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돌솥밥을 만든 42년, 반야 돌솥밥 임복주 명인을 만나다 바람 든 무도 맛있게 조려내는 친정어머니 손맛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 초등학교 시절에는 먹을 게 귀했잖아요. 요새는 설탕이지만 그때는 사카린 넣은 단물로 밀가루를 반죽해 세모 네모 모양을 만들어 검정 솥에 쫘악 깔고 불에 구우면 아주 맛있었어요. 요새로 말하면 비스켓인데, 이걸 만들어 먹다가 혼나기도 많이 했죠. 맛의 고장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나 무엇보다 친정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았어요. 어머니는 바람 든 무 하나라도 맛있게 조려낼 줄 아는 손맛을 가진 분이셨죠. 종종거리며 잔심부름을 하면서 반찬마다 뭐가 들어가야 잡내가 사라지고, 또 뭘 넣지 않아야 풍미가 사는지 자연스레 익히게 되었죠. 이건 글로 배워서 되는 게 아니에요. 평생 삼시 세끼 내 손으로 담아내야 터득되는 것이죠. 친정엄마의 ‘양은냄비 밥’이 아이디어 24살에 결혼한 저는 시댁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내가 나서서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음식 장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식당을 차렸죠. 어떤 메뉴를 할까 고민하다, 지금 내가 제일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어요. 그때
한옥 유진하우스에서 에스토니아인들과 금(金), 금치체험을! “Tere päevast! (테레 파바스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인사말 “어서오세요! 유진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면“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데, 한 번 해볼까요?”했더니, 모두들 서투른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를 제각각의 억양으로 말한다. 그래도 잘 했다고 칭찬을 해 드렸다. 그럼 “에스토니아어로는 어떻게 말하나요?” 물었더니, “Tere päevast! (테레 파바스트!)” 라고 한다. 아이구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인사말이었다. 어슬프게 따라 했더니 다시 발음을 한 번 하신다. 그들의 귀에 거슬리는 발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간단한 인사를 따라하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다. 말을 배우는 것은 단순히 단어 몇 마디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배워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을 온 분들이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져주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우린 김치 안 먹고 살아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인 김치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세계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웨덴에서 온 벤자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벤, 배고프지?” “네, 이모 배고파요! 얼마 동안 잠을 잤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틀 동안 잔 것 같아요.” 깨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실컷 자도록 내버려 두었더니 죽은 듯이 자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편한 침대에서 자니까 잠이 더 잘 온 것 같아요,” 스웨덴에 살고 있는 벤은 남미의 페루 마추피추에 여행을 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여행을 왔다. 남미에서 배낭여행을 했는데, 텐트에서도 자고 가끔 숙소에서 자기는 했지만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를 이모라 부르는 벤은 정작 이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나에게 꼬박 이모라고 살갑게 부른다. 페루의 전통 모자와 차를 선물로 사왔다. 이모라고는 불리지만 멀리 있는 이유도 있고, 다 큰 청년에게 내가 특별히 잘 해 줄 일도 딱히 없어서 그냥 그냥 지내고 있다. 이렇게 이모라 불리니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벤 3년 전에 벤은 한국에서 1여 년 남짓 지냈다. 스웨덴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살았다. 요즘 청년답지 않게 벤은 26살 정도의 나이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