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 한 통화로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자원봉사자 되다 2021년 6월 29일 새벽 2시가 될 무렵, 새벽에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죠. 얼떨결에 받은 스마트폰 너머에 낯이 익은 지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몇 달 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는가?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신문 있잖나. 그간 봉사했던 분이 사정이 생겨 더 이상 못하시는데, 어떤가? 한 달에 한 번 경기도 ‘광명’ 지역 도서관에 비치하는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편집장님이 물어보시네” 전화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간절함이 묻어있었고, 뭐든 신중하게 결정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대답하게 되었죠. “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바로 답변이 끝나자마자 “응 조만간 연락이 올 테니까, 기다리다 전화 오면 잘해 보시게!” 단 몇 분 만에 나는 국제통화로 자원봉사자가 되었고, 그날은 정신없이 곧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봉사할 일을 지구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국제적으로 부탁을 받다 보니, 전화를 기다리는 심정이 마치 면접을 보는 신입사원처럼 은근히 긴장이 되고, 언제 전화가 오나 하며 스마트폰을 평소보다 자주 보게 되더군요. 마침 인사동에서 기다리던
‘이준응’의 새로운 인생 후반전 “75세까지, 태국 싸하쌋 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었으나… 학교 다닐 때 내성적이라 궁금한 게 있어도 선생님들에게 잘 물어보지도 못한 채 소원하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 잘 지내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 친구들은 선생님과 자주 만나 이야기하며 선생님이 조언해 주는 방향으로 진로를 정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 했던 거죠.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 제 꿈은 선생님이 되어 저와 같은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필요한 것을 찾아 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2남 1녀를 키워야하는 상황에서, 장남인 저는 선생님이 되는 것보다 대학졸업 후 빨리 취직하는 것이 더 급했습니다. 포스코 대리점 ‘문배철강’에 첫 취직 그 당시 포항에는 포스코의 대리점격인 한일철강, 동성철강, 문배철강 등이 있었습니다. 포스코에 철판을 주문해 전산망을 통해 판매하는 회사였죠. 취직후 1년 정도를 다녔는데 직장분위기가 너무 거칠고 술, 담배 문화에 도저히 참기 힘들어 저 스스로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소개받은 직장이 바로 ‘공증인가운현합동법률사무소’로, 지금은
수진아!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와 10년 동안 같이 한, 너의 열정에 고맙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4년 즈음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자원 활동가를 찾기 위해 경기도 모 대학에 갔습니다.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조교에게 1학년 학생으로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보내달라고 했죠. 며칠이 안 되어 2명의 여학생이 왔더군요. 한 명은 과대였고, 또 다른 한 명은 과대가 데려온 친구였습니다. 그리 인연이 시작되어 오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학생들은 본인이 하다가 싫으면 그만 둘 수 있기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한 친구는 1년 정도 하다 그만두었고, 과대였던 유수진은 지금까지 단 한 달도 빠지지 않고 편집 디자이너로서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 자원 활동을 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저도 이리 오래 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매월 자원 활동가들을 음악회에 초대하는데, 간혹 수진이를 볼 때면 노랑색, 멋진 그레이 컬러, 녹색 등 여러 색깔로 머리를 염색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MZ세대의 모습을 했는데도 이리 성실히 하는 것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독자들이나 매거진과 관계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