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싱에 스매싱 당한 날 미끼 ‘엄마~ 나 폰 액정 깨져서 수리 맡기고 임시번호로 문자하고 있어요. 답장 주세요.’ 이 문자 하나로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으잉? 이게 뭐야? 조심 좀 하지. 얘는 또~~ 지난달에 폰 떨어뜨려서 수리하더니 왜 또 고장 냈대” 그렇게 주고받기 시작한 문자. 고장 난 폰을 수리하는데 드는 보험비를 내 통장으로 대신 청구하기 위해 나의 통장 번호와 비밀번호, 그리고 신분증이 필요하단다. 컴퓨터를 전공한 딸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기계나 인터넷과 관련된 것들은 물어보면 워낙 알아서 다 챙기고 척척 박사처럼 해주니, 이번에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방심한 채 요구하는 정보는 다 불러주고 신분증도 사진 찍어서 보냈다. 내 스마트폰에 설치하라는 것도 다 설치하고… ‘엄마 폰으로 필요한 거 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니까 폰 끄지도 말고 그냥 놔두세요~’ 그 문자를 마지막으로 난 집안일을 이어갔다. 악몽 그렇게 2~3시간쯤 흘렀을까? “따르릉~” 집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기 OO은행인데요” ‘응? 뭐지? 갑자기 OO은행? 이거 은행을 사칭한 피싱 사기 전화 아니야?’ “고객님 지금 피싱 사기 당하고 계신 것 같아요. 스마
직장 상사의 끝판왕“울 이사님”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고 엔데믹이 되었지만, 일상의 많은 것들은 여전히 변해있습니다. 물가 상승과 개인과 나라의 부채 상승, 코로나 이후 구조조정으로 빈 책상만 남은 사무실 등…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 12월 이후부터 회사의 매출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주변기기와 핸드폰 액세서리를 오프라인 매장에 납품하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 회사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납품하던 오프라인 매장 50곳이 폐점하였고, 코로나 이후 매장 방문 손님이 줄어 매출은 급락을 하였지요. 온라인 판매 매출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전체 운영자금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오프라인 매장, 본사, 지점 직원 포함 전체 직원의 70%를 줄이는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회사의 사정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자 회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사님마저 자진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사님의 퇴사 소식에 회사 내부뿐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여 하루 종일 함께 시간과 공간을 사용했던 동료들이 떠나고, 빈 책상이 남은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
하 늘 예전 학교 선생님에게 “부모님께 가장 최근에 본 하늘이 언제였는지 물어보세요”라는 숙제를 받아본 적이 있다.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여쭤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였다. 다음날 선생님께서 “하늘을 언제 본 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신 부모님들은 바쁜 일상에 치여서 여유가 없어 하늘을 볼 시간이 없으신 것일 수도 있다”하셨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달이 예쁘게 떴다는 말을 듣고 우연히 하늘을 보면서 나도 언제 하늘을 마지막으로 보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동안 여유가 없었나보다.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는 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크게 에너지를 써야하는 일은 아닌데 하늘을 볼 여유조차 없다니. 사실 시간적인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시험 기간엔 답답하고 힘든 마음에 누가 툭 치면 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쁠 때에는 할 일에 치여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날 위해 해주는 뾰족한 말 화살들은 화살표가 되어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긴 커녕, 날 찔러 아프게 했다. 나는 항상 이런 마음들을 다 안아가며 살아갔다. 부족한 나 자신을 탓하고
3대를 통해 돌아보는 군대 이야기 지난 4월 11일은 우리 가족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전역 날이자, 동시에 둘째의 훈련소 퇴소식이 있는 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와 아내는 군포에서, 전역하는 첫째 아들은 여수에서 출발해 둘째의 퇴소식이 있는 논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재밌게도 논산은 군포와 여수에서 직선거리로 거의 동일한 거리의 중간에 위치해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날의 특별함을 더해 주는 작은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30년 전 제가 입대해 훈련을 받았던 곳이 바로 논산훈련소라는 것이죠. 둘째 아들이 저의 훈련소 후배가 된 것인데, 제가 후반기 훈련을 받았던 곳이 아들의 퇴소식이 열리는 장소였죠. 거기다 아들이 5주간 훈련받은 연무대(논산훈련소를 부르는 다른 명칭) 안을 둘러보며, 그곳에서의 저의 군 생활이 새록새록 기억나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30년 전 나의 군 생활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993년의 나 우스개 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3위는 ‘군대 이야기’이고, 2위는 ‘축구 이야기’, 대망의 1위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푸른 하늘과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양양 ‘푸른 하늘 은하수’ 펜션 자연 속에 폭!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3년,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린 시절 살던 고향으로 되돌아와 ‘푸른 하늘 은하수’ 펜션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저희 펜션까지 들어오는 어성전 계곡을 따라 펜션과 캠핑장이 여럿 있지만 그 당시엔 저희가 제일 처음 시작했죠. 이곳엔 봄이면 취나물도 따서 먹고, 개구리 알, 도롱뇽 알에 산벚꽃을 비롯한 이름 모를 들꽃을 가득 만나실수 있어요. 여름엔 계곡에서 낚시와 물장구치기 뿐 아니라 자연산 뽕나무의 오디와 산딸기도 마음껏 맛보실 수 있고요. 하조대 해수욕장까지 차로 20분밖에 안 걸려서 바다에도 금방 다녀올 수 있답니다. 가을의 단풍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요. 겨울엔 눈이 40~50cm정도는 와야 눈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는 겨울왕국에서 이글루도 만들어보실 수 있지요. 60~70년은 족히 넘은 멋진 금강송들에 둘러싸여있는 펜션 바로 뒤에는 산림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다양한 등산코스와 어성전‘더불여 숲’,‘유아숲 체험장’등이 있어 저희 펜션에 오시는 분들에게 꼭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있답니다. 손전등 없이 밤 산책을 해보셨나요? 우리 주변의
[따뜻한 동네가게 스토리] 국적없이 누구나 편히 머물다 가는 북 카페‘꿈꾸는 정원’ 아침에 눈을 뜨면 화분에 물을 주는 것부터 일과가 시작됩니다. 카페 안팎을 청소하고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면 오전이 금방 가지요. 저는 카페 운영과 텃밭에 야채를 키우고 꽃을 돌보고, 카페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일을 맡아 하고, 남편은 학자로서 연구를 주로 하며, 카페의 대외적인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텃밭에서 키우는 농작물들에게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거름을 직접 만들어 주는 친환경으로 작물을 키우고 있어요. 또 강아지도 원래 3마리였는데 7마리가 더해져서 10마리가 뛰어놀고 있지요. 이곳 용인에 터를 잡은 이유는 산과 들도 가까이 있고 사방이 조용하고 딸과 함께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며 시골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을 마음껏 하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 북 카페 ‘꿈꾸는 정원’을 꿈꾸다 원래 저희는 영국에서 6년, 인도에서 8년을 살았습니다. 인도에서 남편은 신학교 교수와 사업을 하고, 저는 한국문화원 소속으로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의 업무를 했는데 비자 문제와 펜데믹 등 여러 문제들이 겹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딸은
[신간소개, 비평] 엑설런스, 인간의 탁월함을 결정하는 9가지 능력 (1)도리스 메르틴 저, 배명자 역, 다산초당 2022 한국에서도 전문가가 검증하여 비평을 곁들이며, 300페이지 정도의 책을 제대로 된 깊이의 내용으로 전달해주는, 15분 정도 ‘책읽어주는 앱’(Blinklist)들이 많이 생기기 바라는 생각에서 [신간소개,비평]을 신설해 보았습니다. 서평에서 잡아야할 두 마리 토끼인, ‘깊은 요약’과 ‘공정한 비평’을 하는 것은, 힘들지만 한번 시도해 보려는 겁니다. 만약 이 글이 성공했다면, 독자 여러분들이 책을 직접 읽게 되고, 자신만의 유용성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새로운 비평으로 대조해 보려고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소개, 비평하게 된 이유는, 저자 Doris Maertin의 전작인 [아비투스]에서 미국문화에 경도된 한국에서는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유럽문화의 정수인 ‘최상층이 가진 7가지의 자본’을 소개하는 것에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아비투스: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르스 메르틴, 배명자 역, 다산초당, 2020 (Habitus: Sind Sie beriet fuer den Sprung nach ganz oben?)
4년 동안 일본의 직장문화 벗고 한국에서 새롭게 출발하기 ‘참새가 아무리 떠들어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실력이 없고 변변치 아니한 무리들이 아무리 떠들어 대더라도 실력이 있는 사람은 다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빅데이터를 전공한 저는 이런 실력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일본에 갔습니다. 로봇기술과 통계, 우주 관련 사업들에 있어 앞서가고 있는 일본에서 홀로 서보고자 했죠. 그리고 4년 동안 직접 살아보며 일본의 문화와 역사 등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첫 인상과 적응하기까지 처음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느낀 인상은 어두운 조명과 축 쳐진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너무 느린 비자동화 된 절차와 글로벌하지 않은 직원들의 영어 발음에 충격을 받았죠. ‘파스뽀또!’ 여권을 달라는 소리에 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종이에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교통카드를 꼭 사야만 했습니다. 한국처럼 모든 교통데이터가 통합되지 않아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결제할 수가 없었어요. 일상생활에서의 IT활용서비스는 그리 발전되어 있지 않아 불편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카드 한 장으로 다 해결했는데 말이죠. 그렇게 무거운 두 가방을 들고
일점입혼(一鮎入魂) 40년! 한국 은어 낚시의 대가 ‘한용범’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느니 낚시는 배우지 말거라~” 포항 부근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 많습니다. 4~5월 봄이 되면 기수지역에 어김없이 바다에서 강으로 은어가 올라옵니다. 소상(遡上)이라고 하죠. 이 은어 낚시는 3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이 먼저 하셨어요. 낚시 실력도 친구분들에 비해 월등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일본 야마구치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아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 일본에는 은어 낚시가 대단히 발달해 있었어요. 아버님은 일본 분들과 종종 강으로 나가 낚시를 하시곤 했는데, 저는 점심도시락, 술 등을 자전거에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배달을 해야 했죠. 그때가 중학교 1학년쯤이었는데, 아버님이 식사를 하시는 잠깐 사이 낚싯대를 잡아보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아버님은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느니 낚시는 배우지 말거라~”하셨어요. 물론 나중에는 낚시가 골프로 바뀌긴 했지만요. 본격적으로 낚시에 첫 발을 내딛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군대에 다녀온 후, 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영덕 오십천에서 본격적인 낚시의 첫발을 디뎠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 밥집, ‘강민주의 들밥’ 헉--;;; 내가 이리 칼을 잘 다루다니! 고등학교 가정 실습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달걀지단을 가르쳐 주셨는데, 제가 선생님보다 칼질을 더 잘하는 겁니다. 무채, 당근 채를 신들린 듯 빠르고 고르게 썰어내는데, 저 자신도 놀랄 정도였어요. ‘내가 이리 칼을 잘 다루다니!’ 저희 집안엔 특별히 요리 잘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말이죠.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주말이 되면 도너츠, 빵, 고로케 등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어 인기를 얻기도 했지요. 그리고 20대 아가씨 시절에는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와 오빠, 남동생과 자취를 하면서 식사를 담당해야 했는데, 서점에 가도 패션 잡지보다 요리책에 손이 갔죠. 이상한 것은 음식 하는 게 싫거나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고 재밌더라고요. 얼떨결에 시작한 식당? 경기도 이천에서 살게 되면서 사찰에 들어가 잠시 음식을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음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배우니 아주 재밌더라고요. 저의 음식 솜씨를 보고 스님이 식당 이름, 메뉴 등 가게의 컨셉을 정해주셨죠. 그러면서 얼떨결에 바로 이 자리에서 2000년도에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음식점을 한다는 것은 저와 거리가 먼 세상인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