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봄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째이다. 겨우내 고요하고 잔잔했던 일상들이 3월의 개학과 동시에 “준비, 땅!”을 외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두 녀석의 학교에서 날아오는 각각의 공문들에, 문자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뭐, ‘새 학기의 봄은 이래야 제 맛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유난히 이런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모습에 의아함마저 느낀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후, 이렇게 ‘정상적인 새 학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2023년 신학기는 일상처럼 해 오던 ‘코로나 증상 자가 진단’없이 등교하는 첫 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 습관적으로 핸드폰 앱을 켜고 자신의 몸 상태를 입력했다. 그런데도 작년 3월은 각 학교마다 코로나 확진자들로 넘쳐났고, 이러다가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공포감마저 들었던 달이었다. 그랬던 일상이 정말로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오기 전, 3년 전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휘몰아치는 바이러스의 폭풍우 속에서 언제쯤 마스크를 끼지 않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날이 올까 싶
2022 춘천마라톤, 21.0795km(하프) 첫 출전! 마라톤 출전을 위한 맹연습 더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면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10km를 뛰는 일은 그리 어렵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하프를 뛰어야한다고 생각을 하니 연습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까지 10km이상을 7번 정도 뛰었다. 15km이상은 한 번밖에 뛰지 못한 상태로 출전을 해야 했다. 주변에서는 10km를 뛰는 것도 무리인데 무슨 하프를 뛰느냐고 난리였다. 그래서 하프를 완주만 하겠으니 그리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연습을 할 때도 얼마나 간섭이 많았는지 모른다. “마라톤 하면 살 빠진다더라! 빠질 살도 없는데 무슨 마라톤을 하냐? ”조금 부실한 왼쪽 다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오른쪽 발목에 염증이 생긴 일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병원에 가지 않지만, 마라톤 연습을 계속해야 하니까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도 받았다. 다행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고 몇 번 물리치료를 받고는 금방 회복을 했다. 뛰면서 발과 발목을 다치지 않게 하는 요령도 익히게 되었다. 주변에서 잘 달리라고 신발도 선물로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 준 덕분에 조금씩 용기를 냈다. ‘이 나이에! 완주라도
내 인생의 첫 마라톤 저는 중국 사천성에서 왔고. 올해 31세로 한국에 산지 6년이 넘어갑니다. 워낙 활동적인 성격 탓에 달리기, 자전거 등의 운동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운동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2021년 3월부터 저는 라이딩과 달리기 등의 훈련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때는 20km로 시작해, 40km, 60km로 점차 훈련 거리를 늘렸습니다. 그 결과 2022년 7월, 같이 훈련 한 분들과 함께 산본에서 춘천까지 하루에 90km 라이딩도 했답니다. 라이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바로 달리기 훈련에 돌입! 2022년 10월 23일, 인생의 첫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춘천마라톤에 도전하기까지 처음으로 한국의 ‘행복한동네문화만들기운동’커뮤니티에 참여해 함께 마라톤 훈련을 할 때,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은 저에게 마라톤을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주셨지만, 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에 있을 때 마라톤은 굉장히 어려운 경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대학 다닐 때 처음 들었어요. 대학 친구가 한 백발의 미국인과 함께 마라톤에 참가했다는 이야
물아일체(物我一體)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나의 손꼽히는 필독서다. 주례사 비평으로 상찬이 난무하는 출판계의 관행에 실명 비판으로 용감하게 맞선 책이다. 그 책을 읽다 보면 책을 무작정 읽기보다 나의 주견을 갖고 읽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부지불식간 스며든다. 빌려서 책을 읽더라도 소장할 만한 책이면 주문하여 서가에 고이 꽂아 놓고, 이런저런 모임에서 뜻하지 않게 손에 들어왔지만 별 볼 일 없는 책은 붉은 노끈으로 묶어 재활용장에 내놓게 된 것이 바로 《장정일의 독서일기》덕분이다. 《기후 위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과 《파타고니아》는 2022년에 만난 인생 책이다. 걸어서 출퇴근하고, 고기 없는 식단(도시락)을 하루 한 끼 실천하고, 1년 동안 옷을 사지 말자는 서원을 낸 까닭도 이 두 책에서 기인한다. 자동차, 고기 소비, 비행기가 탄소배출의 가장 큰 원인이란 말과 함께 그렇다고 무작정 녹색만 들어간다고 열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녹색 자본이란 말처럼, 환경을 보호하는 척하면서 장사하기 바쁜 정치가, 기업가도 비판한다. 지구 환경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나 자신부터 행복한 변화가 찾아왔다. 분초를 다투는 출근 시간에 차를 두고 걷
11월호,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를 읽고 ∼ 신문에 대한 내 기억은 스크랩부터다. 여고 때 국어 선생님께서 일주일마다 몇 종류의 신문을 한꺼번에 주시면서 주요 내용을 스크랩하도록 개인숙제(?)를 내 주셨다.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어서 하라고 하시는 걸까?’ 의아해하며 근 1년을 열심히 했다. 한자가 많고 비교해 가며 선정해야 했기에 어렵긴 했지만 사회적인 눈을 뜨고 글쓰기에 대한 안목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 때 학보사 기자에 합격했을 때 참 기뻤다. 면을 나누어 맡고 편집계획을 세워 자료를 찾고 인터뷰도 해서 기사를 쓰고 교정도 하고 인쇄를 하기 위해 서울로 출장을 가고, 뒤풀이를 하면서 술 한 잔도 해보고… 좋은 경험이었다. 신문기자의 꿈은 교사가 되어야 했기에 도전도 못해보고, 그 꿈을 딸에게 걸었지만 그녀 또한 교사의 길을 갔다. 신문은 진실과 정의를 모토로 사회를 비판 개조해 나가며 건전한 문화전파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신문의 가치관은 개인과 사회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언론의 수준은 대중의 신뢰를 얻게 되며,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의 수준과 직결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몇 번의 정권이 바뀌고 사회는 복잡해지며
새벽을 깨웠던 며칠간의 나날 돈을 따라서, 때론 돈과 상관없이 아침 6시에 첫 번째 알람이 울렸다. 아내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핸드폰의 소리를 껐다. 나의 모닝콜은 정확히 30분 뒤에 울릴 예정이라 반 시간의 달콤함을 더 즐기다 눈을 뜰 예정이다. 7시 30분이면 집을 나서는 아내의 출근 전 풍경은 분주하고도 빠듯하다. 아침에 국이라도 하나 끓여놓고 나서는 날이면 시간을 더욱 살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아침을 준비하기도 빠듯할까 싶어 나도 슬그머니 식탁으로 나왔다. 요즘같이 가을 추위가 성큼 다가오는 날엔 해가 짧아지고 날 밝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서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식탁에는 과일이 놓이고 갓 데운 빵과 함께 마실 커피가 올려진다. 순차적으로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서 끓이는 동안 알맹이로 있는 커피를 그라인드에 갈아서 핸드 드립을 준비한다. 서버에 거름종이를 올리고 작은 주전자에 담은 물을 갈린 커피 위에 부으면 커피 빵이 부풀어 오르며 신선하고 상큼한 향을 발산한다. 심호흡하듯 후각으로 커피 향을 빨아들이면 그 원산지인 케냐의 초원이 떠오르기도 하고 과테말라나 인도네시아의 자바가 상상되기도 한다. 계란프라이에 쨈까지 대령을 하면 완벽
나의 집 집의 변화를 떠올려 본다. 과거에는 다세대 주택에서 살다가 25평 아파트로 이사했고 현재는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는 북 카페를 지으려고 고심 중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미래는 가변적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이리저리 궁리 중이다. 5년 전 북 카페 부지를 살 때만 해도 친구 남편이 나의 추진력을 높이 사면서 이런 말을 했단다. “어떻게 억대가 넘는 땅을 사면서 마치 마트에 가서 두부 한 모 사듯 앞뒤 재지 않고 사지?” 믿을 만한 분이 소개한 땅도 아니고, 오다가다 들른 부동산에서 덜컥 땅을 산 나의 행동은 주변에서 보기에 무모해 보일 정도였다. 광릉수목원과 고모리 호수 근처인데다 이곡초등학교도 가깝고 농협, 마트도 가까이 있어서 의정부에 사는 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우선 땅부터 사 놔야 변덕이 죽 끓듯 조석변개하는 나 자신을 눌러 앉힐 수 있겠단 생각도 한몫했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사놓은 땅임에도 북 카페를 짓고자 하는 첫 삽은 쉬이 떠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의 주기를 학령기, 가주기, 임서기, 유랑기로 나눈다면 나는 지금 임서기를 준비 중이다. 유랑이 뼛속에 박힌 성정을 지니고서
삶의 끄트머리마저도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는 요즘 주간 보호 센터에 다니신다. 2남 2녀의 자녀를 둔 시어머니는 전에는 집에서 시누이들의 돌봄을 받으셨다. 그러나 육아에도, 노인 돌봄에도 독박은 안 될 일이다. 각자 가정이 있는 시누이들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어머님을 전담해서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낮에는 어르신들의 유치원 격인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고 휴일 하루는 네 명의 자녀가 당번을 정해 종일 어머님을 돌보기로 했다. 셋째 주 당번인 우리 부부가 이번 주일에 어머님 댁에 갈 차례였다. 전에는 목욕 좀 해드린다고 하면 싫다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흔쾌히 욕실로 들어가신다. 꼿꼿한 자존심을 내려놓은 어머니는 자신을 돌보도록 며느리인 내게도 기회를 주시기 시작한다. 점심 식사도 잘하시고 아들이랑 몇 마디 말씀도 나누시더니 오후 4시부터 또 ‘얼른 가라’노래가 시작되었다. 딸들이 오면 갈까 봐 “언제 와?”하신다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어쨌든 딸보다는 편치 않으신 거다. 그래도 저녁 약 드시는 것까지는 살펴드려야 하니 얼른 떡국을 끓이고 살치살을 구워 저녁을 차려 드렸다. 매달 어머니는 우리를 만나기까지 한 달만큼 늙어가고 있다. 깔끔하고 외모 단장을
미련 보따리 어릴 적부터 내 기억 속 할머니의 집은 지저분한 창고였다. 물건을 못 버리고, 내다 버려진 것들을 거친 손으로 보따리에 양손 한가득 주어 오시는 할머니 때문에 집은 항상 쓸모없는 짐이 가득했고, 제각각의 물건들이 집안을 채워 누가 집의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불필요하게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 낡고 오래된 짐들과 쓰지도 못하고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는 성격에 집안은 항상 난리가 났고 바퀴벌레, 알, 날파리 등 각종 벌레들이 좋아할 아주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집안을 들어설 때부터 풍기는 꼬릿한 냄새부터 앉기도 버겁게 좁은 공간, 유통기한이 지난 상한 음식,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식기들, 겁도 없이 바닥을 기어 댕기는 바퀴벌레들에 잔뜩 긴장하며 집안에 들어서 소파에만 앉아있거나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한 적이 있다. 또한 손녀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음식을 주시는 것을 더럽다고 마다하며 못된 생각을 한 적도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생전 좋아하시던 소주병을 치우며 짐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정리하다 보니 오래되어 다 뜯어진 벽지와 곰팡이가 잔뜩 퍼져있는 욕조, 잡동사니로 가득한 화장실 등 도저히 사람이 살 수
딸의 소리를 찾아서… 목포까지 시나브로 겨울에 들어섰다. 기온은 점점 낮아지고 마리나는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12월부터 2월까지 수도를 잠근다. 배들 위로 눈과 먼지가 엉겨 붙고 날이 더 추워져 1월쯤 한강이 얼어붙으면 언 강을 망치로 깨며 배를 보호하기 위한 선장들의 눈물겨운 겨울살이? 들이 시작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던 한 해였다. 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많은 관객들 앞에서 차분히 취미로 배운 흥보가를 부르는 딸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는 진짜 소리, 옛날 소리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할머니 명창 선생님을 찾아 남도로 유학을 왔다. 똥 삭힌 물을 마시고 온종일 산과 폭포를 찾아다니며 득음을 하시던 시절의 명창 분들은 이제 많이 돌아가셔서, 공력이 있는 옛 소리를 들으며 배울 곳을 찾기 어려웠다. 유튜브와 여러 영상 자료들을 뒤져가며 생존해 계신 많은 명창 분들의 소리를 찾아 들었고 감정과 공력이 좋은 딸아이의 특성을 잘 살려주실 명창 분을 찾아 서울에서 땅 끝 목포까지 유학을 온 것이다. 문화재 할머니 명창 앞에서 도제식으로 배우는 판소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강한 압박을 견뎌야 하는 열 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 곁에서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