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5] 반성하되 자책하지 말기!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이번에도 실패 하겠지.” “안될 거야. 난 부족하니까.” 어떤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까지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던 말들입니다. ‘프로 자책러’ 과거의 저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죠. 자책은 얼른 보기에는 반성과 닮아있지만, 그 본질은 조금 다릅니다. 반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봄’이고, 자책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에 대하여 스스로 깊이 뉘우치고 자신을 책망함’입니다. 나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 스스로 깊이 뉘우치는 것은 호전적이지만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책망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죠. 그래서 우리는 실수나 실패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은 지향하지만 지나친 자책은 지양해야 한다고 합니다. 작거나 큰 실수, 모든 나의 선택에 있어 자책투성이였던 그 시기, 누군가가 저를 탓하지 않아도 저는 저의 행동 하나하나 곱씹고 비난하고 책망했습니다. 처음 대학 강의를 했을 때입니다. 학기 말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받고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30분을 펑펑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5] 홀아비꽃대 Chloranthus japonicus 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따스해지는 듯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 햇살이 산속에 도착할 무렵이면 산속에서 조용히 꽃을 피우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화려하거나 멋진 색상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약간 비켜있기는 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식물입니다. 예전에는 이 품종의 꽃을 보면서 꽃의 모양이 ‘홀아비의 깎지 않은 수염처럼 보인다’고 하여 ‘홀아비꽃대’라고 부른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의 꽃이 피기 때문에 홀아비꽃대라 부른다’는 것으로 식물명의 유래도 변해가고 있는 듯하여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홀아비라 하면 아내를 잃고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라고 목욕이나 집안 청소를 하지 않으니 사람 꼴이 말도 아닌데다가 모든 것이 곤궁하여 냄새까지 나서 홀아비 냄새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었지만, 요즘이야 세상이 변하여 홀아비라 하더라도 쓸고 닦고 자신을 꾸미는 일에 소홀하지 않으니 예전의 홀아비와 요즘의 홀아비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커졌습니다. 그러니 하찮게 여기는 식물의 유래 정도야 세
김원천의 건축이야기 4 마음에 머무는 볕(陽) - 광양(光陽)한옥 이야기 마을재생을 통한 지역의 소중한 삶을 일깨우다. 2022년 늦가을, 광양 인서리 한옥에서 태어나 자라신 70대 어르신과 만나 깨끗하게 고친 한옥에 대한 소회를 여쭸다. “112년 된 이 집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지으려고 했었지. 그런데 태어나 자란 집을 없애는 게 마음이 쓰여서 계속 세를 줬어. 가족들과 서울에 살고, 일이 바쁘니 큰 신경을 못 썼는데, 광양시에서 사서 고친다기에 팔았어. 그런데 이렇게 잘 고쳐질 줄이야. 정말 고마운 일이지. 저 뒷방이 내 공부방이었고, 여기는 부엌이었어. 다 기억이 나… 저 동백나무는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심으셨어.” 본인 추억이 깃든 집을 판 것이 아쉬우셨는지 종종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하셨지만 대문을 밀고 나서며 “집을 살려줘서 고맙네. 광양시 소유가 되었으니 다시 살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마당에 서니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추억, 아버지와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좋네. 종종 올 수도 있겠고…” 우리 모두 낡았든 새 것이든 물질로 이뤄진 건물에서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산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2016년 5월. 당시 광양시총괄건축가
칠레에서 본 K-문화 서른두 살 먹은 아들이 토요일 낮에 놀러 나갔다가 일요일 새벽 3시에 들어왔다. 친구를 만나 같이 지내려 했는데 친구가 같이 놀 수 없게 되어 부득이하게 혼자 계획에 없던 K팝 파티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들은 네 명의 칠레 여자애들이 ‘혼자 왔으면’ 자기네들과 같이 놀자하여 응해주었는데, 명색이 K팝 파티라 한국인의 자부심으로 입장료인지 식대인지를 흔쾌히 내주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아들아! 니는 낭비가 심해~”라 말할 순 없어서 '잘했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튼, 주말 젊은이들에겐 일반 디스코텍 문화가 주류였을 텐데 어느새 K팝 문화가 자리했다. 25년 전 칠레 산티아고 산티아고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마포초’강은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흐른다. 그 곁, 그러니까 산티아고의 중심에는 우리 교민들끼리 ‘남산’이라고 부르는 ‘Cerro San Cristóbal’이 있다. 스프링쿨러를 동원하고 도랑을 파 물을 흘려 나무에 물을 주어가며 애쓴(1년 중 8개월간 연속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에) 끝에 280m 높이의 산에 나무들이 나름 울창하게 자라 시민들에게 훌륭한 쉼터로 자리 잡았다. 산 동쪽 초입부에 적당한 크기의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16] 길마가지나무Lonicera harai 긴 겨울이 지나갈 것 같지 않더니 계절은 변하여 기다리던 봄이 드디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봄바람에 마음이 들떠 산과 들로 나들이를 나가봅니다. 산의 초입에는 나무들의 새순이 돋아나오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면 작은 꽃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 중 이른 봄 산의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가 ‘길마가지나무’입니다.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듯하지만 봄바람 들어 산을 찾는 사람들을 반겨주는 매우 기특한 나무라 생각됩니다. 이 나무의 이름 유래는 소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와 비슷하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향기 좋은 꽃이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막는다고 하는 유래가 더욱 설득력이 있고 이해하기도 좋은 이름 유래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 나무의 잔가지가 길을 막는다고 그렇게 지어진 것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어서 적당한 것을 생각하며 길마가지나무를 살펴보면 조금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길마가지나무의 꽃말은 ‘소박함’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꽃의 색상이 화려하지 않고 꽃의 크기도 작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꽃말과 다르게 무리 지어
자 두 瓜田不納履(과천불납리)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오이밭에서는 신을 신지 말고 자두나무 아래서는 갓을 바로 잡지 말라 현존하는 중국 선집 중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진 남조 시대의 《문선(文選)》에 나오는 글귀다. 군자는 모름지기 오해를 살 수 있는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시경(詩經)》에도 주나라 시대의 으뜸 꽃나무로 매화와 오얏을 꼽았다. 중국이 원산지인 오얏은 자두를 이르는 순우리말로 여러 고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친근한 낱말이다. 자주색 복숭아라는 뜻의 자도(紫桃)가 자두로 변하여 1988년 표준말로 채택된 탓에 쓰임새가 많이 사라졌지만, 옥편에서 李를 ‘오얏 리’라 훈을 단 것처럼 한자 읽기에서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내친김에 ‘오얏 리(李)’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자. 도가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노자(老子)의 본명은 이이(李耳)인데, 오얏나무 아래에서 태어난 그가 나무 목(木)과 사내아이 자(子) 두 글자를 합쳐 ‘오얏나무 이(李)’라는 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얏, 즉 자두는 역사가 오랜 작물 중 하나로서 2천 년 전쯤 로마로 전해진 이래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장미과 Pr
[따뜻한 동네가게 스토리] 당신의 모든 순간이, 달달하기를 ‘달달과자점’ 베이킹의 시작 베이킹과의 처음 만남은 중2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뇌종양 때문에 제거 수술을 받은 후 수업은 1~2교시만 받고 집에 와서 지내느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졌죠. 그 당시엔 유튜브나 인터넷이 흔치 않았기에 엄마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정보를 찾아보며 도너츠나 호두파이 등 베이킹을 해보았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관심이 더 많이 생겨 하교 후에 피자집, 카페, 키즈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모아 디저트, 빵, 초콜릿 등을 만드는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부모님께서는 그만두고 공부하라 하셨지만 저는 너무 좋아서 계속 배우러 다녔죠. 대학도 행정학과를 진학한 후 공무원이 되길 원하시는 부모님의 뜻을 대놓고 거스리지는 못하고, 나름 머리를 써서 부모님 모르게 외식조리학과가 있는 학교의 행정학과를 지원해 입학한 후 외식조리학을 부전공으로 해서 꿈을 계속 키워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가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졸업 후에는 주말의 개인 시간이 자유로운 대학교 행정직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말에 본격적인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의 봄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째이다. 겨우내 고요하고 잔잔했던 일상들이 3월의 개학과 동시에 “준비, 땅!”을 외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일 두 녀석의 학교에서 날아오는 각각의 공문들에, 문자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뭐, ‘새 학기의 봄은 이래야 제 맛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유난히 이런 분위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모습에 의아함마저 느낀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후, 이렇게 ‘정상적인 새 학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2023년 신학기는 일상처럼 해 오던 ‘코로나 증상 자가 진단’없이 등교하는 첫 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 습관적으로 핸드폰 앱을 켜고 자신의 몸 상태를 입력했다. 그런데도 작년 3월은 각 학교마다 코로나 확진자들로 넘쳐났고, 이러다가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공포감마저 들었던 달이었다. 그랬던 일상이 정말로 신기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오기 전, 3년 전 일상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휘몰아치는 바이러스의 폭풍우 속에서 언제쯤 마스크를 끼지 않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날이 올까 싶
2022 춘천마라톤, 21.0795km(하프) 첫 출전! 마라톤 출전을 위한 맹연습 더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면서 달리기 연습을 했다. 10km를 뛰는 일은 그리 어렵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하프를 뛰어야한다고 생각을 하니 연습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까지 10km이상을 7번 정도 뛰었다. 15km이상은 한 번밖에 뛰지 못한 상태로 출전을 해야 했다. 주변에서는 10km를 뛰는 것도 무리인데 무슨 하프를 뛰느냐고 난리였다. 그래서 하프를 완주만 하겠으니 그리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연습을 할 때도 얼마나 간섭이 많았는지 모른다. “마라톤 하면 살 빠진다더라! 빠질 살도 없는데 무슨 마라톤을 하냐? ”조금 부실한 왼쪽 다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오른쪽 발목에 염증이 생긴 일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병원에 가지 않지만, 마라톤 연습을 계속해야 하니까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도 받았다. 다행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고 몇 번 물리치료를 받고는 금방 회복을 했다. 뛰면서 발과 발목을 다치지 않게 하는 요령도 익히게 되었다. 주변에서 잘 달리라고 신발도 선물로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 준 덕분에 조금씩 용기를 냈다. ‘이 나이에! 완주라도
스웨덴에서 온 벤자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벤, 배고프지?” “네, 이모 배고파요! 얼마 동안 잠을 잤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틀 동안 잔 것 같아요.” 깨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실컷 자도록 내버려 두었더니 죽은 듯이 자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편한 침대에서 자니까 잠이 더 잘 온 것 같아요,” 스웨덴에 살고 있는 벤은 남미의 페루 마추피추에 여행을 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여행을 왔다. 남미에서 배낭여행을 했는데, 텐트에서도 자고 가끔 숙소에서 자기는 했지만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를 이모라 부르는 벤은 정작 이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나에게 꼬박 이모라고 살갑게 부른다. 페루의 전통 모자와 차를 선물로 사왔다. 이모라고는 불리지만 멀리 있는 이유도 있고, 다 큰 청년에게 내가 특별히 잘 해 줄 일도 딱히 없어서 그냥 그냥 지내고 있다. 이렇게 이모라 불리니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벤 3년 전에 벤은 한국에서 1여 년 남짓 지냈다. 스웨덴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살았다. 요즘 청년답지 않게 벤은 26살 정도의 나이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