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사장에서 퍼스널모빌리티 기술자로 올해 2월부터 의왕에 있는 ‘한국퍼스널모빌리티 정비기술학원’에서 퍼스널모빌리티 정비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2017년부터 학원 교육을 준비 했으나, 여러 행정사항의 어려움때문에 몇몇 인력만 도제식으로 교육하는데 그쳤습니다. 규모를 키우는 것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죠. 현재 강의를 하고 있는 학원도 비슷한 시기에 교육청에 등록해 2019년까지 진행했으나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강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초, 제가 합류하며 교육이 재게 되었고 올해 7월 노동부인증 NCS과정으로 등록되어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한 수강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퍼스널모빌리티는 개인운송수단이란 말로 우리가 접하는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 전동스쿠터 등 전기로 움직이는 모빌리티 중 개인이 이용하는 장치입니다. 최근 친환경 이동수단이 등장하며, 주요 이동수단은 대중교통 및 친환경 물류를 이용하고 이를 이용하기 전, 처음 사용하는 운송수단을 퍼스트마일, 나중에 사용하는 운송수단을 라스트마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퍼스트마일은 원래 물류 업계에서 상품을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간을 뜻하는 단어였으
칠레 화가 ‘리까르도’ 반응 르뽀 11월호에 실린 리까르도 기사, 칠레까지 가다 지난 11월 14일 일요일, 한국에서 도착한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11월호를 들고 화가 리까르도를 만났다. 14면에 8월 어느 날 내가 만난 화가 리까르도에 대해 쓴 글이 실렸고, 이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를 편집장님이 항공편으로 보내주어 일이 성사된 것이다. 이름하야 ‘리까르도의 반응 보기 르뽀’가 이루어진 것인데 나도 몹시 궁금했다. 부인 까르멘(Carmen)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신문을 보면 좋겠다 싶어 까르멘이 동석하길 기다리다가 리까르도에게 먼저 보여주기로 했다. 하필 까르멘이 샤워를 끝낸 후,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바람에 계획을 바꾼 것이다. 나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신문에 대한 반응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까르멘이 교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앞치마 입고 성의를 보이는 바람에 차마 빨리 가야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를 본 그의 반응 먼저 1면 표지를 보더니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예상외의 질문이라 엉겁결에 신사임당 같은 내용이라고 말해주었다. 리까르도와 까르멘이 칠레 TV에서 드라마로 신사임당을 보았는데 무척 감명 깊었었다
[땅을 살려 작물을 거두는 뿌리애농장 이야기] 토양을 강하게 하는 미생물로 먹거리를 살리는 뿌 리 애 농 장 귀농으로 시작된 뿌 리 애 농 장 모든 작물의 기본은 뿌리! 저희는 이 뿌리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뿌리를 사랑하는 농법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뿌리애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뿌리애농장의 시작은 7년 전 창녕군에서 오래 농사지으신 시부모님의 농장에 저희 부부가 귀농하면서부터입니다. 귀농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초기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초반에 내 사업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지 버티기 위한 자본과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청년 농부, 혹은 신규 농업인들은 자신의 자금을 농업 기반 마련하는 것에 투자하기 때문에 매달 들어가는 일정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도 아이 둘과 함께 4인 가족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 처음에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청년 농부와 관련하여 지원 자금이 나오기도 하지만 7년 전에는 농업 분야에 생활을 유지해주는 지원 사업이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규 농업인이 해결해야하는 부분이었죠. 또 농업이라는 것이 한 해 농사를 짓
[따뜻한 농업법인 농바름 스토리] 바른 먹거리, 바른 사람을 키우려는 농업법인 ‘농 바 름’ 강 행 원 대표 고향의 집과 땅을 지키러 다시 돌아오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 2004년경 빚으로 무안 고향집과 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급하게 대출을 받아 집과 땅을 지킬 수 있었죠. 그렇게 마을에 돌아왔을 때는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고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마을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마을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애도 많이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를 시샘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들으며 마음고생을 하다, 마을 사업 일은 그만두고 지금은 2년 전부터 19명의 7가정과 함께 농업법인 ‘농 바 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법인은 기존의 농사지은 분들이 아닌 모두 초짜 귀농하신 분들입니다. 기존에 이미 농사를 지었던 분들은 자기 생각들로 꽉 차 있어 새로운 것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 농사짓는 사람들은 배우면서 농사짓는 것도 힘들지만, 판매처가 없어 고민입니다. 그러니 각자 새로운 꿈을 꾸고 시작은 하지만 막상 시골에 정착하기가 매우 힘들지요. 우리 법인에서는 1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 그리운 세상 유난히 고된 현장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매 주마다 있는 회사 전체 직원회의에 늦을 것 같아, 미리 양해를 구해 놓았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퇴근길 정체가 조금은 짜증스러운 저녁이었죠. 한참 삼거리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서 있던 승용차가 조금씩 후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 옆 차선을 타려고 준비하나 보다 하고 있는데, 이 차가 대체 멈출 기미가 없는 겁니다. 급하게 ‘빵~!’하고 크락션을 울렸지만,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쿵~!’ 후진으로 제가 타고 있는 트럭의 정면을 그대로 박아 버렸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저는 잠시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사고를 낸 앞차의 운전자는 나올 기미도 없이 조용했으니, 혹시 내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있어 차가 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나는 브레이크를 죽어라 밟고 있었고, 앞차의 잘못이 분명한데도 차 속에 여전히 앉아있는 운전자가 괘씸해 문을 열고 고함을 치며 나갔습니다. “도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신호는 바뀌어
북한산 능선 트래킹이 준 선물 저는 본격적인 기억이 남아있는 유치원 시절부터 서울에서 쭉 살아온 서울깍쟁이입니다. 학창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여러번 다녔지만 거의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죠. 그렇게 서울근교에서 30~40년을 살아온 동안, 서울의 서남쪽에 살았던 터라 북한산은 근처에도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게 올 가을 두 번의 북한산 산행은 정말 이때까지 전혀 몰랐던 서울의 매력을 알게 해 준 선물이었습니다. 지난 9월 18일. 바로 전날까지 가을태풍 소식이 있어서 과연 등산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 태풍의 바람덕에 그날의 날씨는 최고좋은 공기 속, 환상적인 하늘아래 북한산 비봉능선을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비봉능선~문수봉의 코스는 초보 등린이도 갈 수 있는 추천 Best코스라고 되어 있었기에 ‘자주 가던 수리산자락 올라가듯 가면 되겠군’하며 첫번째 봉우리인 족두리봉으로 발걸음을 옮겼죠. 하지만! 북한산은 ‘국립공원’이라 차원이 다른 것일까요? 초반부터 커다란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난코스였습니다. 등산화 대신 신고 간 운동화바닥이 그나마 미끄럽지 않았으니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꼭두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주수연의 인생 단상 18]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얼마 전 외할머니가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친정 엄마가 직접 모시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뵐 수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주무시다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지 않으신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니 차가웠습니다.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촉감으로 느낀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죽음’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알았지요.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내와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인지 전혀 모른 채 이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는데, 456억 원을 손에 넣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원초적인 내면에 대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456명이 처음에는 죽을 줄 모르고 게임에 임했지만, 나중에는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여합니다. 허구이긴 하지만 현실에 기반한 이 드라마 속 사람들은 왜 목숨 걸고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 인간의 심리, 비인간적인
그 여자 분은 잘 지내시는지…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집 앞 스터디카페에서 공부하다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섰다.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늘 드나들던 스터디카페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한 번도 잠긴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하는 수 없이 다른 출구로 돌아가는데 젊은 여자가 화단에 앉아 술에 취한 눈빛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나의 또래로 보일 정도로 무척이나 어려 보여 눈에 띄었다. 지나가며 보니 보험회사 가방을 들고 있었다. ‘신입사원인가 보다 저 사람은 무슨 고민이 있어 저러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스터디카페 앞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어쩌다 그쪽을 바라보니 그 사람이 엎어져 있는 거다. 놀란 마음도 잠시, 머릿속에서 엄청난 갈등이 일었다. ‘아~ 피곤한데 이거 어쩌지… 다시 계단을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가봐야 되나? 아니면 못 본 척하고 그냥 집으로 갈까?’ 그러나 늦은 시간이었고 이대로 두었다가는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치겠어서 황급히 계단을 다시 내려가, 횡단보도를 뛰어 그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고, 나도
낯선 산본? 훈훈한 산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여름은 정말 혹독한 시간이었습니다. 더위도 더위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상황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 와중에 산본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저는 부동산 사태로 집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15년 이상 살았던 묵은 짐들을 정리해야 하는 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였지요. 설상가상으로 제가 이사할 산본은 리모델링 아파트로 선정된 곳이 제법 있어 집값은 폭등하고, 전세대란까지 겹쳐 집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살던 곳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기에 이사 가기로 마음을 정하긴 했지만, 날마다 갈팡질팡 했지요. 겨우 집이 나와 계약하려면 법적으로 하자가 있거나 신축된 빌라들은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더 높았으니 참 희한한 일들이 다 있더군요. 아무튼 올해 1월부터 6월 말까지 집을 보러 다니며 힘들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1주일이 멀다하고 딸이 연차를 내어 함께 집을 보러 다녔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저는 이사고 뭐고 잠시 뒤로하고, 1주일 동안 분주한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이 상황을 정리해 보겠다고 스스로 선언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날을 잡아 아침부터
생명의 기쁨, ‘라파엘’ 드디어, 칠레에서 3대를 이루다! 작년 12월 28일 딸 다연이가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손자가 태어나든, 손녀가 태어나든 성별에 상관없이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젊은 시절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둘을 키우면서 느낀 점은 딸 키우기가 아들 키우기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딸의 즐거운 육아생활을 위해서는 손녀이길 바랬는데 손자가 태어난 것이다. 우려와는 달리 태어난 손자 ‘Rafael’은 무척 순하여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 신생아 손자 라파엘은 아빠가 칠레사람이다. 1992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생활을 할 당시 한국교포들의 상당수가 간호사였다. 간호사들의 대부분은 남편이 독일 사람이었는데 한국 출신 간호사들이 신부감 1위라는 말을 들었었다. 이 한국 출신 간호사들이 동생이나 친지를 독일로 불러들여 독일유학을 시켰다고 한다.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분명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본다면 마땅히 훈장을 드려야 할 분들이 파독 간호사이다. 상황은 이러했지만 국제결혼이기에 애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잣대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