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집의 변화를 떠올려 본다. 과거에는 다세대 주택에서 살다가 25평 아파트로 이사했고 현재는 32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는 북 카페를 지으려고 고심 중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나 미래는 가변적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이리저리 궁리 중이다. 5년 전 북 카페 부지를 살 때만 해도 친구 남편이 나의 추진력을 높이 사면서 이런 말을 했단다. “어떻게 억대가 넘는 땅을 사면서 마치 마트에 가서 두부 한 모 사듯 앞뒤 재지 않고 사지?” 믿을 만한 분이 소개한 땅도 아니고, 오다가다 들른 부동산에서 덜컥 땅을 산 나의 행동은 주변에서 보기에 무모해 보일 정도였다. 광릉수목원과 고모리 호수 근처인데다 이곡초등학교도 가깝고 농협, 마트도 가까이 있어서 의정부에 사는 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우선 땅부터 사 놔야 변덕이 죽 끓듯 조석변개하는 나 자신을 눌러 앉힐 수 있겠단 생각도 한몫했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사놓은 땅임에도 북 카페를 짓고자 하는 첫 삽은 쉬이 떠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의 주기를 학령기, 가주기, 임서기, 유랑기로 나눈다면 나는 지금 임서기를 준비 중이다. 유랑이 뼛속에 박힌 성정을 지니고서
correlation VS causality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 한 연구자가 아이스크림 판매량의 연중 증감 추이와 연중 익사 사망자의 증감 추이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변인 간의 상관분석을 시행해 보았지요.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명백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었으니까요.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급증하는 동안, 익사 사망자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었으며 판매량이 감소하는 동안 익사 사망자 수도 감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구자는 몸서리를 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지요.“익사 사망자의 증감은 아이스크림이 그 원인이다.”그런데 위의 내용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금세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연구자는 제3의 변인 즉‘여름 평균온도’라는 변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여름 평균온도가 익사 사망자 수의 원인 중 하나인 것을 찾지 않았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 평균온도의 증가가 피서객의 수를 증가시키고 피서객의 수의 증가가 다시 익사자 수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익사 사망자 수의 원인으로 꼽을 만한 다른 변인들로는 안전 불감증, 국지 기후의 변화, 해수욕장 및 수영장의 안전교육 현황, 세이프가
삶의 끄트머리마저도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는 요즘 주간 보호 센터에 다니신다. 2남 2녀의 자녀를 둔 시어머니는 전에는 집에서 시누이들의 돌봄을 받으셨다. 그러나 육아에도, 노인 돌봄에도 독박은 안 될 일이다. 각자 가정이 있는 시누이들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어머님을 전담해서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낮에는 어르신들의 유치원 격인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고 휴일 하루는 네 명의 자녀가 당번을 정해 종일 어머님을 돌보기로 했다. 셋째 주 당번인 우리 부부가 이번 주일에 어머님 댁에 갈 차례였다. 전에는 목욕 좀 해드린다고 하면 싫다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흔쾌히 욕실로 들어가신다. 꼿꼿한 자존심을 내려놓은 어머니는 자신을 돌보도록 며느리인 내게도 기회를 주시기 시작한다. 점심 식사도 잘하시고 아들이랑 몇 마디 말씀도 나누시더니 오후 4시부터 또 ‘얼른 가라’노래가 시작되었다. 딸들이 오면 갈까 봐 “언제 와?”하신다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어쨌든 딸보다는 편치 않으신 거다. 그래도 저녁 약 드시는 것까지는 살펴드려야 하니 얼른 떡국을 끓이고 살치살을 구워 저녁을 차려 드렸다. 매달 어머니는 우리를 만나기까지 한 달만큼 늙어가고 있다. 깔끔하고 외모 단장을
미련 보따리 어릴 적부터 내 기억 속 할머니의 집은 지저분한 창고였다. 물건을 못 버리고, 내다 버려진 것들을 거친 손으로 보따리에 양손 한가득 주어 오시는 할머니 때문에 집은 항상 쓸모없는 짐이 가득했고, 제각각의 물건들이 집안을 채워 누가 집의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불필요하게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그 낡고 오래된 짐들과 쓰지도 못하고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는 성격에 집안은 항상 난리가 났고 바퀴벌레, 알, 날파리 등 각종 벌레들이 좋아할 아주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집안을 들어설 때부터 풍기는 꼬릿한 냄새부터 앉기도 버겁게 좁은 공간, 유통기한이 지난 상한 음식,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식기들, 겁도 없이 바닥을 기어 댕기는 바퀴벌레들에 잔뜩 긴장하며 집안에 들어서 소파에만 앉아있거나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한 적이 있다. 또한 손녀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음식을 주시는 것을 더럽다고 마다하며 못된 생각을 한 적도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생전 좋아하시던 소주병을 치우며 짐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정리하다 보니 오래되어 다 뜯어진 벽지와 곰팡이가 잔뜩 퍼져있는 욕조, 잡동사니로 가득한 화장실 등 도저히 사람이 살 수
피아노협주곡(Op.7)을 통해 클라라 슈만, 새롭게 이해하기 지난 9월 27일 저녁, 광장 한 편을 빨간 홍시로 불 밝힌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에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라는 주제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 음악가 각각이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을 모아놓았다는 것이었어요. 세 명 모두 당대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었던 만큼, 각각의 음악적 특징을 비교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주가 작곡된 연도순을 따라 클라라(1834), 슈만(1841), 브람스(1858)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제목은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순서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클라라가 슈만의 아내였기 때문에 슈만 뒤에 둔 것일 수도 있지만, 슈만과 브람스라는 음악계의 두 큰 거장 사이에서 클라라는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클라라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클라라와 두 음악가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Op. 7)의 특징 악장의 구분없이 이어지는 피아노 협주곡: 클라라가 단순한 피아노곡이 아닌 오케스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2] 수선화(Narcissus)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지지만 봄은 앞산 너머까지 와 있을 듯합니다. 겨울에 내린 눈은 수식어도 붙지 않고 눈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맘때 쯤 내리는 눈은 춘설(春雪)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봄이 가까이 와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양지바른 화단이나 정원의 한쪽을 살펴보면 차가운 계절임에도 수줍음을 참아가며 다소곳하게 꽃이 핀 수선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춘설을 이고 진 수선화를 만난다면 겨울이 지나간 것이 확인되면서 가슴이 뛸지도 모릅니다. 긴 겨울의 지루함과 추위에 몸이 움츠러들어 힘을 쓰지 못하던 것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선화'(水仙花)는 한자로 이루어진 이름입니다. 옛 어른들은 하늘에는 '천선'(天仙)이 있고 땅에는 '지선'(地仙)이 있고 물에는 '수선'(水仙)이 있다고 했다네요. 그만큼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수선화'를 사랑스런 마음으로 가꾸고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정원이 딸려 있거나 작은 꽃밭이 있는 전원생활을 한다면 돌아오는 봄에 수선화 구근을 몇 개 구입해서 양지바른 장소에
"휴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여름날 엄마에게 여름휴가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휴가라는 단어가 애초에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괜히 물어보았다. 휴가 같은 소리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같은 반 친구 주연이가 강릉으로 여름휴가를 간다면서 나에게 “경혜, 너는 어디 가?” 라고 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글쎄…” 라며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과연 우리가 여름휴가라는 걸 간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 나이로 약간의 눈치는 있었던지라 천진난만하게 계속 묻지는 못했다. 그래서 차근차근 말했던 건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나니 약간 서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더 조르지는 못했다. 놀러 갈 형편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으니까. 그때 아빠는 농부이면서 목수였다. 농부가 쉴 때는 목수로 일했고, 목수 일이 없을 때는 농사를 지었다. 시간의 빈틈없이 사는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농부의 아내이자 목수의 아내였으니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애들 데리고 놀러 갈 틈이 있을 리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했으니
[한국 속의 세계인] 편리한 한국 친절한 한국 한국에서 산 지 5년이 된 베트남 새댁, 응옥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저는 한국이 너무 친근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베트남에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는 베트남의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에게 특히 주부들과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케이팝이 뜨면서 한국의 BTS가 젊은이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고, 심지어 한국 가수와 배우들이 우상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저 또한 한국이 익숙해졌고, 자연스럽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에 녹아 있는 한국 문화 때문인지 한국의 유학길에 두려움은 없었어요. 그렇게 한국의 대학원을 지원하게 되었고 지금은 같은 베트남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한국과 베트남의 너무 다른 호칭 한국의 직장 문화는 베트남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에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Mr/Ms. 누구라고 이름을 부르거나 종종 완전한 이름을 부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직위로 서로를 부르더군요. 한국에서 저의 친절한 친구가 저에게 이것을 지적해 주지 않았다면 저
딸의 소리를 찾아서… 목포까지 시나브로 겨울에 들어섰다. 기온은 점점 낮아지고 마리나는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12월부터 2월까지 수도를 잠근다. 배들 위로 눈과 먼지가 엉겨 붙고 날이 더 추워져 1월쯤 한강이 얼어붙으면 언 강을 망치로 깨며 배를 보호하기 위한 선장들의 눈물겨운 겨울살이? 들이 시작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던 한 해였다. 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많은 관객들 앞에서 차분히 취미로 배운 흥보가를 부르는 딸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는 진짜 소리, 옛날 소리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할머니 명창 선생님을 찾아 남도로 유학을 왔다. 똥 삭힌 물을 마시고 온종일 산과 폭포를 찾아다니며 득음을 하시던 시절의 명창 분들은 이제 많이 돌아가셔서, 공력이 있는 옛 소리를 들으며 배울 곳을 찾기 어려웠다. 유튜브와 여러 영상 자료들을 뒤져가며 생존해 계신 많은 명창 분들의 소리를 찾아 들었고 감정과 공력이 좋은 딸아이의 특성을 잘 살려주실 명창 분을 찾아 서울에서 땅 끝 목포까지 유학을 온 것이다. 문화재 할머니 명창 앞에서 도제식으로 배우는 판소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강한 압박을 견뎌야 하는 열 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 곁에서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