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성품개발을! 1-4 용기] 여 름 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가뭄 든 땅에 비가 옵니다. 풀과 잎사귀 춤을 춥니다. 반가운 비가 고이 온다고.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쓸쓸한 맘에 비가 옵니다. 아무리 와도 꽃도 못 필 걸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잠든 동산에 비가 옵니다, 쓸데 없는 걸 비가 옵니다, 잠을 깨라고 비가 옵니다. - 김 소 월 - 여름비는 반가워서 내심으로 미소짓게 만듭니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논밭의 틈들을 요 이쁜 것들이 말끔하게 매꾸어주며 이윽고 자라날 풀과 잎들이 하늘 하늘 춤추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렇게 소망하던 소월 시인은 그 비를 보고 ‘꽃도 못 필 걸’, ‘쓸데 없는 걸’이라고만 펄썩 주저앉고 마네요. 그러니 그 비는 쓸쓸하거나 슬픈 비일 것도 같습니다. 비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쓸쓸하고 슬프기 때문이겠죠? ‘꽃도 못필 걸’ 하고 돌아앉지만 그래도 비는 내리고 또 내리고 주룩주룩 내립니다. 깊이 잠든 꽃동산을 가득 채운 쓸쓸함을 인내심을 가지고 내어쫒을 양 말입니다. 이런 행동이 ‘쓸 데 없는 걸’ 이라며 자조적 쓴 웃음을 짓지만, 드디어는 결국 인생의
[시로 성품개발을! 1-3 정직] 햇 살 에 게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 호 승 - 먼지는 더럽지만, 그 보이지 않던 먼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 햇살에게 감사하는 것, 하나. 한 껍질 더 벗긴 자각인 내가 바로 그 더러운 먼지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감사하는 것, 둘. 놀랍게도 한 껍질 더 벗긴 자각을 향하여 돌진. 즉 그런 먼지인 나라도 환한 햇빛이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치는 것에 대한 감사, 셋. 아침부터 감사 삼총사를 만나는 멋진 출발이다.
[시로 성품개발을! 1-2 소망] 하 늘 아버지는 일거리가 없을 때 하늘을 쳐다봅니다. 어머니도 궂은 일이 생기면 하늘을 쳐다봅디다. 저도 숙제가 너무 많아 가슴이 답답할 때면 하늘을 쳐다봅니다. 셋방살이 방 하나 우리 집 식구들은 하늘을 보고 삽니다. - 박 인 술 -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이 신세한탄이나 푸념이 아니라 적어도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잠깐 쉰 후에 더 깊은 숨을 품고 내쉬며 하늘 너머 더 깊은 곳에 도달한다면 더 좋겠지? 그렇다면 일단 하늘을 바라보는 그 눈으로 남을 향한 비난이나 자신을 향한 비관을 하늘에 투사하는 걸 멈추겠지. 드디어는 그 모든 좋고 나쁜 만남들과 경험들을 진정한 유익을 위해 섭리하시는 분에게 내 눈이 도달한다면, 없어지지 않는 소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시로 성품개발을! 시리즈 1-1 사랑] 은 영 세 탁 소 아이들은 나를 ‘은영세탁소’ 라고 부른다 이젠 괜찮지만 그래 괜찮지만 내 이름을 간판에 걸고 일해 오신 아버지처럼 나도 정말 남들을 깨끗하게 빨아 주고 남들의 구겨진 곳 곧게 펴 주고 싶다 아버지의 주름살을 제일 먼저 펴 드리고 싶다. - 남 호 섭 (1962- ) - 엄마들은 나를 ‘세탁소집 딸’ 그저 평범하게, 그리고 아이들은 그냥 ‘은영세탁소’라고 약간 조롱을 섞어 부른다. 처음에는 속이 상했고 싫었다. 그저 그런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나도 그저 그런 사람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제는 괜찮다. 생각을 바꾸니 말이다. 어떻게? 아버지의 일이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빠는 기쁨은 빨래를 해본 사람은 안다. 나도 커서 다른 사람들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그 마음의 구겨진 것을 펴는 일을 한다면 그런 기쁨을 얻겠지. 그러면 나는 ‘그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그 딸’이 되겠지. 그런데 자세히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웬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제일 먼저 다림질해서 펴드리고 싶은 것은 깊어지는 아버지의
[새로운 칼럼을 시작합니다 : 시로 성품개발을!] 이 시리즈의 목적은 이름대로 ‘시로 성품개발하기!’입니다. 그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21세기에 이르러 GenerativeAI 시대에 이르러 인간이 비인간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기계와 로봇과 AI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럴수록 한 인간이 살아있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인간이 되며, 또 그런 인간들로 차가운 사회를 따뜻한 공동체로 이루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전통적으로 사용했고 또 매우 효과적이었던 방식이 바로 문학, 즉 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탁월한 시들이 가진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 감화시키는 큰 장점을 사용하여 폐허화된 인간 마음 속의 좋은 품성들을 고양시키고, 그렇게 고양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따뜻한 삶들을 이루는 목표로 ‘시로 성품개발을!’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개발하려 하는 품성의 종류는 총 16가지입니다. 1. 사랑 2. 소망 3. 정직 4. 용기 5. 인내 6. 열정 7. 더불어 사는 삶 8. 도전(하는 자세) 9. 명상, 상상력 10. 절제 11. 고통(을 견디는 자세) 12. 근면 13. 죽음을 준비하는 삶 14. 단
[철학시/종교시/문학시] 재미와 의미의 확률론 -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의 죽음을 추도하며1) I 의미있다 따라서 재미있다 원래 그랬겠지 그런데 있는 것 같지만 껍질만 남은 의미 재미도 덩달아 사라져 그렇다고 실패한 명제일까 아니야, ‘창조’해보면 ‘재미’생기지 게을렀던 거야 재미없다 물론 의미도 없지 재미만 계속 추구하면 흥미 때문에 도박에 중독된 도스또옙스끼 꼴 되지 하지만 사형집행 5분전 정지와 시베리아 유형으로 이미 죽음 삶의 의미를 관통한 그라도 의미 없는 도박을 계속하는 괴물 된 자신을 들여다 보고 화들짝 놀라 ‘도박꾼’이란 작품으로 의미를 창조하여 나이 듦과 함께 서서히 회복되어갔지 의미있지만 재미는 없어 또는 재미없어도 의미있으면 돼 순교, 영 재미없고 무시무시하지 정확하게는 ‘재미없어 보이는 척하고 외면해버리지’ 하지만 순교의 순간 삼위일체 하나님 경험한다면 폭발하지 않겠어 충만하지 않겠어 재미 흥미 환상 기쁨 스데반처럼2) 재미는 있는데 의미는 없네 또는 의미없어도 재미있으면 돼 게임자판을 엄청나게 눌러대며 영원히 잊어서 정지되는 시간 그래서 시계를 없앤 마귀적 방 백화점, 게임방 쉴 새 없이 물건 사대다가, 오징어 게임하다가
음악의 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빠져 마음껏 헤엄치며 세상을 매료시킨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19세기 초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은 잠자고 있던 바흐(1685~1750)의 오라토리오 ‘마태 수난곡’(BWV 244)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마태 수난곡’이멘델스존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후, 바흐의 작품 전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게 되었죠. 그로부터 100년이 넘게 흐른 1955년, 캐나다의 23살 젊은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작품 하나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바흐의 작품번호(BWV) 988번, 우리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변주곡인데, 원래는 ‘2단 건반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클라비어 연습곡’이라는 긴 제목의 곡입니다. 대위법으로 치밀하고 복잡하게 구성된 이 변주곡은 그 때까지만 해도 연주자들에게나 청중에게나 무미건조한 톤의 매력 없는 작품으로 여겨져 잘 연주되지 않고 있었죠. 하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이 곡은 수많은 청중의 귀와 마음까지 사로잡는 위대한 곡으로 탈바꿈하게 되니, 바로 음악 못지않은 특이한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3] 마음으로 보기 여행을 가면 꼭 그곳의 풍경이 담긴 그림을 삽니다. 20대에는 아껴야 하는 여행경비 때문에 엽서를 사곤 했죠. 직업을 가진 후에는 다른 비용을 줄이더라도 꼭 실제로 그린 그림을 사 왔습니다. 물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길거리 화가의 그림이죠.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액자에 담긴 그림을 보면 ‘잘 그렸다, 못 그렸다’에 대한 평가 없이 그때의 추억들이 떠오르며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04년도에 캐나다 여기저기를 여행했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림을 보고나서 쓴 일기를 발견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아래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오는 길에 지나다가 이 그림을 보았다. 한참을 서서 쳐다보았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멋지게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언제쯤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 20대 초반의 저는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현실의 벽이 꽤 높았나 봅니다. 지금처럼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많은 관심을
[전선영의 '시로 보는 마음' 2] 저는 시를 통해 잃어버린 슬픔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른으로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 눈물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힘들고 서글퍼질 때도 있지요. 소유했어야 할 가장 근원적인 것들마저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박탈감이 분노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표현하는 게 참 어려워요.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도 그 마음을 받아줄 마땅한 자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쌓여가는 독소들은 나를 태우고 타인을 태우며 모든 심리적 환경과 관계를 잿빛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죠. 후에는 몸만 살아있지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고 느끼지 않는 무감각, 무감정으로 마음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픈 걸 말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슬픔을 되찾아 그 감정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입니다. 시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요. 시를 읽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는 시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입술을 건너간 이름》의 저자 문성해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 제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어요. 그 시에 쓰여 진 시어에 내 마음이 반응하고 있
광장의 화가 ‘리까르도’ 프롤로그 Ricardo Araya Assler. 아쓸러는 독일인 성. 리까르도의 할아버지가 독일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면 확실히 유럽 스타일이다. 수염이 길 땐, 이미 우리 눈에 길들여질 때로 길들여진 예수상을 닮아 보이기까지 하다. Plaza de Armas 광장 칠레의 Santiago 시내 중심에는 대통령궁이 있고, 두 블럭 옆엔 Plaza de Armas라는 광장이 하나 있다. 이 곳은 술 취한 자, 외로운 자, 노숙자, 독신자, 여행자, 다리 아파 쉬는 자, 멀쩡한 자, 잡상인, 버스커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상설 체스판이 놓여 있으며, 바로 곁에 팔각정 닮은 구조물도 있다. 여기서 작은 공연이 자주 열린다. 가끔은 세계 정상급의 가수들이 날아와 공원뿐만 아니라 인근 주변까지 관중들로 꽉 채운 대공연도 열리는 광장이다.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풍경 하나가 광장의 화가들. 그와의 만남 20년 전, 광장을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평상시엔 그냥 지나쳤다는 건데 그 이유는 광장의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준다거나 소위 이발소에나 걸려있을 만한 그림 따위를 그려 내게 별 자극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