니 공학 분야 연구원 출신인 우리들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업은 일한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지요. 우리 네 명 중 디자이너인 윤소현님을 제외한 세 명은 모두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센터 교육생 1기를 수료한 동기들입니다. 그 중 서원상 대표와 전요한 대표는 1년 반 정도 정기교육과정에서 함께 현장과 경영실습을 했을 뿐 아니라, 교육이 끝난 후 다른 스마트팜 농가에서 같이 일을 하며 호흡을 맞췄지요. 나만의 스마트팜을 짓겠다는 꿈이 있었던 서원상 대표는 스마트팜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2021년 4명의 창업멤
[표현훈련을 다녀와서] ‘표현훈련’ 생소하시죠? 요즘 ‘해방’,‘자유’라는 말이 유독 많이 들려옵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내용은 어떠하든지 두고라도 저에게는 ‘해방’이라는 단어부터 눈길을 끕니다. 이번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자유라는 단어가 핵심 키워드로 사용되었다고 하죠. 얼마나 자유에 대해 갈증이 심했는지 35번이나 자유가 언급되었다고 세어 보고 알려준 사람이 있었네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해방’과 ‘자유’에 대해 더 목마름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비단 코로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무엇인가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듯한 답답함에 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인생을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냥 사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5월,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고 누리는 과정 하나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맛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가족이 떠나는 ‘2022년 봄 표현훈련’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중국에서 온 생기발랄한 30대 처자 이향균,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뭐든지 적극적인
메타버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I) <매트릭스> <아바타> <레디플레이어원>이란 영화가 나올 때만해도 “가상세계를 스토리 있게 잘 만들었네”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펜데믹 시기를 겪으면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바꾼 기술혁명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상은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대면은 삶의 기본 서비스가 되었고,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는 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지요. 요즘 이런 디지털 세상을 대표하는 말이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로블록스, 제페토, 이프랜드. 한번쯤은 그게 뭐길래 싶어, 아바타도 만들어보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상공간 속에서 시골촌놈처럼 두리번거리며 배회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아직 경험이 없으시다고요? 이 글을 마저 읽고 꼭 방문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SNS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회사가 바로 페이스북이지요. 작년에 사명을 ‘메타’로 바꾸면서 미래의 우리는 인터넷처럼 메타버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야심찬 전략을 발표했었습니다. 이런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이 경쟁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3차원 가상공간에서 수천만
[친환경 목장 농도팜 스토리]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목장으로 선정된 친환경 목장 ‘농 도 원’ ‘농 도 원’의 역사 농 도 원은 원래 ‘복음농도원’이라는 이름으로 1952년 6.25 전쟁 중에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농장 중 하나입니다. 한때 농장내의 ‘복음농도원’이라는 농업학교를 통해 수많은 농촌지도자와 ‘가나안농군학교’를 탄생시킨 한국 농촌운동의 산실이기도 하죠. 농도원 출신인 ‘유태영’ 박사는 1960년대 새마을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세우고, 그 당시 우리나라가 너무 헐벗고 가난했기에 식량의 자주권을 우리 스스로 가져야겠다는 뜻을 정하고, 시골의 젊은 영농후계자를 육성하려 하셨죠. 한편 저희 아버님은 농장이 경제성장력 있는 산업화된 시설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농도원은 1973년부터 홀스타인 젖소를 기르고 우유를 생산하는 정통 낙농목장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가 1990년 물려받아 ‘농도원’으로 이어가고 있지요. 화이트 칼라에서 목장 주인으로 처음 아버님께서 “이 일을 해봐라” 했을 때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서울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회사에 다니며 삽질 한 번 떠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버님은 동물과 자연을
[다문화, 너와 나의 이웃이야기 2] 다문화사회전문가가 되려면 다년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지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인구유출과 인구절벽의 현안에 고민하는 지자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앞당겨진 다문화사회와 노인사회에 대한 국가적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이제는 개인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가 되었죠. 이에 대한 대안은 몇 개나 될까요? ‘외국인정책은 인구정책이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출산율의 증가입니다. 산아제한정책에 익숙했던 우리는 곧장 출산장려정책으로 돌아섰고, 지금도 10년 간 150조 원을 쏟아 붓지만 결과는 더한 감소세이죠. 이에 이민자를 받아들여 생산인구를 늘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외국인정책은 인구정책이다’입이다. 이렇게 도입하기 시작한 국내 체류 외국인 비율은 2016년 전체 인구 대비 3.96%에서 2019년 4.87%(252만 명)로 매년 증가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국경이 봉쇄되어 2년간 입출국이 제한되다 보니 2020년에는 3.93%(196만 명)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일상이 회
[전선영의 시로 보는 마음 1] 저는 시를 통해 잃어버린 슬픔을 찾았습니다. 저는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늘 똑같은 대답을 해요. “저의 꿈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요. 저는 어릴 적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어요. 좀 특이했던 점은 엄마가 형편이 되면 엄마랑 살고 아빠가 형편이 되면 아빠랑 사는 한 부모 가정이었어요. 경제적인 문제와 서로의 성격차이, 서로가 용서할 수 없었던 부분 때문에 저희 부모님은 함께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가 안전한 그늘이 되어주지 못할 때 아이는 아이다움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어른이 되는 가 봅니다. 저도 일찍부터 어른의 역할을 하느라 잃어버린 것들이 참 많은데 그 중 가장 마음 아픈 상실은 슬플 때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에요. 어느 날 엄마가 저와 제 여동생을 세워놓고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없을 거야. 당분간, 둘이 의지하고 서로 잘 돌봐주며 지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이처럼 떼를 쓰며 울어야 했는데 울지 않았습니다. “알겠어 엄마”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날 하교를 한 후 저는 엄마의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5] 클래식 최초의 불법복제 곡은? 휴일엔 밀린 전시를 몰아보기도 하지만 사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을 읽거나 한가롭게 집에서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몰아보기도 한다. 며칠 전,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며 인기몰이를 했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았다. 평소 좀비물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가 왜 인기였는지 궁금해서 뒤늦게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리즈 중간쯤에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생존자들이 좀비들을 음악실로 유인하려고 음악을 트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나온 음악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그렇듯이 종교음악에 기원이 있는 곡인데 기독교에서 예수가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만 불리는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라는 곡이다. 이 곡은 1638년 교황청 소속 작곡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가 시편 51편에 곡을 붙인 것으로 그 뜻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지금도 ‘미제레레’는 화려한 궁정 음악이나 정교회 음악과는 차별화된 곡으로 성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성에서 12성 합창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
노을 무진에는 안개가 명물이듯 파주에는 노을이 명물이다. 야간자율학습이 고되어도 저녁을 일찍 먹고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노을은 가없는 위로였다. 하늘 가득 불타오르는 가운데 잿빛구름마저 노을 덕분에 불씨를 품은 듯 발갛던 그 하늘! 스탠드에 앉아 김초희 시인의 ‘사랑굿’을 읽고 친구와 흠모하던 선생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노을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여행지에서는 늘 낙조시간을 기다렸다. 파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개선문에 올라 에펠탑, 라데팡스로 이어지는 방사선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밤에 시간을 넘기기 전 황금빛으로 따스하게 얼굴을 비추던 노을! 달팽이 계단을 끝없이 올라 마침내 마주한 광경! 누군가는 기다리기 지쳐 벽에 낙서도 해놨다. 놀이동산 한편에 누구누구 왔다가다를 빽빽하게 써놓듯, 이곳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한글도 보인다. 낙서는 본능인가보다. 미얀마 우베인 다리의 노을도 떠오른다. 서쪽만 붉은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붉었던 하늘. 저 멀리 아이들은 염소와 노닐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기울였다. 이 하나를 위해 양곤, 인레, 만달레이를 거쳐 찾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주 ‘백약이오름’의 노을도 생각난다. 분화구 가장자리의 억새와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2] 우리 같이 낙서해요~~ 학창 시절 교과서에 했던 낙서들 기억하시나요? 동그라미, 네모에 색을 채우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정교해지는 낙서의 퀄리티. 교과서 속 인물들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주고, 말풍선을 만들어 글을 적으며 친구와 키득키득 숨죽여 웃었던 기억. 때론 치열해보일 정도로 낙서에 집중을 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혹시 내가 그림 천재는 아닐까?’ 의심되는 훌륭한 작품들이 나와 자랑하고 돌려보는 일도 있었지요. 우리는 언제 낙서를 하게 될까요? 꼭‘낙서를 해야지!’라고 마음먹지 않아도 그저 손에 잡힌 펜과 종이가 있으면 무심코 끼적끼적 그림을 이어가기도 하고, 전화를 받는 동안 상대방이 말한 단어를 의미 없이 반복해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채워지는 여백에 마음도 같이 채워지는 것 같아 더 열심히 손을 움직였던 것도 같습니다. ‘그림을 그려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그림을 못 그린다고 손사래를 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아마도 우리가 미술 시간에 배웠던 비율, 빛과 어둠의 표현, 구도와 자세, 소실점 등의 기법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그림에 대한 흥미를 부담감으로 바꾸어 놓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