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 장인의 자개 스토리 인쇄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개를 만나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인 8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에서 인쇄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쇄의 사통팔달 요지는 충무로였지요. 종이인쇄를 비롯한 어떤 인쇄든 충무로에 가면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저는 어떤 주문이 들어와도‘안 되는 일은 없다’는 신념으로 용인 에버랜드(그 당시에는 자연농원), 제주중문관광단지, 천안독립기념관 등 굵직한 일들을 하면서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업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늦게까지 야근을 밥 먹 듯하고, 쉴새 없는 거래처 전화에 평일 휴일도 없이, 최소한의 여유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수년의 세월동안 체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이리 일은 원 없이 했건만 일한 만큼 보람도 없고 수입도 적고… 죽어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만 버는 것 같아 제가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90년대 초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 닥친 혹독한 IMF를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정말 난해한 일도, 불가능 하다고 다른 업체가 포기한 일도 완성했습니다. 제게 맡겨진 일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따뜻한 동네가게 스토리] 맛, 시간, 공간을 요리하는 디자이너 점.선.면. 경기도 안양시 동편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가게 ‘점선면’.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하는 가게인지 잘 모르겠고, 가게 외부 모습만 봐서도 카페인지? 음식점인지?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동네 최고의 아지트를 소개합니다. 메기국수라고? 저희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드셨던 메기국물이 현재‘점선면’의 대표 메뉴인 메기국수가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부모님은 10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메기국수 음식점을 운영하신 적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한국 메기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나게 크고 질 좋은 메기들이 메콩강에 많이 있습니다. 특히 날씨가 더운 캄보디아에서 지내다보면 기력이 많이 빠지는데 그 메기들을 보고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먹어본 메기탕에 도전해서 성공하셨던 것이죠. 주로 단체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했던 식당이었는데 한 번 드셔보신 분들이 한국 가면 생각난다고 하며 종종 다시 찾아주시곤 하셨어요. 그 아이템을 한국에서 한 번 시도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엔 너무나 생소한 음식이라서 두려움도 있었지요. 볼거리, 놀거리가 숨어있다 점선면은 단지 음식뿐 아니라 우리만의 무언가를 손님들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포토그래퍼 스토리] 빛으로 그리며 작품을 만드는 포토그래퍼 ‘김인규’ 광고 사진에 매료되다 원래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실용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고 스튜디오에 다니던 선배를 보러 충무로에 갔는데 일하는 선배의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 그때 사진에 완전히 매료되어 사진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0년간 사진을 찍고 있어요. 사진을 하며 큰 업체에도 있어 보았지만, 제가 작업하는 사진을 특정 분야로 한정 짓는 게 싫었습니다. 사물이든, 풍경이든 분야에 상관없이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선배들로부터 누가 어떤 분야 사진을 잘 찍는다 하면, 그분을 무작정 찾아가 무보수로 일할 테니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요령도 피우지 않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열심히 배우니, 적은 보수로 일하게 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저에게 아주 자세히 자신들의 노하우를 가르쳐주었어요.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몇 년간 장인들로부터 배우며 저의 역량을 키워 32살 이른 나이에 제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가슴 떨렸던 첫 촬영 28살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실장님이 부르시더니, 지금 바로 비행기
[따뜻한 동네가게 스토리]촌스럽지만 센스있는 베트남 길거리 음식점 ‘분분’ 애니메이터에서 쌀국수집 사장으로 20대를 미국에서 애니메이션 공부에 올인하고 3년간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며 10년후의 제 모습을 상상했을 때, 점점 열정이 식어가는 직장 선배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죠. 미국에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디렉터 애니메이터에게 직접 배우며 고 퀄리티 애니메이션 만드는 것을 꿈꾸었는데, 여러 상황이 안되어 한국에 들어와 취직을 하고 보니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하는 환경 자체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마치 신라호텔 주방장이 되려고 십수년 요리공부를 해왔는데 현실은 분식집에서 라면을 끓이는 기분이랄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정말 그냥 일자체가 되어버려 사무실에서 일했던 3년은 저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 발을 담궜던 분야에서 빠져나와 완전히 다른 일을 뒤늦게 시작했음에도 저를 응원해준 와이프에게 고마운 마음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참 열심히 노력했죠. 사업을 마음먹고 아이템을 찾던 중, 미국 유학시절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베트남 쌀국수가 생각났습니다. 유
[따뜻한 제주청년 농부스토리] 겨울이 되면 늘 그렇듯 또시(다시) 온 귤 또 시 온 귤 아가씨의 시작 저는 대부분의 과일을 진짜 싫어합니다. 딸기도 싫어하고요. 사과와 배는 누가 깎아줘도 먹지 않는데, 유일하게 먹는 과일이 바로 귤입니다. 귤은 정말 너무너무 맛있죠. 아버지께서 40년 동안 제주에서 도매업을 해오시며 귤이 맛있다고 제가 있던 목포로 많이 보내주셨어요. 대학 방학 때 그런 귤과 사랑에 빠져 아버지를 따라 제주로 들어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귤과 함께 일하는 것도 너무 즐거웠지만 이 일은 심지어 워라벨(Work-life balance)까지 완벽합니다. 가을, 겨울에 일하고 봄, 여름에는 여행을 갈 수 있기에 이건 천직이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시작한 지 벌써 5년째가 되어갑니다.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정말로 가을과 겨울에만 일을 하고, 날이 따뜻해지면 철없이 번 돈을 모두 가지고 봄, 여름 동안 기나긴 해외여행을 다녔습니다. 사실은 여행을 좋아해서 가기도 했지만, 제주에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떠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가 많이 개방적이 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외부에서 들어와 정착하는 입장에서 보기엔 아직도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거든요
나전칠기의 아름답고 찬란한 세계를 보여주는 ‘휘향찬란’ ‘휘향찬란’ 나전칠기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조개마다 가진 다른 무늬, 빛깔, 패턴이 있기 때문이죠. 빛에 따라 아주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 빛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휘향찬란’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향한 도전 사실 몇 해 전까지 저는 회사에서 회계 관련 일을 하던 3년차 직장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항상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베이킹, 가죽공예, 코딩, 일러스트, 포토샵 등 다양한 분야를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나전칠기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명장님들께 많은 조언과 사업적인 멘토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수리기능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프리마켓을 종종 나갔었는데, 그때마다 찾아주는 분들의 많은 응원과 관심 덕분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원데이 오프라인 클래스, 온라인 클래스로 나전칠기 귀걸이, 머리핀, 키링, 그립톡, 커스텀 제품들
[전문농업인을 꿈꾸는 청년 농부이야기] ‘베 리 테 마 파 크’ 를 꿈꾸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한 농업 초등학생 때부터 감나무와 사과나무를 키우시던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조금씩 해오던 저는 고등학생 때 큰 고민 없이 농업분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물론 중학생 때에는 주말마다 농장 일을 돕는 것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농사는 못 짓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요. 부모님이 노지에서 농사짓느라 항상 땅에 무릎 꿇고, 허리 숙여 일하시는 것이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농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찾아보니 스마트팜이라는 것을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식물에 대해서만 잘 알고, 재배 관련 공부를 열심히 하면 딱히 힘 들이지 않아도 기계들이 알아서 잘 해줄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농대생 3년차, 스마트팜의 현실에는 제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이 훨씬 많이 숨어있음을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전문농업인이 되기 위해 지금은 열공 중 저는 영농창업전형으로 대학교에 입학해서 원예학과와 영농창업사업단 수업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충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에는 다양한 전공들이 있지만 농대는 대표적으로 식물을 공부하는 원예학과,
[친환경 동네가게 제로에이블 스토리] ZERO(제로웨이스트) + ABLE(가능하게 하다) ZERO : ABLE덜 만듦으로, 미래를 더하다! 무심결에 쓰던 플라스틱 양에 깜짝 놀라, 시작된 환경에 대한 관심 직업상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제가 매일 사용하고 버리던 생수병, 즉석음식 1회용 용기들을 보고 문득 ‘나 혼자 쓰는 것도 이정도인데 하루에 버려지는 양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그린피스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종류와 그 양에 대한 조사를 하는 캠페인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죠. 매일매일 사용하는 음료수 병, 햇반 등 모든 플라스틱을 일일이 리스트에 적다 보니 생각보다 사용량이 엄청나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심결에 쓰던 플라스틱을 제 자신 스스로 자각하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환경과 지구관련 공부도 하고 책도 찾아보며, 그렇게 3년을 준비하고 ‘제로에이블’을 시작하였습니다. 제로에이블 안에서 먼저 하나 되기 현재 제로에이블은 저까지 총 5명의 파트너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부터 본격적인 매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함께하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같은 생각으로 제로에
세계! 한옥의 매력에 빠지다 어릴 적에 초가집에 살았다. 방이 두개, 부엌 한개가 있었으니 말 그대로 초가삼간이었다. 다행히 쓰러질듯한 오래된 초가는 아니었다. 마을이름도 ‘웃마’였다. 윗마을을 줄여서 그렇게 부른 듯하다.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힐링촌으로 손색이 없을듯하지만, 아쉽게도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살아온 인생 중, 서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쉽사리 서울 사람이 되어지지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일본과 중국에 가서 이방인으로 살아보기도 했다. 어디를 가나 시골정서는 내 삶을 늘 따라다녔고, 잃어버린 고향을 찾고 싶은 마음이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2009년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서 조상의 숨결을 느끼는 혜화동 한옥에서의 삶을 선택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10여 년 운영하면서 지내왔다. 세계에서 왔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도시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늘 경주를 추천해 주곤 했다. ‘2021 한옥문화박람회’가 [한옥, 공간을 연결하다]를 주제로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
봉고차 타고 ‘찾아가는 옷 수선’하는 그 날까지, 술람미 홈패션 고고씽! 한복 기술자로의 입문 저는 충남 홍성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결혼하고 평범한 주부로 지내는 어느 날, 큰 언니가 한복 기술을 배워 보라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큰언니와 오빠가 광장시장에서 한복 기술자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광장시장은 한복거리로 호황이었어요. 골목골목 작은 판자촌으로 이루어져 2층엔 포목점들이 즐비했고, 3, 4층에는 한복 만드는 기술자들이 성냥갑처럼 작은 공간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저는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에 안산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하며 한복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죠. 3개월을 배우고 한복 일감을 받아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일이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광장시장에 한복 가게를 임대해 11여 년 정도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전문으로 일을 했습니다. 한참 결혼 성수기 때면 잠을 못 자고 의자에 앉아 졸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니까요.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번개같이 지나는 하루하루 속에서도 한복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옷 수선 전문가로 다시 시작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한복 시장은 하락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