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한옥집’ 임수진 작가를 만나다 공주 한옥에 살았던 소중한 기억들, 구슬로 엮어 책으로! 공주에서 자란 저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접하며 이문구의《관촌수필》, 이미륵의《압록강은 흐른다》등의 소설들을 읽으면 항상 제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이것 못지않게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어린 시절을 담은 소설들《작은아씨들》과《빨간 머리 앤》처럼 아름답고 반짝거리는 어릴 적 시간들을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저의 글재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 코로나를 겪으며 2020년 10월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반응이 즉각적이었죠. 신기하더라고요. 누가 내 어린 시절에 관심을 가질까 했거든요. 첫 번째 스토리는 한옥에 살 때의 뒷간(화장실)경험 이야기였어요. ‘그 시절 그 공간에 가 있는 것 같다’ 등의 블로그 이웃들의 댓글이 이어지면서 그 반응에 힘입어 계속 글을 쓰게 되었죠. 이런 향수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에게 있더라고요. 10회 글을 마무리 할 때 즈음, 입소문을 타고 ‘한옥일기 이야기’ 를 연재하는 제‘밤호수’블로그에 한 출판사 대표님이 찾아오셨어요. 글을
나전칠기의 아름답고 찬란한 세계를 보여주는 ‘휘향찬란’ ‘휘향찬란’ 나전칠기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조개마다 가진 다른 무늬, 빛깔, 패턴이 있기 때문이죠. 빛에 따라 아주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 빛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휘향찬란’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향한 도전 사실 몇 해 전까지 저는 회사에서 회계 관련 일을 하던 3년차 직장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항상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베이킹, 가죽공예, 코딩, 일러스트, 포토샵 등 다양한 분야를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나전칠기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명장님들께 많은 조언과 사업적인 멘토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문화재수리기능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프리마켓을 종종 나갔었는데, 그때마다 찾아주는 분들의 많은 응원과 관심 덕분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원데이 오프라인 클래스, 온라인 클래스로 나전칠기 귀걸이, 머리핀, 키링, 그립톡, 커스텀 제품들
시는 세상으로 보내는 러브레터 풀꽃 시인 ‘나태주’ 16살 소년, 시인을 꿈꾸다 16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시인은 헤르만 헤세이고, 한국시인으로는 김소월, 윤동주입니다. 이 세 분은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어요.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죠. 사춘기는 말 그대로 인생의 봄을 맞이하는 시기인데, 그 당시 저의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집들이 살기가 어려워, 신분 상승과 돈과 권력을 쥘 수 있는 길을 가길 바랄 때였죠. 하지만 저는 권력과 돈을 추구하기보다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사셨다면, 저는 그 위에서 나를 위해 살고 싶었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아마 이 점이 저를 시인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고, 시인을 꿈꾸게 했다고 봐요. 물론 제가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가, 돌아보면 자신은 없지만, 제 인생의 목표는 16살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인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시 공부, 유일한 스승은 책! 제 평생 책 몇 권을 고르라면 지금도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직접 책을 보여주심)《당시, 唐詩》입니다. 당나라 시죠
밥 디자이너 ‘유바카’, ‘어린왕자 호텔’을 꿈꾸다 햇볕과 바람이 저를 키웠어요. 어렸을 때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을 집에 훅 던져놓고 밖으로 나갔어요. 거의 매일 들판에서 살다시피 했었어요. 꽃 보는 것이 좋고, 솔방울을 따고, 배추꽃 따 먹고… 햇볕과 바람이 저를 키웠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자연이 좋았죠. 물론 엄마가 들으면 서운하시겠지만요. 그렇게 늦게까지 밖으로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죠.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교사셨던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갔어요. 아버지는 항상 저를 무척 사랑해주고 용서해주시는 자상하신 분이셨죠. 독수리 오형제, 둘째의 설움 극복 저는 다섯 형제자매들 중 둘째로, 예쁨을 받기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눈치 백단에 솔선수범으로 엄마가 부르면 즉각 도와 드리고, 아버지 말씀도 잘 들었으니까요. 다른 형제들은 이래저래 예뻐하는 이유가 있어 일을 많이 시키지 않았는데, 유독 둘째인 저는 달랐어요.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매일 김치를 담그면서, 그때마다 호출되는 건 저였죠. 김치를 담그고 6개나 되는 도시락을 일일이 싸기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엄마의 오른팔 역할을
[철학시/종교시/문학시] 재미와 의미의 확률론 -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의 죽음을 추도하며1) I 의미있다 따라서 재미있다 원래 그랬겠지 그런데 있는 것 같지만 껍질만 남은 의미 재미도 덩달아 사라져 그렇다고 실패한 명제일까 아니야, ‘창조’해보면 ‘재미’생기지 게을렀던 거야 재미없다 물론 의미도 없지 재미만 계속 추구하면 흥미 때문에 도박에 중독된 도스또옙스끼 꼴 되지 하지만 사형집행 5분전 정지와 시베리아 유형으로 이미 죽음 삶의 의미를 관통한 그라도 의미 없는 도박을 계속하는 괴물 된 자신을 들여다 보고 화들짝 놀라 ‘도박꾼’이란 작품으로 의미를 창조하여 나이 듦과 함께 서서히 회복되어갔지 의미있지만 재미는 없어 또는 재미없어도 의미있으면 돼 순교, 영 재미없고 무시무시하지 정확하게는 ‘재미없어 보이는 척하고 외면해버리지’ 하지만 순교의 순간 삼위일체 하나님 경험한다면 폭발하지 않겠어 충만하지 않겠어 재미 흥미 환상 기쁨 스데반처럼2) 재미는 있는데 의미는 없네 또는 의미없어도 재미있으면 돼 게임자판을 엄청나게 눌러대며 영원히 잊어서 정지되는 시간 그래서 시계를 없앤 마귀적 방 백화점, 게임방 쉴 새 없이 물건 사대다가, 오징어 게임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