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날에 훌쩍 자란 딸아이가 아빠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녀 사이로 오월의 훈풍이 날아들고, 벚꽃 잎이 눈부시게 흩날린다. 봄기운이 깃든 푸른 잔디 위를 사붓사붓 거닐며 나는 그의 환영을 따라간다. 생기 넘치던 젊은 날을 보내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 나의 아빠를…. 아빠는 따뜻한 사람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가꿀 줄 아는 분이다. 시들시들하던 화초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활력을 되찾고 푸른 잎을 틔웠다.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던 것과 이끼 하나 없는 깨끗한 어항에서 물고기가 힘차게 헤엄쳐 다니며 종족수를 늘려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보살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강아지는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 흔들며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빠에게 제대로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식물도, 동물도 전심을 다 해 돌보는 아빠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극진했을지 지금에 와서야 헤아려 보게 된다. 아빠는 두 딸이 자라는 내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은
아내를 보내며 옆자리가 허전하여 아내를 확인할 량으로 오른손을 뻗었는데 아내가 없었다. 머리를 들어보니 아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색씨! 위험하게 뭐하는 거야. 화장실 가려면 꼭 나를 깨우라고 그랬잖아!”…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올해 5월 27일 토요일 이른 아침 6시 30분에 아내가 죽어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건 아니잖아~!!!…” 나는 절규했다. 살려보겠다고 코에 기운을 불어 넣어보기도 하고 몸으로 할 수 있는 별의별 몸동작으로 아내를 어루만졌다. 나는 그야말로 지랄발광 상태가 되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그녀, ‘이성표’ 한국 나이로 겨우 육십을 채우고 간 아내 이성표는 1964년 말미에 태어났다. 평택에 사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맏손녀가 너무 귀엽다고 두 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맡아 기르셨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결국 할머니가 혼자 도맡아 키우셨다. 할머니가 엄마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단편소설《소나기》를 쓴 황순원을 존경하여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경희대 국문학과에 들어갔다.(실력으로는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연탄가스를 맡은 바람에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어서 점수가 낮게 나와 경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