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빠져 마음껏 헤엄치며 세상을 매료시킨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19세기 초 독일의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은 잠자고 있던 바흐(1685~1750)의 오라토리오 ‘마태 수난곡’(BWV 244)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마태 수난곡’이멘델스존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진 후, 바흐의 작품 전체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게 되었죠. 그로부터 100년이 넘게 흐른 1955년, 캐나다의 23살 젊은 피아니스트가 바흐의 작품 하나를 들고 나와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바흐의 작품번호(BWV) 988번, 우리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변주곡인데, 원래는 ‘2단 건반 클라비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변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클라비어 연습곡’이라는 긴 제목의 곡입니다. 대위법으로 치밀하고 복잡하게 구성된 이 변주곡은 그 때까지만 해도 연주자들에게나 청중에게나 무미건조한 톤의 매력 없는 작품으로 여겨져 잘 연주되지 않고 있었죠. 하지만 혜성같이 등장한 젊은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이 곡은 수많은 청중의 귀와 마음까지 사로잡는 위대한 곡으로 탈바꿈하게 되니, 바로 음악 못지않은 특이한
[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1] 광화문과 흥례문의 숨기고 싶은 비밀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교화의 빛이 퍼져 나간다는 뜻이다. 교화(敎化)의 ‘교(敎)’는 물론 유교를 말한다. 유교 성리학을 이념으로 내세워 건국한 조선이란 나라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경복궁이란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고 광화문이란 이름은 세종 때 지어졌다. 경복은 ‘큰 복’이란 뜻이다. 광화문을 지나 만나는 문이 흥례문이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문이 나오고 그 안을 들어가면 경복궁을 대표하는 건물인 근정전이 나타난다. 흥례문은 잘 모르는 문이지만 광화문 못지않게 웅장한 문이다. 우리가 경복궁에 들어갈 때 표를 내고 들어가는 문이다. 흥례문도 유교 국가에 어울리는 문 이름이다. 예를 흥하게 한다는 뜻이다. 유교에서 내세우는 덕목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이 있는데 이를 각각 동서남북과 중앙에 빗대기도 한다. 동은 인(仁), 서는 의(義), 남은 예(禮), 북은 지(智), 중앙은 신(信)이다. 그래서 도성의 동쪽 문이 흥인지문이 되고 경복궁의 두 번째 남쪽 문은 흥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탈 때 광화문과 흥례문도 운명을 같이 했다. 불탄 경복궁은 몇
새로운 도전 ‘라이딩’ “멈추기가 가장 어려웠어요!” 늘 건강하게 살 줄 알았다. 살아오면서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건강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이를 들어가니 이젠 몸을 생각해야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건강을 생각한다는 것을 몸에 좋은 것이나 먹고, 몸을 편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소식도 하고 가끔 단식도 했다. 집 주변을 산책하고 맨발 걷기를 하는 등 소극적인 건강 돌보기만 해 왔다. 남들보다 약해 보이는 육체로도 이제까지 그리 큰 탈 없이 살아온 것은 정신력으로 버텨 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신력도 점점 약해져 가고 있다. 체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도 나이를 핑계대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병약한 몸이 되어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빨리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몸의 이곳저곳에서 조금씩 신호를 보내 왔을 즈음,“몸이 먼저다!”라고 이야기 해준 선배님의 말이 마음에 확 박혀왔다. 수영, 테니스, 등산, 마라톤 등의 운동을 하는 것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엄청난
[다문화, 너와 나의 이웃이야기 3] 새로운 이웃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출산 고령화는 다문화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이미 한국은 사망인구가 출생인구를 추월한 데드크로스(Dead Cross)를 지났고, 2021년 합계출산율은 0.81입니다. 이는 경제활동인구에 영향을 미쳐 외국인력 도입이 필수가 되고, 국제결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대학 내에서도 국제 커플이 많이 형성되는데, 학생 수가 줄어들어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입학 정원이 많다보니 외국인 유학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많은 국제 학생(International Students)들을 만나게 되고, 교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내 자녀들도 언제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언어 소통이 어려운 예비 사위나 며느리를 데리고 올지 모르지요. 이제 우리의 회사, 학교, 식당, 가정 등 모든 방면에서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다문화 사회로 급진전하게 될 터인데, 어떻게 하면 우리는 보다 성숙한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성숙한 다문화 사회를 앞둔 우리가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측면 성숙한 다문화 사회를 앞두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바로 정부의 제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몇 년 전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지방대 시간강사인 83년생 김민섭 작가는 문득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특가로 올라온 후쿠오카행 비행기표를 7만 3천원에 구매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잠깐동안은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행을 열흘 앞두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하필 수술날짜가 후쿠오카로 떠나는 전날이었다. 김민섭 씨는 환불이 가능한지 문의해 보았지만 할인티켓이었기 때문에 1만 8천원밖에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돈을 돌려받느니 누군가 대신 갈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항공사에 문의해 보니 기본조건이 대한민국 남자이어야 하고, 양도 받을 사람의 이름이 '김민섭'이어야 하고 여권의 영문 철자가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김민섭 씨는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라고 올리게 되었다. 몇 백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어떤 사람은 한 끗 차이로 한글 이름이 달라서 개명이라도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영어철자가 살짝 달라서 안타깝다, 친구가 김민섭인
[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13] 마음으로 보기 여행을 가면 꼭 그곳의 풍경이 담긴 그림을 삽니다. 20대에는 아껴야 하는 여행경비 때문에 엽서를 사곤 했죠. 직업을 가진 후에는 다른 비용을 줄이더라도 꼭 실제로 그린 그림을 사 왔습니다. 물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길거리 화가의 그림이죠.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 액자에 담긴 그림을 보면 ‘잘 그렸다, 못 그렸다’에 대한 평가 없이 그때의 추억들이 떠오르며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04년도에 캐나다 여기저기를 여행했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림을 보고나서 쓴 일기를 발견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아래 그림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오는 길에 지나다가 이 그림을 보았다. 한참을 서서 쳐다보았는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멋지게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가 누릴 수 있는 그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언제쯤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지…” 20대 초반의 저는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현실의 벽이 꽤 높았나 봅니다. 지금처럼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많은 관심을
[전선영의 '시로 보는 마음' 2] 저는 시를 통해 잃어버린 슬픔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어른으로 살아내는 것이 버거워 눈물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가 힘들고 서글퍼질 때도 있지요. 소유했어야 할 가장 근원적인 것들마저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박탈감이 분노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표현하는 게 참 어려워요.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도 그 마음을 받아줄 마땅한 자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쌓여가는 독소들은 나를 태우고 타인을 태우며 모든 심리적 환경과 관계를 잿빛 세상으로 만들어 버리죠. 후에는 몸만 살아있지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고 느끼지 않는 무감각, 무감정으로 마음이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픈 걸 말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슬픔을 되찾아 그 감정의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입니다. 시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 수 있어요. 시를 읽다보면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는 시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입술을 건너간 이름》의 저자 문성해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 제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꼈어요. 그 시에 쓰여 진 시어에 내 마음이 반응하고 있
[한현석의 야생초 이야기 8] 물레나물 (Hypericum ascyron) 간간히 가랑비가 흩날리기는 하지만 바짝 메마른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씨는 뜨거워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이렇게 무더위가 한창인 시기에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물가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줄기는 곧게 자라고 네모지며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가 0.5∼1m까지도 자라는 품종입니다. 잎은 마주나고 길이 5∼10cm의 바소꼴이고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줄기를 감싸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투명한 점이 있고 잎자루는 없습니다. 꽃은 제법 크게 피는데 지름이 4∼6cm이며 황색 바탕에 붉은빛이 돌고 가지 끝에 1개씩 위를 향하여 달립니다. 그 꽃의 모양은 풍차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하고 선풍기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산이 우거지고 그늘이 많아져서 그런지 좀처럼 보기가 어려워진 듯합니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산길을 거닐다 물레나물의 노란 꽃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습니다. 흔할 때는 눈여겨 봐주지도 않았지만 요즘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레나물이 자랄듯한 곳에서는 좌우를 유심히 살피게 됩니다.
나를 위한 가장 멋지고, 훌륭한 선택!틈새 쪼개 70개국 여행한, 정금선 여행가 ‘내 딸이 선생님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몸이 너무 약해 야단 한 번 들어본 적 없이 성장한 어린 시절. 부모님은 공부보다는 건강하게만 자라 줄 것을 바라셨죠. 뭐가 되겠다는 특별한 꿈은 없었으나 아픈 사람을 보면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장애인을 보면 그 장애인의 손, 발, 눈이 되고 싶었습니다. 무용 발표회에 가면 무용가,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를 보면 연주가, 미술 전람회를 가면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고 그나마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것 중 하나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그 일을 마칠 때까지 있는 듯 없는 듯 혼자 앉아 끝까지 해낸다는 것이었죠. 서울로 올라와 대학 생활을 하면서 꿈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건강의 문제로 4학년 때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부모님 곁에서 교생실습을 하며 ‘선생님이 되자’고 저의 꿈을 굳혔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제가 선생님이 된다면 섬지방까지 따라오셔서 밥도 해주고 옷도 다려주신다 하셨죠. ‘내 딸이 선생님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최고의 믿
[상상농부 이야기 11] 겨울 버섯을 아시나요? 2020년 3월경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버섯을 먹고 36명이 식중독에 걸리고 그 중에 4명이 사망하였다는 안타까운 기사였는데, 사실 이 버섯을 먹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기에 버섯을 재배하는 농부로서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 버섯은 된장찌개에, 고기와 함께 굽거나, 스프 등에 절대 빠지지 않는 전 국민이 한번쯤은 먹어 본 ‘팽이 버섯’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왜 미국에서는 일어났을까요? 물론 한국과 미국의 식문화로 인한 차이 때문에 ‘리스테리아’라는 식중독 균이 이 상황을 야기했다고 추정합니다. 미국의 경우 샐러드 문화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생(生)으로 먹지 말아야 할 팽이버섯을 생으로 먹는 가운데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토양이나 하천, 하수, 식물 등에서 발견되는 ‘리스테리아균’은 이 균에 오염된 채소나 버섯 등을 날 것으로 섭취할 경우 그대로 인체에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찌개에 넣거나 구워먹는 한국의 경우에는 이런 증상이 없이 영양소 풍부한 팽이 버섯을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 버섯이라고도 불리는 ‘팽이