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나물 (Lamium amplexicaule)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늦은 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 먹거리를 주문하고는 문밖에서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슴 한쪽이 빈 것 같은 나날이 이어집니다. 마음을 추스르려 들판을 무작정 걸어봅니다. 양지바른 둔덕에 광대나물이 피어있습니다. 광대나물은 3~5월이 개화기입니다만, 무슨 연유인지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고 길을 걷는 저를 바라보며 광대짓을 하며 흔들거립니다. 겨울이면 당연한 일이지만 눈이 내렸습니다. 눈치도 없이 깊은 겨울에 꽃이 피어있던 광대나물이 걱정스러워 들판으로 달려가 봅니다. 눈을 뒤짚어쓰고도 어떤 일도 없었던 듯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광대나물은 잡초로 취급되는 야생화입니다. 눈을 뒤집어쓰고도 꽃을 피우고 있었던 들판의 광대나물의 꽃말은 ‘봄맞이’입니다. 아마도 가슴 시린 겨울도 어느 날 지나갈 것입니다. 꽃말처럼 흥겨움으로 봄을 맞이할 날을 기다리며 찬바람 들어오는 현관문을 단속해 봅니다. 태극화훼농원, 한현석 행자부/농림부 신지식인 tkhanhhs@hanmail.net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 용담(Gentiana scabra Var.)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독자 여러분!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충북 청주시에서 ‘태극화훼농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한현석 대표님이 독자분들을 위해 야생초에 대한 이야기를 매월 기고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올해 12월호 보라색 꽃인 관상용 야생화 ‘용담’스토리를 시작으로 내년에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주실 것을 기대해 봅니다. 용담은 전국의 산야에서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초장은 20~70cm로 개체마다 차이가 크며 줄기 상단에 보라색 꽃이 피어납니다. 개화 기간이 긴 편이라 관상용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야생화이죠. 이 꽃은 늦은 가을까지 우리의 들녘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꽃으로 늦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11월까지도 볼 수 있답니다. 용담(龍膽)은 ‘용의 쓸개’라는 의미입니다. 용담은 오래 전부터 뿌리를 말려 약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 약효에 관련한 일화가 많고 그 맛이 매우 쓴 것이 특징이죠. 얼마나 쓰면 이름을 용담이라 했을까요? 시험 삼아 뿌리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어보면 쓴맛 때문에 눈앞에 용이 왔다 갔다 할지도 모릅니다. 용담은 도시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한적한 시외에서 볼 수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1] 물봉선 (Impatiens textori) 어느 날부터인가 날씨가 시원해진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한낮의 열기도 수그러들었기 때문에 들판을 걷기에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들판을 지나 산의 초입 개울가에는 물봉선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물봉선이 피었다고 이야기하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것은 마당 한쪽을 장식하고 손톱에 물을 들이는 봉선화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봉선화는 중국 남부 따스한 곳이 원산지인 식물입니다. 관상을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 마당에 심던 것이라 물봉선과 봉선화는 늘 헷갈리는 식물이자 이름인 듯합니다. 손톱에 물을 들이는 봉선화는 마당에 심겨진 것을 감상하면 되겠지만 물봉선을 보려면 시원한 바람을 쐬며 들판을 걸어 산의 초입이나 개울가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것도 서둘지 않으면 예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한낮이 지나 오후가 되면 서서히 꽃이 시들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이른 아침에 물봉선이 꽃을 피운 장소를 찾아가면 밤새도록 만들어진 이슬이 맺혀있는 물봉선을 만날 수 있습니다. 햇살 퍼지는 시간이 되면 햇살이 비춘 물방울이 반짝거리는 빛망울을 뒤로한 멋진 물봉선을 만날 수 있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3] 변산바람꽃 (Eranthis pinnatifida) 찬바람 불어오는 깊은 겨울입니다. 벽에 붙어 있던 한 장짜리 달력은 어느 순간 두툼한 12장짜리 새 달력으로 바뀌어있습니다. 해가 바뀐 깊은 겨울 속에서 약간의 온기를 느낄 무렵이면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여기저기로 꽃소식을 물어보며 연락을 취하게 됩니다. 산속에 겨울이 두껍게 자리 잡은 1월이 지나갈 즈음이면 이미 겨울 추위를 뚫고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북 부안에서 발견하여 이름을 지었다는 ‘변산바람꽃’이 그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가지도 않은 시기에 약간의 온기를 느끼는 이른 시기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긴 기다림을 겪은 이후에 세상에 그 모습을 알린 기특한 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변산바람꽃의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차가운 산바람이 불어오고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흔들거리는 을씨년스러운 시기이지만 야생화를 만나고 싶은 분들은 변산바람꽃을 만나러 떠나 보세요. 변산바람꽃이라 해서 변산에서만 자라는 것은 아니고 남부와 중부지방에서도 수소문을 하면 자생지를 알 수 있고 자생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햇빛을 바라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5] 홀아비꽃대 Chloranthus japonicus 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따스해지는 듯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 햇살이 산속에 도착할 무렵이면 산속에서 조용히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멋진 색상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약간 비켜있기는 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식물입니다. 예전에는 이 품종의 꽃을 보면서 꽃의 모양이 ‘홀아비의 깎지 않은 수염처럼 보인다’고 하여 ‘홀아비꽃대’라고 부른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의 꽃이 피기 때문에 홀아비꽃대라 부른다’는 것으로 식물명의 유래도 변해가고 있는 듯하여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홀아비라 하면 아내를 잃고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라고 목욕이나 집안 청소를 하지 않으니 사람 꼴이 말도 아닌데다가 모든 것이 곤궁하여 냄새까지 나서 홀아비 냄새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었지만, 요즘이야 세상이 변하여 홀아비라 하더라도 쓸고 닦고 자신을 꾸미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니 예전의 홀아비와 요즘의 홀아비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커졌습니다. 그러니 하찮게 여기는 식물의 유래 정도야 세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20] 제비동자꽃 (Lychnis wilfordii) 올해 여름과 장마는 대단한 위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폭염과 폭우는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저 역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났지만요. 근래는 사정상 자리를 지키며 더위와 싸움질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벌써 북부지역의 고산지역 이름 없는 골짜기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높은 산의 야생화들과 눈 맞춤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추억으로만 고산지역을 거니는 듯합니다. 무더운 여름 북부 고산지역을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하던 여러 종류의 야생화 중에서도 ‘제비동자’ 꽃은 그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꽃 모양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제비동자꽃은 꽃잎이 가늘고 길게 파인 모습이 날렵한 제비의 꼬리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름이 제비동자꽃입니다. 이 품종은 무슨 연유인지 개체수가 급감하여 국가에서 멸종위기 2급 식물로 보호하는 지경이 되었지만 다행히 개체 수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더위를 피해 고산지역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8] 앵초 (Primula sieboldii) 봄이 온 것 같더니 봄을 느끼기도 전에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듯합니다. 한낮에는 더위로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지나간 봄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벚나무에 흰 벚꽃이 피어납니다. 이 꽃은 며칠 만에 눈처럼 흰 꽃잎을 흩날리게 됩니다. 꽃비가 내리면 여인들의 마음도 들뜨게 되는 것 같습니다. 꽃비가 그치고 나면 봄기운이 가득해지고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도 기지개를 켜고 봄맞이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산의 물가 주변이나 계곡의 습기가 머무는 장소에 무리 지어 피어나는 야생화가 있으니 그것을 우리는 ‘앵초’라고 부릅니다. 앵초의 꽃 색은 분홍색으로 새색시들의 연분홍 치마가 생각나는 색상입니다. 앵초는 이렇게 봄이면 우리 곁에 찾아들어 설레임을 안겨주는 야생화입니다만, 실물을 산에서 만나거나 자생하는 모습을 찾아가거나 앵초를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문 듯 합니다. 그 이유라면 봄이라고 하지만 산야에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계절에 산속에 앵초꽃이 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