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유진하우스에서 에스토니아인들과 금(金), 금치체험을! “Tere päevast! (테레 파바스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인사말 “어서오세요! 유진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면“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데, 한 번 해볼까요?”했더니, 모두들 서투른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를 제각각의 억양으로 말한다. 그래도 잘 했다고 칭찬을 해 드렸다. 그럼 “에스토니아어로는 어떻게 말하나요?” 물었더니, “Tere päevast! (테레 파바스트!)” 라고 한다. 아이구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인사말이었다. 어슬프게 따라 했더니 다시 발음을 한 번 하신다.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발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간단한 인사를 따라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말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단어 몇 마디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배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을 온 분들이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우린 김치 안 먹고 살아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김치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세계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일본 학교 앞에는 왜 분식점이 없을까? 학창 시절 추억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새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식점과 도서관이 금방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일본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좀 놀랐던 것은 학교 앞에 분식점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학교 내의 매점도 존재하지 않죠. 특히 학교에는 돈과 시계 등을 가지고 가면 안 됩니다. 즉 귀중품을 소지하지 못하고 개인 소지품 또한 가져가면 안 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빈부 격차로 인해 아이들이 힘들어 할 수도 있는 정서를 고려한 것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교과서도 교실에 절대 놓고 다니면 안 되었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총 11kg나 되는 가방(여행가방 사이즈)을 매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 이유 또한 학교에 놓고 다니면 도난사고나 다른 아이들이 자기 물건에 낙서하고, 물건을 빼앗으며 놀리는 이지매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랍니다. 이렇듯 돈을 가지고 다니지 못 하니 학교 근처에 분식점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거리에서 손에 먹을 것을 들고 걸어 다니는 것 또한 허락되질 않았습니다.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것이죠. 일본의 학부모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초·중
남해안 문화·역사 기행 단상 ① 국립 부산 과학관 ② UN기념공원 ③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박물관 ④ 조선통신사역사관 ⑤ 국립해양박물관 ⑥ 자갈치시장 ⑦ 국제시장 ⑧ 차이나타운, 텍사스거리 ⑨ 을숙도 생태공원 5박 6일 남해안 여행! 저는 처음으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2009년 네팔에서 온 후, 2017년 한국에 귀화해 한국인이 되었지만 한국 역사는 잘 몰랐어요. 이번 여행에서 이순신 장군이 우리나라를 지켰던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역사와 관련된 영화를 봐도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역사박물관, 옛날에 전쟁 했던 장소를 직접 가서 보고, 제 옆에서 5박6일 동안 같이 간 사람들이 계속 설명을 해주어 남해군 이순신 순국공원 안에 있는 이순신 영상관에서 노량해전 영상을 보며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님들이 우리나라를 살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더 노력을 해서 더 강한 나라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좋았습니다. 군포시 금정동 김혜영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오잉? 뭔 이런 촌스럽고 이상한 공룡이름이 다 있나? 전남 보
최강 약골, 드디어 달리기 시작하다 “아이쿠~ 발목아” 출근길 내려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또 오른쪽 발을 삐끗했다. 이번 발목 부상도 왠지 꽤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니 발목이 퉁퉁 붓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온다. 회사 근처 단골병원에 들러 X레이 사진을 찍고 진찰을 받았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다. “이번에는 또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자꾸 이렇게 다쳐서 어떡해요.” 발목에 인대가 또 늘어나 당분간 병원에 나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목 때문에 9개월 동안이나 도수치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 중간에도 괜찮아졌다가 다시 다치기를 반복하니 도수치료사 선생님도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다. 병원 직원들도 이제는 내가 병원 입구만 들어가도 알아서 접수를 해주었다. 발목 힘을 기르겠다고 산 마사이족 신발, 쿠션이 좋은 운동화, 발목을 잡아주는 운동화, 발목 보호대, 발 마사지기, 힘줄과 연골 강화에 좋은 건강식품 보조제, 염증 치료에 좋다는 강황가루 등 발에 쓴 돈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되었다. 거기다 9개월 동안 받은 도수치료와 병원비 약 값까지 1년간 쓴 돈을 합치면 몇 달치 월급은 훌쩍 넘었다. 원래 발에
[나선명의 만평팜 스토리 1] 평창에서 다시 시작된 귀농일기 9년 전, 전남 무안에서 양파농사를 야심차게 지어 본 것이 엊그제처럼 기억납니다. 좌충우돌하며 농사초보가 시작했다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 3~4년간 손을 놓고 있었죠. 다른 일을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농사에 대한 미련,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지 충주와 서산 등 농장에서 일을 하며 농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차에 일손을 돕기 위해 평창을 방문하게 되었고 작년 지인을 통해 평창에서 제2의 귀농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물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고랭지 부추 재배 작목반이 막 형성되고 있었기에 마을 지인의 소개로 들어가 함께 배워가며, 공판장에 납품 하면 유통은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 부추재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종을 공동으로 키워 옮겨 심을 때도 함께 도와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자라는 부추를 볼 때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읊조리며 자세히 보고, 오래보려고 노력하니 예쁘고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부추 모종을 막 심어 놓자 갑작스런 꽃샘추위가 와서 어린 모종에 살얼음이 오면 어찌해야하나 발을 동동거리며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했죠. 다행히 부추는
[문화기행수필] ‘여수 밤바다 ’ 유감 이순신 놀이, 소녀상 놀이 올해 추석 여수 밤거리와 바다의 풍경에서 솟아오르는 환상적 보름달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며 우리를 애태우며 감질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밤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중국산 프로펠러 장난감은 두둥실 뜬 달이 있는 하늘과 우주를 향하고픈 마음을 상징이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감동의 대미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순신과 관계된 ‘이순신 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이순신 동상’과 ‘승전한 대첩’ 이름들과 ‘거북선’, 그리고 둘째는 저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옆에 놓인 빈 의자에 같이 앉아보라고 초청하는 듯한 ‘소녀상’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놀랍게도 같은 대상인 왜군,왜놈,일본인이 우리를 끝장내려고 의도적으로 가한 행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동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선조는 400여 년 전의 ‘먼 과거’에는 방어에 성공했으나, 110~80여 년 전의 ‘가까운 과거’에서 실패했다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기는 합니다. 여수시가 의도적으로 이런, 연관되지만 상반되는 과거들을 배열해서 생각하게 만든 점은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점에서 아쉽고 안타까울 뿐 아니라, 좀 더
[김원천의 건축이야기 2]한옥의 변화, 홍 성 어 린 이 숲 체 험 관 최근 지인들의 SNS, 잡지들을 보면 한옥사진이나 동영상이 심심찮게 올라오는데 전통적인 것부터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한옥까지 그 디자인과 쓰임새가 다양하다. 특히 용도가 다양해지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카페, 게스트하우스, 호텔, 사무실, 갤러리, 상점 등 주택이 대부분이던 한옥이 사회문화적 욕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흐름은 민간영역뿐 아니고 국가나 지방정부 등 공공영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겠다. 우리 회사에서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가의 한옥기술개발연구단의 연구실증에 참여해왔다. 이 중 직접 설계하고 감리한 ‘홍성 어린이 숲 체험관’은 새로운 형태와 구조를 실험한 한옥이다. 한옥으로 공공시설을 짓는다는 것, 거기에 숲 체험관은 다소 생소한 시설인데다 주 이용자가 영유아들이라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우리는 먼저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한옥공간에서의 놀이와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숲과 친숙해 질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신기술이 적용된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줘 고정관념을 깨고 한옥이 다양한
[퍼머컬처 이야기] 시 고 레 바 트 로 '밭~ 멍~'하러 오세요~ 밭~~멍 해보신적 있나요? 불~멍~, 물~멍~뿐 아니라 예쁜 밭에서 밭멍을 하는게 얼마나 좋은지 알려드릴께요.(웃음) 밭~멍~이 위치한 곳은 강원도 영월의 상동이라는 폐광지역 작은 마을입니다. 전국 읍단위 중 최소 인구 지역으로 텅스텐 광산이 흥했을 때에는 3만 명이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거주 인구가 1천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소리는 들린지 오래이고 인구자연감소만 일어나는 그야말로 인구 소멸위기 지역이지요. 이곳은 저희 집안 대대로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으며 절인배추 공장도 운영해오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버님께서 절인배추 농장과 공장, 가공업을 하시면서 과로사로 쓰러져 돌아가신 후 딸만 셋인 저희 집에서는 손이 덜 가는 농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바로 ‘퍼머컬처’입니다. 퍼 머 컬 처를 소개합니다 퍼머컬처는 생태적인 농업의 한 분야로 Permanent와 agriculture 또는 culture의 합성어입니다. 즉, 지속가능한 농업이나 그걸 넘어선 지속가능한 문화를 의미하지요. 해외에는 이것에 대해 책도 많고 대학교에 전공학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스마트
[세계속의 한국인] 나만의 대만 살이! (2) 직장생활에서 개인사업을 꿈꾸다 22년 전,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던 한국 회사에서 대만 신주(新竹)지사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타이완에서 시작하기 전에는 주로 배낭여행이 전부였답니다. 대만에서도 IT산업과 전자산업의 메카인 신주(新竹)는 대만의 경제 부흥의 1번지였지요. 타이완 모든 지역에 지진이 나더라도 신주(新竹)만큼은 나면 안 된다는 곳일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기술이 전부였거든요. 간혹 한 두 업체 정도 Made in Korea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찾아봐야 했어요. 왜냐면, 제가 거주한 신주(新竹)는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수원 또는 화성이었거든요. 생산지였지만 소비지가 아니였던 만큼, 타이페이(수도)로 나오지 않으면 거의 없었지요. “Who are you?”, “Which company?” 5년간의 대만지사 근무를 마치고, 한국 본사로 복귀하지 않고 운 좋게 TFT-LCD 회사의 대만지사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반도체 장비와 LCD 장비 회사에 7~8년간 근무를 하면서 서서히 개인사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지요. 글로벌 전자산업의 중심 중 하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 메타버스 그림책 플랫폼 아름담다 미디어 랩 ‘배정훈’ 상상하고, 만들고, 창작을 좋아했던 나! 밀양에서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 삼형제의 막내로 자라난 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고생도 많이 하지 않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막내인 저에게 참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고 창작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한마디로 조용하게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아이였죠. 그러다 운 좋게 대학에 입학해 도시계획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설계도 창작이긴 한데 딱히 매력적이지 않다가, 대학 졸업 후 2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그때 약간 세상이 보이더군요. 내가 일할 분야의 공부를 충실히 해야 된다는 거죠. 산업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결국 전공한 것을 버리지 못하고 도시설계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원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자기 전공과 상관없이 다른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도시설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변호사가 와서 공부를 했으니까요. 이런 가운데 저도 한 번 진로를 정했다고 그냥 쭈~욱 이 길로만 간다는 게 웃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