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질감 속에 새긴 깊은 삶의 이야기 - 박수근 전시회를 다녀와서 ▲ 1962년, 하드보드에 유채 59.3x121cm 농악 덕수궁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미술관이 위치한 덕수궁 안에는 얼마전까지 세상을 온통 황홀하게 물들였던 단풍의 끝자락이 남아있어, 고즈넉한 고궁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로 늦가을 고궁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죠. 미술관이 열리기 전까지 고궁을 돌아보며, 때마침 전각과 정원에서 무료로 열리는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의 전시도 둘러보았습니다. 개관시간이 임박하여 고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을 뒤로하고 멋진 나무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미술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궁전 서쪽에 우뚝 솟은 지극히 서양적인 석조건물의 미술관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죠. 사전예약으로 빠르게 입장한 미술관 안은 제법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작품들은 1, 2층에 각각 총 4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밀레를 사랑한 소년’,
화가 리까르도와의 만남, 그림의 고정관념 알에서 깨어나다 그네 타는 후안. 1992. 유화(100x100cm) 지난 8월의 어느 날, 친구이자 화가 Ricardo를 만났다. 리까르도가 그린 그림을 내가 ‘Dibujo’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며 ‘Pintura’라고 말해야 한다고 여러 번 교정시켜주었다. 그러니까 ‘삔뚜라’는 그림(페인팅, 회화)이고 ‘디부호’는 데생(드로잉, 소묘)이라는거다. 도화지나 천에 선으로 그린 그림이나 수채화 물감,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나는 그동안 ‘Dibujo’(데생)라고 부른 셈이었으니, 교양 떨어지는 인간이 되고만 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화가 리까르도는 단호하면서도 끈질기게 자기가 그린 유화들을 내가 ‘디부호’라고 지칭할 때 마다 ‘삔뚜라’라고 부르라며 집요하게 교정시켜주었다는 얘기다. 까다롭게 군다고 빈정 상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니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전문가나 예술가를 친구로 두려면 적절한 교양을 갖추지 않고서는 관계유지가 되질 않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물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한번 있었다. 사진가 박진호씨를 다큐멘터리사진가로 지칭한 적이 있었는데 순수사진예술가라고 불러야 한다고 분명하게
지금 한번 우리 주변을 둘러볼까요? 정신분석자 융은 “예술이란 상징이다. 작가가 경험하는 것, 지각하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상징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술가는 자신이 가지는 감정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대신할 매개체를 찾곤 하죠. 그림으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강의를 하는 저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나만의 그림’을 그리면서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하게 되고 오랜 시간 투자하는 고민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입니다. 다양한 소재를 생각해 보지만 결국 제가 선택하는 것은 꽃과 식물 등 자연물입니다. 자연물을 주로 그리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당연시하고 소홀하게 대했습니다. 대신 제게 없거나 타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부러워하면서 괴로움이란 감정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꽃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면서 꽃잎 한 장 한 장을 관찰하게 되고 각각의 꽃잎이 가지는 다름이 모여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저도 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클로드 모네’ 열 개의 별 매일 아침 SNS에서 ‘과거의 오늘’ 알람이 뜬다. 과거의 나는 터키, 스페인,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홍콩, 마닐라, 제주에 있었다. 횡으로는 불가능한 동선이 종으로는 하루에 가능하다. 놀라운 축지법이다. 오십삼 년 동안 반복했던 ‘과거의 오늘’을 모아 글을 써도 한 편의 여행기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도 매한가지다. 그 순례작만 모아도 내 마음에 열 개의 별이 뜬다. ‘그림자에도 빛이 있음’을 보여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를 사랑하여 오르세 미술관 5층에 자리 잡은 그의 그림을 보려고 넓은 역사를 헤맸던 17년 전이 떠오른다. 가쁜 숨을 내쉬며 그림 앞에 섰을 때, 빛이 쏟아져 나왔던 순간. UFO에서 지상에 빛을 쪼이듯 빛의 물살 세례가 퍼부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다. 모네의 그림은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꼭 한두 점씩 전시되어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인연이 우리를 엮어주는 기분이다. 내 눈에는 늘 그의 그림이 들어온다. 다작의 작가인데다 명성이 높아서임을 감안한다 해도 나의 미술관 순례에는 언제나 그가 동행했다. 볼로뉴 숲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정원
“나도 건물 그려보고 싶다!!” 그림을 배우다 보면 다양한 소재를 그려보게 됩니다. 그 중 그림을 포기할까 하게 만든 것이 바로 건물이었습니다. 공간 지각력이 부족한 편이라 주차를 배울 때도 애를 먹었던 사람이기에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건물의 두께, 거리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결국 두세 번 정도 건물을 그리고 실망하는 마음에 더 이상 그리지 않았습니다. 몇 시간 동안 힘겹게 그린 그림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저의 부족함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노력하는 동안 행복하지 않은 작업을 피해버리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대신 자연물을 계속 그렸습니다. 두 번의 작은 전시회를 열면서 저는 두 번 모두 꽃과 나비 등 자연물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워낙 꽃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 편안한 마음이 드는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모란을 그리면서도 유럽의 웅장한 건물 그림을 슬쩍슬쩍 쳐다보며 마음 한구석에 남는 미련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포기했던 건물 그림에 대한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마카 드로잉’을 시작한지 4년. 계속된 미련과 아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음에 들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2] 우리 같이 낙서해요~~ 학창 시절 교과서에 했던 낙서들 기억하시나요? 동그라미, 네모에 색을 채우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정교해지는 낙서의 퀄리티. 교과서 속 인물들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주고, 말풍선을 만들어 글을 적으며 친구와 키득키득 숨죽여 웃었던 기억. 때론 치열해보일 정도로 낙서에 집중을 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혹시 내가 그림 천재는 아닐까?’ 의심되는 훌륭한 작품들이 나와 자랑하고 돌려보는 일도 있었지요. 우리는 언제 낙서를 하게 될까요? 꼭‘낙서를 해야지!’라고 마음먹지 않아도 그저 손에 잡힌 펜과 종이가 있으면 무심코 끼적끼적 그림을 이어가기도 하고, 전화를 받는 동안 상대방이 말한 단어를 의미 없이 반복해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채워지는 여백에 마음도 같이 채워지는 것 같아 더 열심히 손을 움직였던 것도 같습니다. ‘그림을 그려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그림을 못 그린다고 손사래를 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아마도 우리가 미술 시간에 배웠던 비율, 빛과 어둠의 표현, 구도와 자세, 소실점 등의 기법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그림에 대한 흥미를 부담감으로 바꾸어 놓았을지도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6] 공간이 주는 힘 10여 년 전 사랑하던 사람과 갑작스럽게 헤어졌습니다. 자의였지만 상황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이별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원망해야만 할 것 같았고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소식은 정말 빠르게 퍼지는 것 같습니다. 위로 문자와 전화가 빗발쳤지만 모두 피했습니다. 그때는 그것들이 위로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불행과 슬픔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이다는 비뚤어진 판단이 제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저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습니다.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티켓만 구매해 계획 없이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인데 이상하게 오전 4시만 되면 눈이 떠졌고 뜨는 해를 보며 제주 올레길 하나 하나를 완주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20대 때 유럽여행을 하면서 발에 물집이 터졌던 그때처럼 발 상태가 엉망이 되었지만, 생각 없이 무작정 걸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고파지더군요. 그럼 눈에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제주의 바다를 바라보았습니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5] 반성하되 자책하지 말기!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이번에도 실패 하겠지.” “안될 거야. 난 부족하니까.” 어떤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까지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던 말들입니다. ‘프로 자책러’ 과거의 저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죠. 자책은 얼른 보기에는 반성과 닮아있지만, 그 본질은 조금 다릅니다. 반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이고, 자책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깊이 뉘우치고 자신을 책망함’입니다. 나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 스스로 깊이 뉘우치는 것은 호전적이지만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책망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죠. 그래서 우리는 실수나 실패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은 지향하지만 지나친 자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합니다. 작거나 큰 실수, 모든 나의 선택에 있어 자책투성이였던 그 시기, 누군가가 저를 탓하지 않아도 저는 저의 행동 하나하나 곱씹고 비난하고 책망했습니다. 처음 대학 강의를 했을 때입니다. 학기 말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받고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30분을 펑펑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