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세모’팀 어리버리 줌마들의 좌충우돌 ‘라이딩’ 6월부터 아줌마 4명이 뭉쳤습니다. 60대 중반으로 꾸준한 훈련에 이젠 깔딱 고개도 거침없이 오르는 ‘현선효즙’ 대표 왕 언니, 타고난 운동신경에 평창에서 부추 농사를 짓고 있는 50대 후반 ‘만평 팜’ 언니, 만평 팜 언니와 동갑으로 초보 라이더임에도 악바리 체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혜화동 한옥게스트의 주인장 ‘혜화동 마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3년 전, 동해안 300km 라이딩을 하루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조심스레 재활은 하고 있었으나, 라이딩은 10에 1도 생각하지 않았던 50대 중반의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장인 저! 입니다. 라이딩 사전 훈련 6월초부터 본격적인 라이딩 훈련에 들어가 1주일에 2번 정도는 다 같이 자전거를 탔습니다. 목표는 7월 9~10일, 1박2일로 대성리에서 춘천까지의 라이딩 완주! 하지만 제일 싱싱해야 할 막내인 제가 가장 문제였습니다. 언덕도 겨우 넘고, 항상 뒤에 쳐질 뿐 아니라, 속도도 10km 언저리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더구나 기어조절과 자전거에서 타고 내리는 것도 능숙하지 못하니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같이하는 라이딩에 혼자만 주저앉아 있을 수
[표현훈련을 다녀와서] ‘표현훈련’ 생소하시죠? 요즘 ‘해방’,‘자유’라는 말이 유독 많이 들려옵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고 하는데 내용은 어떠하든지 두고라도 저에게는 ‘해방’이라는 단어부터 눈길을 끕니다. 이번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자유라는 단어가 핵심 키워드로 사용되었다고 하죠. 얼마나 자유에 대해 갈증이 심했는지 35번이나 자유가 언급되었다고 세어 보고 알려준 사람이 있었네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해방’과 ‘자유’에 대해 더 목마름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비단 코로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무엇인가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듯한 답답함에 눌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인생을 더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냥 사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5월,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고 누리는 과정 하나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맛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가족이 떠나는 ‘2022년 봄 표현훈련’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중국에서 온 생기발랄한 30대 처자 이향균,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뭐든지 적극적인
이순신의 통영, 통영의 이순신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이 한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한산대첩의 현장인 통영에 다녀왔다. 통영이 초행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난 직후였기에 감흥이 새로웠다. 통영은 이순신의 고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영(統營)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줄임말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은 한산대첩 이듬해인 1593년 신설됐다. 충청과 전라, 경상도의 수군을 총괄할 각 수영(水營)의 상급 지휘부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산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서 이억기의 전라우수영과 원균의 경상우수영 수군들을 아울러 지휘했다. 이순신 장군은 연합함대의 사령관격이었지만 이억기와 원균은 장군의 부하가 아닌 수평관계의 장수였다. 지휘체계의 결함이 불가피했다. 통제영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관으로 1895년까지 존속했던 조선 수군의 총본부였다. 통제사는 종2품 관직으로 팔도의 도백(道伯)인 관찰사(觀察使)와 동급이었다. 외직으로는 최고위급이다. 역대 통제사는 모두 208명이었다. 초대 통제사는 한산대첩의 주역, 이순신 장군이 임명됐다. 통제사는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했다. 통제영이 지금의 자
5박6일, 남해안 관통 공동체로 우주문화를 창조하는 문화, 역사기행을 하다 A. 여행준비 올해 대폭 길어진 추석기간은 자칫 잘못하면 여느 명절처럼 허망하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섬세하게 시간과 일정을 배열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문화역사기행을 다음과 같이 조정해 약 1달간의 준비를 거쳐서 시행해 본 결과를 여기에 올립니다. 1) 시간 - 일정조정과 여행공동체 :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분들은 추석기간의 여행을 위해 일단 가족방문을 미리 하거나 혹은 추후에 하기로 하고 가족들의 양해를 미리 얻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추석전 하루(9월8일 목요일) - 추석연휴 (9월9일~12일) - 추석후 하루(9월13일 화요일)인 총 5박6일로 정했습니다. 각자의 회사에 추석 전후 이틀간 휴가를 미리미리 신청함으로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에 참여하는 분들의 직업은 모두 달랐으며, 남녀 불문하였고, 초등학생에서 70세가 다 된 분들, 네팔 출신과 중국인까지 포함해 하나의 여행공동체가 되어 움직여 보았습니다. 여행의 별미는 어디에 가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있다고 하는데, 평소
남해안 문화·역사 기행 단상 ① 국립 부산 과학관 ② UN기념공원 ③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박물관 ④ 조선통신사역사관 ⑤ 국립해양박물관 ⑥ 자갈치시장 ⑦ 국제시장 ⑧ 차이나타운, 텍사스거리 ⑨ 을숙도 생태공원 5박 6일 남해안 여행! 저는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2009년 네팔에서 온 후, 2017년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지만 한국 역사는 잘 몰랐어요. 이번 여행에서 이순신 장군이 우리나라를 지켰던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역사와 관련된 영화를 봐도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역사박물관, 옛날에 전쟁 했던 장소를 직접 가서 보고, 제 옆에서 5박6일 동안 같이 간 사람들이 계속 설명을 해주어 남해군 이순신 순국공원 안에 있는 이순신 영상관에서 노량해전 영상을 보며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님들이 우리나라를 살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더 노력을 해서 더 강한 나라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좋았습니다. 군포시 금정동 김혜영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오잉? 뭔 이런 촌스럽고 이상한 공룡이름이 다 있나? 전남 보
[문화기행수필] ‘여수 밤바다 ’ 유감 이순신 놀이, 소녀상 놀이 올해 추석 여수 밤거리와 바다의 풍경에서 솟아오르는 환상적 보름달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며 우리를 애태우며 감질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밤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중국산 프로펠러 장난감은 두둥실 뜬 달이 있는 하늘과 우주를 향하고픈 마음을 상징이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감동의 대미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순신과 관계된 ‘이순신 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순신 동상’과 ‘승전한 대첩’ 이름들과 ‘거북선’, 그리고 둘째는 저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옆에 놓인 빈 의자에 같이 앉아보라고 초청하는 듯한 ‘소녀상’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놀랍게도 같은 대상인 왜군,왜놈,일본인이 우리를 끝장내려고 의도적으로 가한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동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선조는 400여 년 전의 ‘먼 과거’에는 방어에 성공했으나, 110~80여 년 전의 ‘가까운 과거’에서 실패했다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기는 합니다. 여수시가 의도적으로 이런, 연관되지만 상반되는 과거들을 배열해서 생각하게 만든 점은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점에서 아쉽고 안타까울 뿐 아니라, 좀 더
그 누구의 길도 아닌 갑자기 시간 부자가 되었다. 찌는 듯한 여름도, 칼날 같은 겨울도 아닌 봄, 가을을 포함한 일 년을! 연구년이란 이름으로. 머리 쓰는 일보다 몸 쓰는 일을 낮춰보는 풍토에서 몸 쓰는 일이 보다 더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교육과정 안으로 걷기를 끌어오고 싶었다.《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서명숙)에서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제주도 올레길을 만들었고, 그 후로 각 지차체에서 너도나도 길을 내게 된 과정, 그 가운데 내가 살고 있는 의정부의 소풍길도 있다는 것이 나를 산티아고로 거침없이 잡아당겼다. 산티아고를 가보자. 가기 전에 의정부를 샅샅이 걷자. 그런 뒤 학교에서 수업을 소풍처럼 설계하자. 시와 소설이 살아 움직이도록.《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을 읽고 도시를 직접 걸어보며 패러디해보기처럼. 나의 계획서는 교육청의 여러 관문을 통해 낙점이 되었고 모든 계획의 출발지인 산티아고로 향하게 했다. 연수원의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포르투칼에서 출발하는 여정을 선택했다. 폰테 데 리마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의도하지 않았는데 숱한 문학작품과 영화, 친구, 가족이 길에서 소환되었다. 첫 번째
우여곡절 4000km 유럽 출장기(2) 자꾸 의심하게 만드는 유럽의 네비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들어와 고속도로로 달리며 네이게이션을 세팅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외곽에서도 30km의 거리가 나오더라고요. 이쯤 되니 또 네비게이션이 의심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전시장은 암스테르담시 외곽으로 알고 있는데 시내 중심가로 안내를 하고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역시… 도착한 곳은 큰 교회 건물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엑스포를 하는 것일까요? 이곳이 전시장일리는 만무하고, 다시 시 외곽의 임의의 주소를 찾아 차를 몰고 달렸습니다. 그랬더니 스키폴 공항 서쪽에 위치한 큰 벌판 한 가운데 덩그러니 온실 같은 곳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여기가 전시장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죠. 보통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컨벤션 센터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나 동아시아 3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 전시장이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아무튼 전시장으로 진입, 짐을 대략 풀었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니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하더군요. 그래서 세팅은 내일 하기로 하고 일단 철수를 했습니다. 세계를 주름잡았던 네덜란드 늦은 저녁이라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르완다 아카게라의 밤하늘은하수와 별자리에 홀리듯 빠져든 날 선선한 초저녁 바람이 불어오자 삼삼오오 모닥불 앞으로 모여들었다. 진홍색 노을이 서편의 하늘가를 물들이니 빨간 불꽃색이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아카게라의 캠핑장은 전기펜스를 둘러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는 공원 내의 안전지대다. 범상치 않은 동물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풀벌레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면 사방은 온통 고요와 적막으로 뒤덮인다. 이 무렵이면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눈다. 캠핑장에 놓인 의자에 모여들지만 대부분은 준비해 온 개인용 간이 의자를 펼쳐서 대형을 만든다. 저녁은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간소해서 담소에 집중하느라 먹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은 느낌을 준다. 반면, 우리 한국팀은 캠핑장의 한구석에 위치한 불판 주변으로 모였다. 이번에도 장작불 위에 삼겹살을 구워 낼 계획이다. 지난번 우기철에는 물을 머금은 나무에 불을 붙여서 밥을 지어먹는 게 쉽지 않았는데, 건기의 장작은 화력이 무섭게 타오른다. 나무의 은근한 향기에 어우러져 지글지글 노릇노릇 기름기가 쏙 빠지게 익어가는 목살을 여럿이 함께 먹으니 입에서 살살 녹는 형언키 어려운 황홀함이다. 기온이 내려
우여곡절 4000km 유럽 출장기(3) 스위스가 유럽(EU)이 아니라고? 빌링앤 슈베닝엔은 두 도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하나의 지역이었습니다. 숙소로 묵었던 곳은 옛 성채가 그대로 있어 옛 도시의 느낌이 살아있는 지역이었죠. 아무래도 이탈리아와 가까운 독일남부라 그런지 로마 카톨릭 성당이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골이 자동차 부품으로 유명한 동네라고 합니다. 업체명만 말하면 모두가 아는 그런 업체들의 지사가 있고요. 그래서 연간 몇 번씩 자동차 엔진 부품, 전장 부품 등에 관한 전시회가 열리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저희 독일 엔지니어가 자동차 분야 일도 겸하고 있다 보니 이런 시골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죠. 시내를 둘러볼 시간도 없이 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가기 위해 독일 엔지니어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거의 650km 정도를 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의 사무실 쪽으로 달리다 보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산지로 들어가는데 마치 한국의 강원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어서 이질적이지 않았죠. 오늘은 며칠 동안 고생한 사장님과 저를 대신해 독일 엔지니어가 우선 베네치아까지 운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뒷좌석에서 편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