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하나님 김정임 봄 하나님은 바쁘시다 추운 땅 밑에 불 지피시고 연인들이 선 자리마다 꽃망울 터뜨리시고 사람들의 눈이 닿는 먼 산머리마다 가지런히 이발도 하신다 아이들을 위해 하늘에 솜사탕도 만들어 놓고
겨울 까치 황의수 앙상한 가지 위 까치 한 마리 머물러 바람의 속삭임 들으며 겨울의 고요를 새긴다. 희뿌연 하늘 끝자락, 눈송이 기다리며 차가운 침묵 속에서 작은 생명, 꿈을 잉태하네.
[시로 성품개발을! 1-1 사랑] 은 영 세 탁 소 아이들은 나를 ‘은영세탁소’ 라고 부른다 이젠 괜찮지만 그래 괜찮지만 내 이름을 간판에 걸고 일해 오신 아버지처럼 나도 정말 남들을 깨끗하게 빨아 주고 남들의 구겨진 곳 곧게 펴 주고 싶다 아버지의 주름살을 제일 먼저 펴 드리고 싶다. - 남 호 섭 (1962- ) - 엄마들은 나를 ‘세탁소집 딸’ 그저 평범하게, 그리고 아이들은 그냥 ‘은영세탁소’라고 약간 조롱을 섞어 부른다. 처음에는 속이 상했고 싫었다. 그저 그런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나도 그저 그런 사람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제는 괜찮다. 생각을 바꾸니 말이다. 어떻게? 아버지의 일이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빠는 기쁨은 빨래를 해본 사람은 안다. 나도 커서 다른 사람들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그 마음의 구겨진 것을 펴는 일을 한다면 그런 기쁨을 얻겠지. 그러면 나는 ‘그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그 딸’이 되겠지. 그런데 자세히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웬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제일 먼저 다림질해서 펴드리고 싶은 것은 깊어지는 아버지의 주름살로
[시로 성품개발을! 1-16 감사(하는 삶)] 휴 지 통 교실 뒤 구석 자리에 산모롱이 곳집처럼 앉아 있는 휴지통 우종이 연필깍지도 받아 넣고 남숙이 낙서쪽지도 받아 넣고 수길이의 주전부리 사탕 껍데기도 받아 넣고 늘 주위를 깨끗이 해주는 숨은 봉사자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아도 묵묵히 남을 돕는 휴지통 없어서는 안될 큰 그릇이지만 뒤쪽 구석자리에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앉아 있다. - 엄 기 원 - 쓰레기통은 높은 교탁과 달리 교실 안에서 아주 낮은 지위라서 한쪽 구석에 던져져 있다. 교탁은 선생님이 앉아서 가르치는 곳이며 모든 아이들의 눈이 집중하는 곳이다. 이것이 없으면 교실이랄 수 없다. 못난이처럼 교실모퉁이에 조용히 있는 쓰레기통은 학교에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교탁이 없어도 선생님은 잘도 가르치신다. 아이들 사이에 왔다 갔다 하시면서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훨씬 좋을 때가 많다. 그러나 쓰레기통은 필요할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교실이 온통 쓰레기통이 되니, 가르침의 현장인 학교에서 교탁과 쓰레기통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세상의 쓰레기통 같은 역할을 하는 모든 분들(지금은 환
[시로 성품개발을! 1-15 고독] 돌아오는 길 비비새가 혼자서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멀리 떨어진, 논벌로 지나간 전봇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걸어오다 뒤돌아봐도, 그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 박 두 진 - 내가 고독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비비새에 주목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보니 저 비비새는 늘 혼자네. 마을과 숲에서 뿐 아니라, 전봇줄 위에서도. 내 가는 길 가려고 눈을 돌렸다가도 혼자 있는 새가 안쓰러워 한참을 가다가 돌아보니 또 여전히 혼자네, 나처럼. 나의 동무같네. 아니 비비새는 나로구나.
[시로 성품개발을! 1-14 단순한 삶] 웃는 기와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주면 천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 이 봉 직 (1965-) - 이 동시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신라의 웃는 얼굴 무늬 수막새를 보고 쓴 것이다. 웃는 얼굴 무늬의 기와를 얹어 집을 짓고 산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웃음이 그칠 날 없었을 것이다. 웃는 기와는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이 가고 깨졌어도 웃음은 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웃음은 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들에게 여전히 초승달 같은 웃음을 보여준다. 웃는 기와는 천 년의 미소인 셈이다. 웃음은 얼굴이 깨어지고 금이 가도 천년을 간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웃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웃음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초승달 같은 웃음일 것이다.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보일 듯 말 듯 웃는 웃음은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도 웃어주자. 자신에게, 그리고
[시로 성품개발을! 1-13 죽음(을 대비하는 삶)] 저 녁 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 광 섭 - 시인이 고혈압으로 쓰러진 가운데 쓴 작품집인 [성북동 비둘기]에 실린, 삶과 죽음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이다. 그의 삶 속에서는 별과의 유별난 하나됨을 경험한다. 너는 그 많은 중에 나를, 나는 그 많은 별들 중에 너를 집중한다는 사실에서. 그러나 죽음에 이르면 처지가 너무나 달라진다. 별들의 죽음과 같은 날이 밝아오는 속에 사라지지만 나는 잘 알 수 없는 어두움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을 주고받았던 너와 나는 나의 이생 이후의 삶에서 어디서 어떤 존재로 만날까 궁금해 지는 시인이다.
[시로 성품개발을! 1-12 근면] 나 무 는 봄비 맞고 새순 트고 여름비 맞고 몸집 크고 가을비 맞고 생각에 잠긴다. 나무는 나처럼. - 이 창 건 - 나무와 인생인 나의 사계절은 모두 가치가 있다. 봄여름가을은 이렇게 싻이 돋고 자라고 열매맺음으로 의미를 맺는다. 나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이렇게 빼어 닮을 수 있을까? 봄여름가을에 내리는 비는 그 의미를 재촉하여 드디어 결실에 이른다. 나무의 결실과 나의 깊은 생각은 동일한 열매이다.. 이제 마지막 계절인 겨울의 나무는 어떨까? 이 계절의 나무는 그 다음 해를 대비하며 뾰쪽 하늘로 솓구친 순이 대변한다. 내년은 더욱 클 것이라고! 바로 이 새까만 순 위에 내리는 것은 비를 대신하는 눈이다. 가끔 얼기도 하여 괴롭히지만 겨울에도 필요한 습기를 공급해준다. 그런데 내 인생의 겨울은 어떨까? 죽음 이후에 아무 것도 없어서, 새까맣거나 무의미할까? 그러면 나무에게조차 있는 새 순은, 고귀한 인생된 나에게는 없는 것일까? 그래서 늙어서 탑골공원에만 들락거리거나 심지어 함부로 살아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고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차원의 삶이 새순처럼 있다면, 아마 삶은 전혀 새롭고 놀랍게도 영원하며 그 가치는 무한
[시로 성품개발을! 시리즈 1-11 고통(을 견디는 삶)] 못 못은 망치에 얻어맞는다. 고통을 이겨내며 벽에 조금씩 박힌다. 그때 비로소 못은 힘을 갖는다. 무거운 액자와 시계를 거뜬히 든다. - 김 숙 분 - 못과 망치는 늘 같이 한몸처럼 다닌다. 못의 관점에서는 망치는 몹쓸 놈처럼 보인다. 늘 자기를 때리니까. 하지만 망치질이 안되고 덩그러니 못통에 놓여있는 못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망치질을 통하여 나는 승화되고 단단하게 벽에 고정되며 드디어 완성된다. 무엇으로! 어떤 것이든지 견고하게 하고 들고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나의 살과 뼈를 때리는 망치는 어떤 면에서 고마운 도구같은 존재다. 나를 그 목적에 드디어 도달하게 하는 수단이 되니. 이쯤 되면 망치가 오히려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하지만 안심하라. 망치도 나를 벽에 고정시킴으로 자기의 사명을 다했으니. 악인의 역할과 사명은 항상 거기까지이며, 선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된다.
[시로 성품개발을! 1-10 절제] 구 공 탄 조심조심 양손에 구공탄 들고 허리도 못펴고 살금살금 걷는다 따라오던 동생이 또 한 번 건드리자 화는 나도 구공탄은 사알짝 내려놓고 도망가는 동생을 오빠는 쫓아간다 바람 찬 저녁길에 구공탄 두 개 - 박 홍 근 (1919-2006) - 겨울이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첩처럼 ‘구공탄’ 이라는 동시를 꺼내 읽는다. 이 동시를 읽으면 구공탄의 불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때 우리 서민들의 겨울 벗이었던 구공탄은 아련한 추억의 땔감이다. 겨울이 시작되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고 구공탄이라 불리던 연탄을 들여다 쌓아놓았다. 양손에 구공탄을 들고 행여 깨질세라 허리도 못 펴고 살금살금 걷는 아이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뒤따라오던 동생이 무슨 심술이 났는지 건드리자 화는 나도 구공탄이 깨질까 봐 사알짝 내려놓고 동생을 쫒아 가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스럽다. 내 동심의 추억 속에 바람찬 저녁 길에 구공탄 두 개가 아직도 남아 있어 겨울이 춥지 않다. - 이준관 (아동문학가) - * 구공탄 : 9개의 구멍을 내어 만든 (무)연탄이라는 의미로, 실제는 더 많은 구멍을 가질 경우가 많았다. 1960-70년대의 한국의 각 가정에서 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