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해치 2023년 광화문 앞 월대가 새로 놓이면서 광화문 앞 동물도 2마리에서 6마리로 늘어났습니다. 2마리는 예전부터 광화문 앞을 지키고 있던 늠름한 두 마리의 ‘해치’입니다. 해치는 ‘해태’라고도 하는데 상상 속의 동물로 선악을 구분하는 동물입니다. 머리에 난 뿔로 악한 자를 들이받거나 사나운 이빨로 악한 자를 물어뜯는다고 합니다. 특히 광화문의 해치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아내는 특별한 임무도 부여받았습니다. 광화문 앞 월대는 세종이 반대한 이후 설치되지 않았다가,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때 불탄 광화문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월대도 같이 지었다고 합니다. 일제 때 광화문 앞으로 전철이 놓이면서 월대도 훼철되어 이번에 복원한 것이죠. 월대에는 난간석이 둘러쳐 있었고 임금이 다니는 중앙계단 옆에 동물이 장식된 등석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월대에서 사라진 난간석과 등석의 일부가 발견되었습니다. 동구릉에 난간석의 일부와 입 벌린 용이 조각된 용등석(용두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등석의 앞부분에 해당되는 해치(?)등석이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전시실에 놓여 있습니다. 복원된 월대를 보면 원래 월대에 있었던 돌과 새로 만든 돌이 뒤섞여 있는 걸 쉽게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1] 광화문과 흥례문의 숨기고 싶은 비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교화의 빛이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교화(敎化)의 ‘교(敎)’는 물론 유교를 말한다. 유교 성리학을 이념으로 내세워 건국한 조선이란 나라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경복궁이란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고 광화문이란 이름은 세종 때 지어졌다. 경복은 ‘큰 복’이란 뜻이다. 광화문을 지나 만나는 문이 흥례문이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이 나오고 그 안을 들어가면 경복궁을 대표하는 건물인 근정전이 나타난다. 흥례문은 잘 모르는 문이지만 광화문 못지않게 웅장한 문이다. 우리가 경복궁에 들어갈 때 표를 내고 들어가는 문이다. 흥례문도 유교 국가에 어울리는 문 이름이다. 예를 흥하게 한다는 뜻이다. 유교에서 내세우는 덕목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이 있는데 이를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에 빗대기도 한다. 동은 인(仁), 서는 의(義), 남은 예(禮), 북은 지(智), 중앙은 신(信)이다. 그래서 도성의 동쪽 문이 흥인지문이 되고 경복궁의 두 번째 남쪽 문은 흥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탈 때 광화문과 흥례문도 운명을 같이 했다. 불탄 경복궁은 몇
박준범의 종횡무진 고고(古考)한 이야기(1) ▲ 육조거리-1914년 경성부명세신지도 서울 광화문광장 조성거리 터파기 공사, 내 눈에 조선이 들어오다 서울은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담은 도시이다. 흔히 서울의 역사를 말할 때 한성백제부터 생각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이 도시에 사람들이 처음 살았던 연유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찾아 다녔던 유적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먼저 시대를 아주 내려와서 조선의 한양 육조거리 발굴 얘기부터 하겠다. 최근 서울시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을 위해 2019년 1월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2021년 5월에 완료한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주변의 터에서 조선시대 육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터(삼군부,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와 관련시설 등이 발굴조사를 통해 새로이 확인되었다. 이는 문헌의 기록을 고고학이 증명한 아주 중요한 사례로 서울 고고학 연구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조사를 토대로 조선시대 육조거리 시간의 변화상을 쌓인 지층을 통해 살필 수 있었고, 이 토층을 기준으로 주변 유적을 조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