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남기는 무게감 삶의 기한 장인어른의 소천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일손을 중단했다. 나는 현재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봉사단원의 신분으로 있으니 특수한 상황을 적용받아서 한국에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내의 음성은 슬픔으로 떨렸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하는 때란 걸 직감하게 만들었다. 월요일쯤에 주치의의 소견서를 받아서 약간의 절차를 밟고 토요일에 출발하는 비행 편을 예약했다. 일주일 안에 심장의 작동이 멈출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그간 심장박동기의 도움을 받아서 팔십 중반을 넘기신 것도 운이라면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소견으로 인해 자녀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자식과 사위, 손주며느리까지 속속 입국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삶이 마무리되는 시간의 자리엔 묵직한 진중함이 흐르고 세상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잔잔한 애도가 깃드는 듯하다. 아직 학기 중이지만 기꺼이 잘 다녀오라고 위로하는 교장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이 있다. 내게 주어진 2주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모든 일이 조화롭고 순적하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오후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구 반대편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1
한국을 향한 인도 라비의 거위의 꿈 2018년 가을, 나의 결심 ‘한국에서 살아야지!’ 안녕하세요! 저는 인도에서 온 ‘라비’입니다. 한국살이 3년차입니다. 2013년 어느 날, 친구가 인도 채널에서 타밀어(타밀어는 제 모국어인 남인도어)로 더빙되어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 <상속자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많이 보기 시작했고, 한국의 문화와 그림 같은 아름다운 자연환경, 군침 도는 음식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드디어 2018년 가을, 2주 동안 휴가를 내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그때 결심했어요. ‘한국에서 살아야지!’라고 말이죠. 그리고 3년 뒤, 2021년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전공한 컴퓨터 과학 분야가 매우 발달한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대학원을 가기 위해 준비를 했어요. 한국은 공부하기를 원하는 외국인들에게 KGSP, ASEAN, 한국기업장학금(대웅, 삼성 등), 대학 장학금 등 다양한 장학제도가 있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인도에서 알았던 한국, 직접 와서 경험하며 내가 느낀 다섯 가지 차이 인도에서 있을 땐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는
“ 당신, 전공이 무엇이오? ” 가끔 40년 교직 후 정년퇴직했다고 말하면 무슨 과목 선생이냐 묻는다. “당신 전공이 무엇이오?” 하고 묻거나 “무슨 과목 가르쳤나요?” 라고 물으면 즉답하기가 망설여진다. 국어, 영어, 수학도 아닌 그렇다고 음악, 미술도 아닌 터라 말하기가 무척 애매하다. “무슨 과목 선생처럼 보이냐?”고 되물으면 그 답 또한 다양하다. 세 과목을 가르쳤으니… 학생들에게 가정과목과 컴퓨터수업을 15년씩 30년을 하던 중 내 의지와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2008년부터 퇴직 전까지 나의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직업과 진로’라는 과목을 10년 가르쳤으니 즉답하기 어려울 수밖에. 내가 직업과 진로라는 과목을 가르치게 된 사연의 시작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이건 내 의지와 달리 위에서 하라고 하니 평교사는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직업과 진로수업을 시작했다. 당시 교내에는 진로 상담교사(부장급)를 하겠다고 진로 연수를 받은 교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더러 진로 수업을 하라니 당황할 수밖에… 진로라는 과목은 출제나 시험이 없이 ‘수우미양가’의 평가가 아닌 ‘이수 & 미이수’의 선택만 있는 과목이다. 관리자의 최후통첩은 30년 경력 교사
오토바이 타는 여자 나의 첫 책 《안녕, 나의 한옥집》에서 엄마에 대한 부분을 쓸 때 그 장 제목에 대해 고민을 했다. 엄마를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 어떤 이미지가 좋을까. 엄마는 젊은 시절 시를 썼으니까 ‘시를 쓰는 여자’ 어떨까? 아, 너무 평범하다. 한옥집에서 세 딸을 키우고 시부모와 남편을 봉양하며 가정 선생님으로 학교 일까지 야무지게 해냈던‘24시간이 모자라’의 엄마.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그러다 내 글 중에서 찾아낸 구절이‘오토바이를 타는’그녀였다. 24시간이 모자라던 그녀의 발이 되어준 소중한 오토바이. 엄마는 자그마한 키와 몸집, 강아지 털 같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오토바이에 잘 어울리는 가죽재킷 대신 직접 만든 하얀 원피스와 스카프를 두르고, 역시 직접 만들어 준 포플린 원피스를 입은 세 딸을 싣고 그녀는 공주 시내를 달렸다. 그녀는 천상 ‘오토바이 타는 여자’였다. 그렇게 나는 첫 책 중 어머니에 관한 그 장의 제목을 찾았고, 그것은 몇 달 전 출간된 나의 두 번째 책의 제목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지어놓고는 나 스스로 몇 번이나 감탄을 하고 만족을 했다.《오토바이 타는 여자》라니 얼마나 멋진 제목인
‘대지’원서 읽기를 끝내고 3년 전 단둘이 같은 교무실을 공유한 인연으로 알게 된 국어 선생님과 1년에 걸쳐《대지》원서 읽기를 끝냈다. 우리는 하루에 한 페이지씩 같이 읽기로 했다. 먼저 전화를 건다. 소리 내어 영어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말로 해석도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은 없기로 했다. 명절이나 여행을 가서 못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그런 날이 예상되면 그 전에 미리 두 페이지씩 읽기도 했다. 책 선정은 그렇게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영어 원어로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았고 어떤 책도 다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만났다. 마지막 페이지는 얼굴을 보고 같이 읽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행복했다. 국어 선생님은 자주 나에게 고맙다고 하신다. 내가 아무래도 영어 전공자라 문장의 해석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설명을 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아니라고. 고마운 건 나라고, 책을 같이 읽으며 너무 행복하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그러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생각해 보았다. 학교 수업과 가정 살림 및 육아에 바쁜 일상을 쪼개고 쪼개 전화를 드는 하루 20분이 왜 그렇게 한결같이 일 년 동안 행복했었는지를
책 거 리 가르치고 배우는 자! 쫓고 쫓기는 자? 아닙니다. 아름답게 배우며 가르치는 자의 모습이 있기에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당연 선생님과 학생이냐고요? 아니죠! 둘 다 선생님이고요. 같다면 언어를 가르치는 분들이죠. 국어와 영어! 그런데 이 두 분이 어떻게 영어로 된 ‘대지’원서를 365일 읽었는지, 매일 20분을 통해 서로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의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같이 싣게 되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더 미약하리라.’ 새로운 영어책을 고를 때마다 나를 움츠리게 하는 말이다. ‘개꼬리 3년 묻어 소꼬리 안 된다’는 말처럼 영어 공부에 관심을 기울인 지 수 년이 흘렀어도 나의 영어 실력은 일천하다. 배낭 여행지에서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싶어 시작한 전화영어, 화상영어는 문법이 파괴된 돌고래식 문장이었다. 언감생심 유머를 섞어 말하는 그들만의 화법을 이해할 수 없어서 소외되길 반복하다가 아웃사이더의 심정이 이런 거구나! 자조 속에 자주 빠졌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3년 전 별실에서 영어 선생님과 단둘이 근무하는 기회를 얻었다. 선생님은〈결혼이야기〉시나리오를 출력해 오더니 매일 한 쪽씩 외워보자고 한다.
[신간 소개와 비평] [아비투스]와 [엑설런스]의 저자 도리스 메르틴에 대한 비평 그녀의 근거인 부르디외, 다시 그 부르디외의 근거인 막스 베버, 그리고 인간의 세 욕망과 그 목적인 ‘삶의 의미’ (3) 서구문화(명)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동양인들의 어려움 서구사회와 서구문화(명), 동양사회와 동양문화(명)의 차이는 전자는 연속적이었지만 후자는 불연속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서구문화(명)는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채 2500년을 이어왔다면, 동양문화(명)는 서구의 팽창기인 18~20세기 동안에 결정적으로 꺾여서 갑자기 그것을 버리고 삶의 모든 차원에서 서구화되어갔으며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내가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문화(명)를 세웠다가 다 포기하고 서양문화(명)를 받아들이고 살고 있는지를 질문하지도 않고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한 민족에 속했던 한 사람들이 이민을 가서 가장 크게 고통을 겪는 문제가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롭게 세우기 위해서 첫 세대와 둘째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최소한 3세대에 필요한 것임이 이제는 자명해져갑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와 문화(명) 전체, 그것도 아
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기록의 힘! 사 회 일 지 여행으로 가득한 20대를 살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며 서른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며 살겠다 다짐했습니다. 문예창작과를 재학하던 2015년에는 취업률이 낮은 예체능 계열 학과를 통폐합하던 시기였기에 우리 학과장님도 폐과를 막기 위해 총장실을 몇 번씩 오가곤 했죠. 친구들과 함께 건국대학교 학과 통폐합 반대 시위에 다녀오기도 하며 현실이 서럽던 날들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좋은 직업은 사회가 원하는 것이었으나 유명 연설이나 기업가들의 강의에서는 늘 ‘20대에 도전하라.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으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고, 이 모순 속에 갈등하던 저는 출판사, 방송사 취업 대신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방황이 아닌 도전으로 남고 싶었어요! 20대. 아직 책임져야 할 것이 내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을 때, 보다 자유롭게 하고싶은 일을 다 해보며 무너지고 실수하고 혹은 그 모험이 틀렸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무작정 요리를 배우고 자격증을 하나씩 따다가 한 삼촌을 만났죠. 50개가 넘는 자격증을 가지고 책을 하루에 1권씩 읽는다는 말을 듣고, 어쩌면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룬
2022년 춘천국제마라톤에 도전!15명 풍경을 담다! 3년만의 화려한 외출! 산등선을 신비하게 물들이는 아침 해의 인사를 받으며 춘천으로 향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바로 2022년 춘천국제마라톤대회(이하 ‘춘마’)가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임에도 고속도로에 가득한 차들과 휴게소 곳곳에서 만나는 마라톤 복을 입은 사람들로 벌써부터 춘마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죠. 초등학생부터 70세가 다 된 분에 이르기까지 15명의 참여자들 중에는 이미 풀코스를 2회 이상 뛴 분부터 시작해, 처음 대회에 참여하는 새내기들도 여럿 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게 뛰지 못하는 2명의 멤버도 물품 조달과 사진촬영 등으로 도움을 주었지요. 오래전부터 꾸준히 달리기훈련을 해왔던 저희 <행복한동네문화만들기운동> 식구들은 2014년을 시작으로 ‘춘마’에 도전해 많은 맴버들이 42.195km를 완주하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지요. 코로나 팬더믹으로 공식적인 마라톤대회가 없었던 기간 동안도 우리는 봄, 가을 일 년에 두 번은 하프마라톤을 뛰는 것을 목표로 달리기 훈련을 해왔습니다. 달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세우고 꾸준하게 이루어가는
40대‘신입’의 좌충우돌 직장적응 필살기 얼마 전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에 ‘취업 필살기’를 썼었는데, 지금은 그런 때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직장에서 좌충우돌하며 4개월째 ‘직장적응 필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 하던 중국어 교육, 중국어 통번역과 전혀 다른 성격의 무역회사에서 44세의 나이로 취업을 하여 직장초년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저를 ‘신삥’이라고 부른답니다. 이곳에서 30대 직장 동료에게 “시간 날 때 엑셀 좀 배우세요.”라는 말을 듣지만, 서러워 할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무조건 해내야 합니다. 면접을 볼 때, 비록 무역의 실무 경험은 없지만, 통번역을 하며, 새로운 영역의 내용을 빠르게 익히는 것을 훈련했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당당히 입사를 했습니다. ‘내 이름은 올드 신삥’ 큰소리는 쳤지만 신삥은 신삥이었답니다. 통역을 하며 무역용어를 띄엄띄엄 접하긴 했지만, 실무는 해본 적이 없어, 수입절차, 예를 들면 여러 검역절차, 세관절차, 각 국가의 선박해운마다 조금씩 다른 절차 등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번 들었던 내용을 다시 물어보게 될까 노트에 절차를 하나하나 자세히 적어가며 익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