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날에 훌쩍 자란 딸아이가 아빠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부녀 사이로 오월의 훈풍이 날아들고, 벚꽃 잎이 눈부시게 흩날린다. 봄기운이 깃든 푸른 잔디 위를 사붓사붓 거닐며 나는 그의 환영을 따라간다. 생기 넘치던 젊은 날을 보내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는 나의 아빠를…. 아빠는 따뜻한 사람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가꿀 줄 아는 분이다. 시들시들하던 화초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활력을 되찾고 푸른 잎을 틔웠다.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오르던 것과 이끼 하나 없는 깨끗한 어항에서 물고기가 힘차게 헤엄쳐 다니며 종족수를 늘려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의 보살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강아지는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 흔들며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아빠에게 제대로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식물도, 동물도 전심을 다 해 돌보는 아빠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극진했을지 지금에 와서야 헤아려 보게 된다. 아빠는 두 딸이 자라는 내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같은
겨울철 피부 건조함의 해결사! 1. 목욕을 합시다. 피부 노화의 주범은 건조함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계절입니다. 요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지는 시기에는 피부가 매우 건조해지므로 피부 보습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겠죠.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며 노력하므로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것을 소개합니다. 특히 겨울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욕조 목욕으로 하체를 덥히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목욕의 효과를 통해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뇨를 촉진하는 방법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간단하게 샤워를 합니다만, 욕조 목욕이 노화를 늦추는 데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특히 건강관리, 피부관리에 신경을 쓰는 젊은이라면 번거롭더라도 욕조목욕을 권하고 싶습니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할 때도 가능한 한 욕조를 없애지 말고 건강관리를 위해서 욕조를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2.욕조 목욕의 긍정적인 효과는? 긍정 효과 1: 혈액순환 물속에서 따뜻하게 몸을 덥히면 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활발해집니다. 신장, 폐를 통한 노폐물의 배설이 촉진되므로 불필요한 수분이 몸 밖으로 배출되면 세포가 수분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긍정 효과 2: 부종 해소 따뜻한 물
[살아숨쉬는 지방문화 속으로] 되겠어? 됐습니다! 우리마을 프로젝트 마을만들기! 들어보셨나요? 우리가 사는 마을이 실제 만들어질 때 누구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되나요? 그렇죠! 그 마을에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보다 시나 군 행정이 주로 추진하지요. 골목길 확장, 가로등 교체 등 소소하게 벌어지는 마을일에도 주민들에게는 사실 결정권이 없습니다. 때로는 수백 년 이어온 마을이 개발행위에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마을 주민들의 우선순위와 관계없이 선심성 사업들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하지만‘마을만들기’란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주민들이 결정할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운동입니다. 이러한 ‘마을만들기’는 인간의 생각의 무게란 직위에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바탕에서 출발했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도지사, 군수, 기초의원 그리고 시민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결정권의 크기는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가정이 좋은 골목을 만들고, 좋은 골목이 좋은 마을을 만들고, 좋은 마을이 좋은 지역을, 그리고 좋은 지역이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작은 마을 활동이 전체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정치하고 권력을 위임 받는 것이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에서,사람을 만나는 사회복지사로 사회복지사로 돌아오기까지 ‘인천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 김윤재.’ 현재의 저를 소개하는 말입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서버 엔지니어로 5년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객들이 구입한 서버에 리눅스나 윈도우 서버 운영체제를 설치해주고, 운영 도중 생기는 문제들을 관리해주며 유지 보수를 했습니다. 서버 엔지니어도 처음에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고장 난 서버를 고치는 일을 많이 했는데 제 자신이 고쳤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재미도 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일을 하는 것이 저에겐 힘이 들었습니다. 금융업무나 게임 등 대부분의 서비스는 사용자들이 적은 밤에 서버 점검을 하는데, 밤에 혼자 일하려니 그게 더 힘들더군요. 월 1회 고객사에 방문해 문제를 해결하고, 새벽에 서버가 고장났다는 연락이 와도 혼자 해결하러 가고, 그뿐만 아니라 고객사와 갑과 을의 관계로 일하는 것 또한 저에겐 큰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문제가 생긴 서버를 고치고 있으면 고객사 담당자가 제 등 뒤에 서서 일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서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서비스가 작으면 상관없지만 POS 등과 같이 큰 서비스들은 서버가 고장 나서 서비스
100세 시대의 딱 절반,50대 다시 시작한 간호조무사 2019년 11월, 2년 동안 운영했던 편의점 재계약을 포기하며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찾아봤지만 나이가 벌써 50이 넘어가다보니 다들 부담스러워해 일 구하기가 쉽지 않았죠. 여러 번 시도 끝에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한 채 고용센터에서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게 되어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늦었기에 더 치열하게 처음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걱정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공부에서 손 뗀지 어언 30년이 흘러 다시 펜을 잡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으니까요. 괜히 시작했다 한 번 실패하고, 두 번 실패하고… 이러면 주변에도 창피하니 가족에게만 살짝 이야기하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학원에 가서 깜짝 놀랐던 것은 저처럼 새롭게 공부하러 온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행 가이드를 하다, 에어로빅 강사를 하다, 다들 코로나로 일을 못하게 되거나, 집에서 아이 키우다가 온 사람들 등 직업도 정말 다양했습니다. 게다가 나이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20대부터 저보다 3~4살 많은 50대 후반 언니들까지 골고루 있었죠
인쇄 장인의 자개 스토리 인쇄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개를 만나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인 8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에서 인쇄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쇄의 사통팔달 요지는 충무로였지요. 종이인쇄를 비롯한 어떤 인쇄든 충무로에 가면 모든 게 가능했습니다. 저는 어떤 주문이 들어와도‘안 되는 일은 없다’는 신념으로 용인 에버랜드(그 당시에는 자연농원), 제주중문관광단지, 천안독립기념관 등 굵직한 일들을 하면서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업체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 늦게까지 야근을 밥 먹 듯하고, 쉴새 없는 거래처 전화에 평일 휴일도 없이, 최소한의 여유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수년의 세월동안 체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까지 일을 했습니다. 이리 일은 원 없이 했건만 일한 만큼 보람도 없고 수입도 적고… 죽어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만 버는 것 같아 제가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90년대 초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 닥친 혹독한 IMF를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정말 난해한 일도, 불가능 하다고 다른 업체가 포기한 일도 완성했습니다. 제게 맡겨진 일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따뜻한 동네가게 스토리] 맛, 시간, 공간을 요리하는 디자이너 점.선.면. 경기도 안양시 동편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가게 ‘점선면’. 이름만 들어서는 무엇을 하는 가게인지 잘 모르겠고, 가게 외부 모습만 봐서도 카페인지? 음식점인지? 궁금함을 불러일으키는 우리 동네 최고의 아지트를 소개합니다. 메기국수라고? 저희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드셨던 메기국물이 현재‘점선면’의 대표 메뉴인 메기국수가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부모님은 10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메기국수 음식점을 운영하신 적이 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한국 메기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나게 크고 질 좋은 메기들이 메콩강에 많이 있습니다. 특히 날씨가 더운 캄보디아에서 지내다보면 기력이 많이 빠지는데 그 메기들을 보고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먹어본 메기탕에 도전해서 성공하셨던 것이죠. 주로 단체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했던 식당이었는데 한 번 드셔보신 분들이 한국 가면 생각난다고 하며 종종 다시 찾아주시곤 하셨어요. 그 아이템을 한국에서 한 번 시도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엔 너무나 생소한 음식이라서 두려움도 있었지요. 볼거리, 놀거리가 숨어있다 점선면은 단지 음식뿐 아니라 우리만의 무언가를 손님들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캘리그라피’를 그립니다. 아버지는 글자체가 아주 반듯했습니다. 누구나 잘 쓴다고 감탄을 했으니까요. 특별히 정성을 들여서 쓴 글씨가 아닌데도 글씨체는 힘이 있고 가지런했습니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 붓글씨나 펜글씨를 따로 배우지 않으셨는데 말이죠. 다만 늘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씨를 쓰는 시간을 많이 가진 덕분에 좋은 필체를 가지게 된 듯 했습니다. 또 아버지는 좋은 필체로 손 편지를 자주 쓰기도 하셨죠. 가족과 친척들에게 가끔 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집을 떠나온 딸을 걱정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내 주셨지만, 아버지의 편지에 직접 손 편지로 답장을 해 드린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전화로 편지를 잘 받았다고만 했던 적이 더 많았으니까요. 글로나 말로나 정성스런 답변을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늦은 후회를 합니다. 아버지의 좋은 글씨체를 보면서 살아온 것이 내게는 글씨를 잘 써야 한다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씨를 반듯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글씨를 잘 쓰려면 붓글씨를 배우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듯했습니다. 글씨체만 멋있는 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붓글씨를 배우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살았습니
[포토그래퍼 스토리] 빛으로 그리며 작품을 만드는 포토그래퍼 ‘김인규’ 광고 사진에 매료되다 원래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실용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고 스튜디오에 다니던 선배를 보러 충무로에 갔는데 일하는 선배의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어요. 그때 사진에 완전히 매료되어 사진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0년간 사진을 찍고 있어요. 사진을 하며 큰 업체에도 있어 보았지만, 제가 작업하는 사진을 특정 분야로 한정 짓는 게 싫었습니다. 사물이든, 풍경이든 분야에 상관없이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선배들로부터 누가 어떤 분야 사진을 잘 찍는다 하면, 그분을 무작정 찾아가 무보수로 일할 테니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요령도 피우지 않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열심히 배우니, 적은 보수로 일하게 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저에게 아주 자세히 자신들의 노하우를 가르쳐주었어요.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몇 년간 장인들로부터 배우며 저의 역량을 키워 32살 이른 나이에 제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가슴 떨렸던 첫 촬영 28살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실장님이 부르시더니, 지금 바로 비행기
[주수연의 인생 단상 16] 편리함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내던 중, 난데없이 휴대폰 알람이 울렸습니다. 별 생각 없이 열어본 메일에 순간 얼음이 되었고, 온 몸에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누군가 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로그인 시도를 했다는 메일이 두, 세 개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해킹을 시도한 곳은 미국 LA로 표시가 되었고, 본인이 아니라면 비밀번호를 변경하라는 안내가 뜨더군요. 쿵쾅거리는 가슴을 뒤로한 채 부리나케 비밀번호를 변경하였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괜찮아졌습니다. 약 4시간이 흘러 새벽 12시 30분 경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웠습니다. 그 때 갑자기 울린 휴대폰 알람 소리는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까와 동일한 곳에서 해킹을 여러번 시도하는 메일임을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랐고 잠은 완전히 달아났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요. 다시 비밀번호를 바꾸었지만 이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해커는 계속 실시간으로 해킹했고, 저는 실시간으로 비밀번호를 바꾸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아깝지만 큰맘먹고 연결된 지인들과의 과거 이력을 포기하고 계정을 삭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